생각의 서고, 26화
근대 법학의 거대한 체계는 '이성(Reason)'이라는 단단한 암반 위에 축조되었다. 17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된 근대적 기획은 인간을 감정적 동요와 동물적 본능으로부터 분리된, 순수한 논리적 주체로 상정하는 작업이었다. 르네 데카르트가 선언한 '코기토(Cogito)'는 신체와 정신, 감정과 이성을 엄격히 분리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정초하였고, 이는 법적 추론의 영역에서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은 정점에 달해, 도덕과 법은 경향성이나 감정이 아닌 오직 실천이성의 법칙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정의의 여신'은 피고인의 신분뿐만 아니라 재판관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의 동요로부터도 눈을 가려야 했다. 판결문은 수학적 증명과 같이 냉철한 삼단논법의 결과물이어야 했으며, 그 안에 분노나 연민, 혐오와 같은 감정적 언어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어 이러한 '법적 이성주의'의 신화는 신경과학적 발견과 사회학적 위기라는 두 가지 거대한 파도에 의해 근본적으로 침식당하고 있다.
첫째,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성과 감정이 생물학적으로 분리 불가능한 단일한 인지 과정의 양면임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특히 뇌 손상 환자들에 대한 임상 연구는 감정 중추가 손상될 경우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 자체가 붕괴됨을 보여주었다. 이는 감정이 이성의 작동을 방해하는 잡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이 현실 세계의 복잡성 속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도록 돕는 필수적인 지지대(scaffold)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법학이 전제해 온 '이성적 인간' 모델이 허구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둘째, 사회학적 차원에서 법과 대중의 괴리는 이제 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현재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을 비롯한 다수의 기관에서 수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2020년 조사에서 국민의 약 87%가 법원의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는 충격적인 통계는 사법부가 국민의 법감정과 얼마나 동떨어진 섬에 고립되어 있는지를 방증한다.
이러한 불신의 간극은 '사적 제재(Private Sanctions)'라는 위험한 현상으로 메워지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 '배드 파더스', 유튜버들의 사적 응징 콘텐츠 등은 국가의 형벌권 독점이라는 근대 형법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대중은 법원의 판결보다 유튜버의 사적 응징에 더 큰 카타르시스와 정의감을 느끼며, 이는 "법은 정의롭지 않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전근대적 인식의 회귀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을 법적 논의에서 배제하고 억압해야 할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기존의 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 법감정은 제거해야 할 불순물이 아니라, 시급히 해석하고 통합해야 할 규범적 신호(Normative Signal)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본고는 마사 누스바움의 인지주의 감정이론(Cognitive Theory of Emotion)을 핵심적인 이론적 프레임워크로 채택하여, 법감정의 본질을 규명하고 이를 사법 제도 내로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신경과학적 증거, 법철학적 논증, 그리고 구체적인 사회 현상 분석을 아우르는 학제간 접근을 시도한다.
우선 제Ⅱ장에서는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의 사례를 중심으로 뇌과학이 밝혀낸 이성과 감정의 관계를 고찰하고, 누스바움의 이론을 통해 감정의 인지적 구조를 분석한다. 여기서 감정을 법적 추론에 수용하기 위한 검증 도구로서 '사실성 판단'과 '타당성 판단'의 이원적 체계를 정립한다.
제Ⅲ장에서는 법적 맥락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핵심 감정인 분노, 혐오, 두려움, 동정심을 개별적으로 해부한다. 특히 '이행 분노(Transition-Anger)'와 '투사적 혐오(Projective Disgust)'의 개념을 통해 어떤 감정이 법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어떤 감정이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규범적으로 논증한다.
제Ⅳ장과 제Ⅴ장에서는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수행한다. 제Ⅳ장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나타난 '코로나 레드(Corona Red)'와 방역 정책의 상호작용을, 제Ⅴ장에서는 '디지털 교도소', '손정우 사건' 등으로 표출된 사적 제재 현상과 응보 감정의 실체를 심층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제Ⅵ장에서는 이러한 이론적, 실증적 분석을 바탕으로 법감정을 제도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양형 기준의 과학화, 독일과 일본의 입법례 분석을 통한 피해자 참가 제도의 실질화 방안이 논의될 것이다.
전통법학이 감정을 '이성의 적'으로 간주했던 것과 달리, 현대 뇌과학은 감정이 이성의 필수적인 파트너임을 웅변한다.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세기 철도 건축 감독관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의 사고이다.
1848년 9월 13일, 미국 버몬트주에서 철도 공사 감독관으로 일하던 25세의 청년 피니어스 게이지는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를 당했다. 길이 1.1m, 무게 6kg, 지름 3.2cm에 달하는 거대한 쇠막대가 그의 왼쪽 뺨을 뚫고 들어가 전두엽을 관통하여 정수리로 빠져나갔다. 놀랍게도 그는 사고 직후 의식을 회복했고, 병원까지 스스로 걸어갈 수 있었으며, 언어 능력이나 운동 능력, 기억력 등 기본적인 인지 기능에는 거의 손상이 없었다. 당시 하버드 의대의 존 할로우(John Harlow) 박사를 비롯한 의료진은 그의 생존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고 이후 게이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사고 전 그는 "빈틈없고 똑똑한 사업가", "책임감 강한 리더"로 평가받았으나, 전두엽 손상 후에는 "변덕스럽고, 불경하며, 짐승 같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계획을 세우지만 실행하지 못했고, 사회적 예절을 무시했으며, 결국 직장을 잃고 서커스단을 전전하거나 마부로 일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현대 신경과학은 게이지의 사례를 재분석하여, 그의 손상 부위가 감정과 사회적 행동을 조절하는 복내측 전두엽 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과 백질(White Matter) 연결망이었음을 밝혀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쇠막대는 대뇌 피질의 약 4%를 파괴했을 뿐이지만, 뇌의 여러 영역을 연결하는 백질 경로의 11%를 손상시켰다. 이는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과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영역 사이의 고속도로가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게이지의 사례는 감정이 제거된 상태에서의 이성이란 무력하기 짝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었고, 도덕적 규칙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 규칙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감정적 가치 평가'가 작동하지 않자, 그는 끝없는 우유부단함에 빠지거나 충동적인 결정만을 내리게 되었다. 이는 법관이 법조문을 달달 외우고 논리학에 능통하다 하더라도, 사건의 맥락에 대한 '감정적 통찰' 능력이 결여된다면 결코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수 없음을 시사하는 생물학적 증거로 작동한다.
신경과학이 감정의 생물학적 필연성을 증명했다면, 철학은 감정의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마사 누스바움은 그녀의 저서 '사유의 격변(Upheavals of Thought)'과 '혐오와 인간성(From Disgust to Humanity)'등을 통해 감정을 '비이성적 충동'으로 격하시키는 전통적 견해를 반박하고, 감정을 고도의 인지적 판단으로 재정의한다.
우선, 누스바움은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네오-스토아주의(Neo-Stoicism)를 계승하여, 감정이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자, 그 대상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평가하는 가치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단순히 눈물이 흐르는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 삶에서 대체 불가능한 소중한 존재였다"는 인지적 깨달음의 표현이다. 만약 그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면, 슬픔이라는 감정은 발생하지 않는다.
나아가 그녀에 따르면, 모든 감정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이 구조는 감정을 법적 논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하는 핵심 고리이다.
첫번째로, 대상성(Object)이다. 감정은 막연한 불안(Anxiety)과 달리, 항상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다. 판사의 분노는 '피고인의 잔혹한 행위'라는 대상을 향하며, 대중의 공포는 '바이러스'나 '범죄자'를 향한다. 대상이 명확하므로, 그 대상에 대한 법적 평가와 감정적 반응을 대조할 수 있다.
두번째는, 지향성(Intentionality)이다. 감정은 대상을 객관적 실체로서가 아니라, 감정 주체가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대로 인식한다. 즉, '관점'이 개입된다. 똑같은 살인 사건을 보고도 피해자 유족은 '파괴된 삶'을 보기에 분노하지만, 피고인의 노모는 '불쌍한 아들'을 보기에 슬퍼한다. 법은 이러한 다양한 지향성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세번째는, 믿음(Belief)이다. 감정은 대상에 대한 특정한 명제적 믿음(Propositional Belief)을 전제로 한다. "저 사람이 나를 모욕했다"는 믿음이 있어야 분노가 생기고, "저 개가 나를 물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어야 두려움이 생긴다. 이 믿음은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정은 검증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온다.
네번째는 가치(Value)다. 감정은 대상이 주체의 목표나 안녕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내포한다. 우리는 길가의 돌멩이가 부서졌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감정의 격동은 곧 가치의 확인이다.
이를 통해, 누스바움은 감정이 인간의 본질적 한계, 즉 취약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만약, 신과 같이 전지전능하고 자족적인 존재는 외부 대상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므로 슬픔이나 두려움, 분노를 느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외부 사물(가족, 건강, 재산, 명예 등)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감정을 필연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법은 바로 이 인간의 취약성을 보호하고, 외부의 침해로부터 개인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따라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은 인간의 존립 조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감정이 인지적 판단이라 하더라도, 모든 감정이 법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감정이나,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과도한 감정은 오판의 원인이 된다. 본고는 법적추론 과정에서 감정을 수용하기 위한 검증 체계로 '사실성 판단(Factuality Judgment)'과 '타당성 판단(Validity Judgment)'의 이원적 필터링을 제안한다.
법적 상황에서 주로 문제시되거나 동력이 되는 핵심 감정을 꼽으라면 분노, 혐오, 두려움, 동정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감정은 각기 다른 인지적 구조와 사회적 효과를 지니므로 개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분노는 가히 형사사법 시스템의 엔진과 같다다. 범죄에 대한 공분(公憤)없이는 형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분노를 두 가지 유형으로 엄격히 구분하며, 법이 수용해야 할 분노와 배격해야 할 분노를 나눈다.
우선, 일반적인 분노로서 응보적 분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원칙에 따라 가해자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피해를 회복하려는 욕구이다. 누스바움은 이를 '복수의 오류'라고 비판하면서, 이것이 가해자의 고통(Down-ranking)이 피해자의 회복(Up-ranking)으로 이어진다는 '마법적 사고(Magical Thinking)'에 기반한다는 점을 고발한다. 그러나 가해자를 고문하거나 죽인다고 해서 죽은 자녀가 살아오거나, 훼손된 존엄성이 즉시 복구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분노는 과거지향적(Past-oriented)이며, 끝없는 보복의 순환을 낳을 뿐 법적 정의인 '사회적 회복'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녀의 진단이다.
이에 대해, 누스바움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념은 '이행 분노(Transition-Anger)'이다. 이는 문장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터무니없다(How outrageous!). 그러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Something must be done)"라는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방식의 특징으로 무엇이 있을까? 바로 감정의 초점이 가해자 개인의 인격적 파멸이 아니라, 부당한 행위(Act)와 상황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시간적 지향성이 과거가 아닌 미래의 예방과 사회적 개선을 향한다. 하나의 예시를 보도록 하자. 그녀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을 이행 분노의 전형으로 꼽는다. 킹 목사는 흑인이 겪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 명확히 분노를 표출했으나, 그는 결코 백인들에 대한 보복이나 폭력을 선동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분노의 에너지를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미래"를 건설하는 동력으로 전환시켰다.
법적 차원에서 시민들이 흉악 범죄에 분노할 때, 그것이 "범죄자를 찢어 죽여라"는 야만적 외침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선하여 안전한 사회를 만들라"는 요구로 승화될 때, 그 분노는 가장 강력한 입법과 사법의 근거가 된다.
혐오는 법적 판단에서 가장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감정이다. 널리 알려졌듯, 혐오는 본래 부패한 음식이나 시체, 배설물 등 오염원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려는 진화적 기제(원시적 혐오)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적 관계로 확장될 때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누스바움은 사회적 차별의 기저에 '투사적 혐오(Projective Disgust)'가 있다고 분석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부패, 배설과 같은 동물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인정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 부당한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류로 분류될 수 있는 일부 집단(백인, 남성, 이성애자 등)은 자신의 이러한 동물성을 인정하기 싫어, 이를 특정 소수자 집단(유대인, 여성, 흑인, 성소수자 등)에게 뒤집어씌운다고 본다(Project). 그들을 '축축하고', '더럽고', '짐승 같은'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은 순수하고 이성적인 존재로 남으려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녀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차별적 법률이 이러한 투사적 혐오에 기반하였음을 주장한다. 일례로 미국의 반(反)동성애법(Sodomy Laws)은 동성애 행위를 "자연을 거스르는 혐오스러운 짓"으로 규정하고 처벌했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다른 '오염된 존재'라는 거짓 믿음에 기초하였던 것이다. 인도의 형법 377조(식민지 시대의 유산) 역시 동성애를 혐오 범죄로 규정했다. 누스바움은 인도 내의 혐오 담론이 어떻게 특정 계급과 성적 지향을 불가촉천민(Untouchable)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배제했는지 분석한다.
만약 그러한 경우가 재판과정에서 제출되었다면, 이러한 혐오는 "그들은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며 오염원이다"라는 거짓된 믿음에 기초하므로 '사실성 판단'에서 기각된다. 또한, 타인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므로 '타당성 판단'에서도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법관은 "대다수 국민이 혐오한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되며, 혐오의 기저에 깔린 인지적 오류를 직시해야 한다.
두려움은 생존 본능과 직결된 원초적 감정이다. 이는 위험 회피를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지만, 쉽게 비합리적인 혐오나 분노로 전이될 수 있다. 누스바움은 두려움이 민주적 토론을 마비시키고 독재적 통제를 불러올 위험을 경고한다.
이와 달리 동정심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누스바움은 동정심이 성립하려면 고통의 심각성(Seriousness), ②무과실성(Non-fault), ③유사성 자각(Similar Possibilities)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바, 특히 "나도 저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유사성 자각은 복지 국가와 사회적 안전망을 지지하는 법적 토대가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거대한 '감정의 실험실'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대중의 감정 변화는 법과 정책이 감정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형법학에는 '허용된 위험(Allowed Risk)'이라는 개념이 있다. 현대 산업 사회는 자동차 운전, 원자력 발전, 의료 행위 등 본질적으로 위험을 수반하는 활동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기에, 법은 이러한 위험을 완전히 금지하는 대신, 사회적 효용을 고려하여 일정 수준의 위험을 '허용'한다. 전통적으로 이 허용 수준은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과 같은 공리주의적, 이성적 계산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팬데믹 초기, 대중의 '정당한 분노'는 이 기준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방역 수칙을 어기고 클럽을 방문하거나 대규모 집회를 강행하여 집단 감염을 유발한 사례들에 대해 전 국민적인 공분이 일어났다. 이 분노는 단순한 짜증이 아니었다. 바로 "타인의 무책임한 행동이 나의 생명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핵심 가치를 침해했다"는 명확한 인지적 판단에 기초한 이행 분노였던 것이다. 이 분노는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위험의 한계를 대폭 축소시켰다. 평소라면 헌법상 기본권(이동의 자유, 집회의 자유, 영업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았을 행위들이 대중의 법감정에 의해 강력하게 규탄받았고, 행정부와 법원은 이를 반영하여 고강도 거리두기와 집회 금지 처분을 정당화했다. 이는 감정이 위험 규제의 척도로 작동하여 법적 기준을 재설정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확진자에 대한 비난이 강해지는, 이른바 '신뢰의 역설(Trust Paradox)'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정부의 방역 정책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방역망을 뚫고 감염된 개인(이태원 클럽 방문자, 특정 종교인 등)을 "공동체의 규칙을 깬 배신자"로 간주하여 더 강력하게 비난하고 혐오했다. 이는 감정이 사회적 연대(정부 신뢰)를 강화하는 동시에, 배제(감염자 혐오)를 강화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법은 이러한 감정의 양면성을 인지하고, 공익을 위한 연대는 장려하되 특정 개인을 희생양 삼는 혐오는 제어하는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단시간에 종착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였던 팬데믹이, 예상과 다르게 장기화되면서 사회 내의 지배적 감정은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존권 위협에 대한 '분노'로 이동했다. 이를 '코로나 레드(Corona Red)'라고 부른다. 2021년, 장기간의 영업 제한으로 한계 상황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전국적인 차량 시위를 조직했다. 이들의 분노는 단순한 경제적 곤궁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핵심은 '불공정성(Unfairness)'에 대한 인식이었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는 인파가 몰려도 영업하게 하면서, 왜 식당과 카페만 규제하는가?"라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는 사실성 판단(실제 규제의 차이 존재)과 타당성 판단(생존권 위협의 중대성)을 모두 충족하는 합리적 분노였다. 초기에 경찰은 이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엄단하려 했으나, 법원은 점차 이들의 시위 방식을 일부 허용하거나 과태료 처분을 취소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자영업자들의 감정적 호소가 단순한 떼쓰기가 아니라, 헌법상 평등권과 생존권 침해에 대한 정당한 법적 항변임을 사법 시스템이 인정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사적제재 현상은 법감정과 실정법 사이의 괴리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한 결과이다. 이는 근대 국가의 형벌권 독점이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선 항을 나눠 상술한다.
첫번째는 '디지털 교도소' 사건이다. '디지털 교도소'는 성범죄자, 살인자, 아동학대범 등의 신상정보(이름, 사진, 주소, 전화번호 등)를 임의로 공개하여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웹사이트였다. 운영자와 지지자들은 "대한민국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직접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주장하였는바, 이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응보적 분노에서 기인했다. 1기 운영자는 베트남에서 검거되어 국내로 송환되었으며, 1심에서 징역 3년 6월, 2심에서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자의적인 정의감에 도취되어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정보를 무단 유포하여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고 판시했다.
누스바움이 주장한 입장에 의하면, 이들의 행동은 정의를 가장했으나 실상은 '복수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특히 무고한 대학생을 성착취범으로 몰아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은, 사적제재가 '사실성 판단'의 검증 절차(적법절차)를 결여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법치주의가 왜 감정적 직관만으로 작동해서는 안 되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두번째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 파더스' 사례이다. 이는 디지털 교도소와 다소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본 사안에서의 쟁점은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위반)과 공익성(아동의 생존권)의 대립구도였다. 1심 국민참여재판은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는 배심원단(일반 국민)의 법감정이 실정법의 엄격한 해석을 뛰어넘은 사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다만 대법원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는 점은 일부 인정하여 양형에 참작하도록 했다.
어떤 점에서 첫번째 사례와 구분된 것이었을까? '배드 파더스'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단순한 망신 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타당한 동정심과 "국가가 이를 방치했다"는 이행 분노에 기반했다. 이 감정의 압력은 결국 국회를 움직여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이끌어냈고, 이제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을 공개하고 출국 금지 조치를 취한다. 이는 사적제재 형태의 법감정이 합법적인 제도로 통합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미국 인도 거부결정 사례이다. 손정우는 한국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이후 미국 법무부는 그를 자금세탁 혐의 등으로 기소하여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고. 미국으로 갈 경우 수십 년의 징역형이 예상되었다. 일반 대중은 "한국의 처벌은 너무 가볍다. 미국으로 보내 정의를 실현하라.", 즉 사법 주권을 포기하더라도 실질적인 정의(응보)를 원한다는 강력한 의사 표시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주권 국가로서 형벌 권한을 행사해야 하며, 국내에서 추가 수사를 통해 아동 성착취 범죄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며 인도를 거절했다. 표면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이행 분노'의 논리(재발 방지, 수사 관행 개선)를 취했다.
이러한 거부결정에 대해, 일반 대중은 법원의 논리가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궤변'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사법부 내의 온정주의와 성범죄에 대한 낮은 감수성이 작동한다고 믿었다(사실성 판단의 불일치). 대중이 원한 것은 세련된 교화나 사법 주권의 수호가 아니라, 죄질에 상응하는 고통, 즉 '응분의 몫(Desert)'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법학이 애써 무시해온 응보적 정의의 욕구가 여전히 대중의 마음속에 강력한 규범적 힘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사건 이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 청원이 빗발쳤다.
사적 제재의 창궐을 막고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감정을 무시하거나 억압할 것이 아니라 이를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여 정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합리적 법감정(Rational Legal Sentiment)'의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법관이 포퓰리즘에 휩쓸려서는 안 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권의 정당성은 결국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 법감정'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는 단순히 순간적인 여론이나 댓글 반응이 아니다. 일반 국민이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 법적 쟁점, 형벌의 효과, 피고인의 사정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냉철하게 숙고했을 때 형성하게 될 감정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떻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 문제된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양형 예측 모델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AI는 수십 년간 축적된 판결문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현재의 양형 관행을 패턴화하고, 국민이 생각하는 적정 형량(설문조사 데이터 등과 결합)과의 격차를 수치화할 수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미국의 AI 양형 도구인 'COMPAS'가 흑인에게 더 높은 재범 위험 점수를 부여하여 편향성 논란을 빚은 사례는,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AI가 기존 판결의 '온정주의적 편향'까지 학습하지 않도록, 윤리적 알고리즘 설계와 지속적인 인간(법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우선, AI가 도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약 특정 범죄(디지털 성범죄, 아동학대 등)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자 할 때, 그 근거로 "빅데이터로 확인된 국민의 규범적 요구"를 제시할 수 있다. 이는 판사 개인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지표이므로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법감정을 수용하는 길이 될 수 있다.
2.
사적 제재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객체로 전락한다는 무력감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과 분노를 법정에서 정당하게 표출하고, 그것이 판결에 반영되는 경험을 할 때, 사적 복수의 욕구는 사법 절차에 대한 신뢰로 승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비교법적 아이디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독일의 부대기소제도(Nebenklage)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피해자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데, 성범죄, 살인 등 중범죄 피해자는 검사와 나란히 '부대기소인(Nebenkläger)'으로서 재판에 참여한다. 여기서 피해자는, 피고인 및 증인 신문권, 증거 신청권, 독자적인 상소권, 그리고 최종 변론권(구형 의견 제시)까지 갖는다.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객체가 아닌, 소송의 주체(당사자)로 인정받으므로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러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축시키거나 재판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단점 또한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두번째는 일본의 피해자참가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2008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피해자참가제도를 도입하였는바, 이때 피해자는 검사를 '보조'하는 지위에서 참가한다. 어느 사안에서 피해자가 참가를 신청하면 검사가 법원에 통지하고, 법원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피해자는 증인 신문, 피고인 질문, 그리고 사실 및 법률 적용에 관한 의견 진술(구형 포함)을 할 수 있는데, 특히 일본은 법 테라스(Law Terasu)를 통해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행 한국의 현행법상 피해자진술권은 단순히 "심정을 토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실효성이 낮다. 생각건대, 독일식 모델은 현행 헌법상 검사의 기소독점주의와 충돌할 소지가 크므로, 일본의 피해자참가제도를 벤치마킹하여 현행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으로 사료된다.
"법은 이성이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존속될 수 있을까. 21세기의 법학적 지평에서 법은 이성이 감정을 통해 가치를 발견하고, 감정을 제도를 통해 정제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볼 때, 이 명제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피니어스 게이지의 손상된 뇌에서 시작하여, 마사 누스바움의 철학적 통찰을 거쳐, 코로나19의 거리와 디지털 공간의 사적 제재 현장까지 추적하며 법과 감정의 관계를 탐구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감정은 인지적 판단이다. 감정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위협으로 느끼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예민한 레이더이다. 법이 이를 무시하는 것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다.
둘째, 모든 감정이 옳은 것은 아니다. 투사적 혐오나 복수의 오류에 빠진 감정은 '사실성'과 '타당성'의 체에 걸러져야 한다. 법원의 역할은 감정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필터링 과정을 수행하는 '이성적 조정자'가 되는 것이다.
셋째, 제도가 감정을 담아내지 못하면 감정은 제도를 부순다. 사적 제재는 법감정의 수용 실패가 낳은 괴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I를 활용한 과학적 양형 기준 수립과 피해자 참가 제도의 실질화를 통해 '합리적 법감정'이 흐를 수 있는 제도적 수로(水路)를 터주어야 한다.
요컨대, 사법부는 '차가운 이성'의 상아탑에서 내려와, 국민의 '뜨거운 감정'과도 부딪혀야 한다. 감정은 법의 적이 아니라, 정의의 원천이다.
남지혁, 《법적 추론에서의 감정의 역할에 대한 고찰 ―코로나19 방역정책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이론연구센터, 『기초법학연구』 제2호, 2023. 5., 361-402면
송기우, 《형량(刑量)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해야 하는가 - 사적 제재에 내포된 분노의 감정을 중심으로 -》,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이론연구센터, 『기초법학연구』 제4호, 2025. 5., 181-2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