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27화
대한민국의 형사법정에서 우리는 매일 기이한 의식을 목격한다. 피고인석에 선 이는 고개를 숙이고, 변호인은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한다. 이에 화답하듯 재판부는 판결문 양형 이유의 한구석에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진지하게 반성하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혹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의 기미가 없는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기재한다. 과연 '진지한 반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법적사실(Legal Fact)인가, 아니면 재판장의 내심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감흥인가. 만약 그것이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형량을 결정하는 법적 판단의 근거라면, 어떠한 증거와 논증 절차를 통해 그 '반성'의 실체가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본고는 현재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 특히 양형 절차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성(뉘우침)'의 평가가 엄밀한 법도그마틱(Rechtsdogmatik)의 부재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여러 글에서 밝혔듯, 실정법률은 명확성과 예측가능성을 중핵이자 생명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양형의 영역, 그중에서도 유독 '반성'이라는 요소는 법의 지배가 아닌 판사의 자의적 도덕관이나 피고인의 연기력이 지배하는 '안개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는 헌법상 적법절차원칙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협하는 심각한 공백으로 작용할 수 있어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본고는 두 가지 핵심적인 연구 성과를 분석하고 통합하고자 한다. 하나는 임현경의 연구 「"뉘우침"에 관한 양형 법도그마틱」으로, 현행 양형 실무에서 감정적 차원으로 치부되는 반성의 문제를 비판하고 '의무부담적 책임'과 '의사소통행위'로서의 반성 개념을 제안한다. 다른 하나는 김상현의 연구 「알렉시의 법적논증이론의 최종적인 근거지움은 성공했는가」로, 이는 알베르트(Hans Albert)가 제기한 인식론적 난제인 '뮌히하우젠 트릴레마(Münchhausen Trilemma)'를 로베르트 알렉시(Robert Alexy)가 어떻게 '합리적 논증대화 이론'을 통해 극복하려 했는지를 규명한다.
본고에서 이 두 논의를 접목하여, 현재의 자의적인 반성 판단 관행을 뮌히하우젠 트릴레마의 '독단적 절차 단절'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알렉시의 '절차적 정당화' 모델을 양형 도그마틱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반성이란 내면의 알 수 없는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의사소통행위'이자 '절차적 의무 이행'으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형벌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피고인의 인격을 보호하고 사법의 신뢰를 회복하는 새로운 양형 법리로의 이행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다.
형사재판은 본질적으로 국가의 형벌권 행사를 정당화하는 법적논증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는 국가가 수사기관을 이용하여 국민에 대해, 고권적 지위 하에서 강제력을 행사함으로써, 신체의 자유와 같은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현실의 양형 절차는 엄밀한 법적 포섭보다는 피고인에 대한 도덕적 평가, 혹은 심리적 추측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임현경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피고인은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판결문의 문구가 피고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는 법관이 행하는 일종의 관심법(觀心法)적 판단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는 형사소송 절차의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한다. 어떤 구조적 한계를 말하는 것인가? 바로,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에서는 예비적 주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피고인이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무죄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설령 유죄라 하더라도 나는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를 바란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실무상 "자신의 죄책을 부인하는 뻔뻔한 태도"로 받아들여져 오히려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불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이 딜레마 속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방어권을 온전히 행사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연기'를 수행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는 합리적 사법 절차가 아니라, 피고인의 인격을 굴복시켜 국가 권력에 순응하게 만드는 전근대적 의례와 다를 바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양형의 예측불가능성에 있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법의 내적 도덕성'의 핵심은 사람들이 법을 알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양형, 특히 '반성'이라는 요소를 둘러싼 법원의 판단은 시민은 물론 법률가조차 예측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어떤 행위가 '진지한 반성'으로 인정받는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도그마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반성문 몇 장을 써야 하는지, 기부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피해자와의 합의가 절대적인지 등은 오로지 개별 재판부의 재량, 혹은 '감'에 맡겨져 있다. 이는 법치주의가 아닌 '사람의 지배'에 가까운 위험한 상태다.
현재 실무상 통용되는 반성 개념은 주로 '감정설'에 기초하고 있다. 즉, 반성을 후회,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내면의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현경은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논의를 빌려 이러한 감정적 접근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죄책감(Guilt)과 수치심(Shame)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죄책감은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회고적 감정으로, 사죄와 배상이라는 건설적인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바람직한 이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오는 감정으로, 자아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숨어버리게 만든다. 현재 법원이 요구하는 '반성'은 종종 피고인에게 모욕감을 주고 스스로를 비하하게 만드는 '수치심'의 강요로 변질되곤 한다.
특히 응보적 정의관(Retributivism)하에서 반성은 '거래적 용서(Transactional Forgiveness)'의 구조를 띤다. 이는 피해자(혹은 국가)는 가해자에게 처절한 자기비하와 비굴함을 요구하고, 가해자가 이를 충족시켰을 때 비로소 분노를 거두고 용서를 베푸는 방식으로, 누스바움은 이러한 자기비하적 참회가 눈에 띄게 불쾌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국가는 피고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뿐, 그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굴종을 요구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내심의 감정인 반성을 법적으로 강제하거나 유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19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도 다분하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사죄광고 강제 사건이나 준법서약서 사건 등을 통해, 국가가 개인에게 특정 사상이나 감정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고 판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에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 즉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설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재판에서 양형 감경을 미끼로 피고인에게 반성문을 강요하고 법정에서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양심에 반하는 행위의 강제'에 해당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피고인을 위선적인 이중인격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사죄광고 제도에 대한 위헌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국가에 의한 사죄 강요가 "명예훼손죄에 의한 형사적 처단으로 만족하여야 할 보복 감정을 민사책임에까지 확장하여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를 인격권 침해로 규정했다. 민사 영역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사죄 강요가, 개인의 신체의 자유가 걸린 형사 절차에서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강제되고 있는 현실은 가히 모순적이다.
반성에 대한 법적 기준의 부재가 낳은 사례 중 하나로,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서 들수 있다. 당시 정권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에게 '사상전향'을 강요하며,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가석방이나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고문을 가했다. 임현경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수감자들은 "과거를 뉘우치고 대한민국에 충성하겠다"는 전향서를 쓰라는 압박에 시달렸으며, 이를 거부하면 "뉘우침이 없고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안전법에 의한 보안감호처분을 받아야 했다.
대법원은 1985년 판결에서 "피고인이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지 않고 뉘우침이 없으므로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시하며 이러한 강제적 조치를 정당화했다. 이는 '뉘우침'을 내면의 사상개조와 동일시하고, 이를 처벌과 격리의 근거로 삼았던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등치는 논리적 비약일 수 있으나, 작금의 형사법정에서 피고인들에게 사실상 강요되는 '반성문'은 이러한 전향서의 변형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최근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서면사과 조치를 둘러싼 논쟁 역시 반성 강요의 문제를 드러낸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결정에서 가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조치가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그 논거는 반성 강제가 아니라 '교육적 조치'라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사과한다는 행위는 내심의 윤리적 판단 감정 내지 의사의 표현이므로 외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의사에 반한 사과 강제는 학생들의 인격과 양심 형성에 왜곡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형사절차에서의 반성 요구가 갖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며, 교육현장에서조차 논란이 되는 '강제된 사과'가, 성인을 대상으로 한 형사 법정에서는 아무런 법적 통제 없이 양형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뚜렷한 법적 기준 없이 '감정적 호소'만이 반성의 증거로 통용되다 보니, 법정 밖에서는 '반성문 대필'이라는 기형적인 시장마저 형성되고 말았다. 피고인들은 자신의 진심을 담기보다는 판사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문구로 포장된 반성문을 돈을 주고 구매한다. 이는 알렉시가 말한 '전략적 행위(Strategic Action)'의 전형이다. 피고인은 상호이해나 규범의 타당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형량 감경)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법부를 기만하고 조종하려 드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법절차를 희화화하고 국민의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돈 있으면 반성도 살 수 있다"는 냉소는 법의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는 '진지한 반성'을 판별할 객관적 도그마틱이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의 결과다.
양형 판단에서 반성 여부를 확정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근거지움(Justification)의 문제에 직면한다. 만약 판사가 "피고인은 반성하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반성문을 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반성문을 쓰면 왜 반성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내용이 진실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면, "진실해 보인다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김상현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근거지움의 문제는 알베르트(Hans Albert)가 정식화한 '뮌히하우젠 트릴레마(Münchhausen Trilemma)'라는 인식론적 난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는 피론주의(Pyrrhonism)와 아그리파(Agrippa)의 다섯 가지 논변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떤 명제를 절대적으로 정당화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다음 세 가지 곤경 중 하나에 빠진다는 것이다.
김상현은 뮌히하우젠 트릴레마의 배경이 되는 아그리파의 논변을 소개하며, 이것이 현대 법철학에 시사하는 바를 분석한다. 그렇다면, 세가지 뿔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첫번째는 무한 소급(Infinite Regress)이다. 근거의 근거를 계속해서 요구하다 보면 끝없는 퇴행에 빠져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양형에 있어 "반성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묻다 보면 결국 인간의 내면, 자유의지, 신의 용서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으로 이어져 법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두번째는 순환 논증(Logical Circle)이다. 근거가 다시 원래의 주장을 전제로 하는 경우로서, 예컨대 "진지한 반성을 했으므로 감형한다"고 하고, 나중에 "왜 감형했느냐"는 질문에 "진지한 반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또는 "반성문을 썼으니 반성한 것이다"라고 하고, "왜 반성문을 썼느냐"는 질문에 "반성했으니 쓴 것이다"라고 답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는 아무런 실질적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세번째는 독단적인 절차의 단절(Breaking-off of the Process)이다. 근거 제시를 어느 시점에서 중단하고 이를 '자명한 진리'나 '도그마'로 선언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묻지 마라, 이건 직관적으로 명백하다"는 태도가 대표적이며, 알베르트는 이를 독단론(Dogmatism, 도그마티즘)으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현재 한국의 양형 실무, 특히 반성 판단은 바로 이 세 번째 뿔, 즉 '독단적 절차 단절'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연구의 결과이다. 법관은 반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객관적 기준이나 논리적 설명을 제시하기보다는, "피고인의 태도와 변론의 전체적 취지를 종합하여 볼 때"라는 모호한 문구 뒤에 숨어버린다. 이는 판사의 직관이나 재량을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더 이상의 논증을 거부하는 독단이다. 이러한 독단적 단절은 법적 논증의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이것이 앞서 지적한 양형의 불예측성과 자의성을 낳는 근본 원인으로 작동한다. 법관의 내심에서 일어나는 주관적 확신이 피고인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딜레마를 극복할 새로운 논증 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
로베르트 알렉시(Robert Alexy)는 이러한 뮌히하우젠 트릴레마를 극복하고 법적 논증의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적 논증이론'을 제시한다. 김상현의 분석에 따르면, 알렉시의 전략은 '절차적 정당화'로의 전환이며, 이를 위해선 절대불변의 진리나 궁극적인 도그마를 찾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하버마스(Habermas)와 아펠(Apel)의 담론이론을 계승하여, 합리적인 대화 당사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 속에서 논증을 교환하는 '절차(Diskurs)' 자체에 주목한다.
즉, 어떤 규범이나 판단이 '참'이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논증 절차를 거쳐 도출되었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결과의 진리성이 아니라 과정의 합리성이 정당성의 원천이 된다는 점을 강변한 것이다.
알렉시가 제시하는 '합리적 논증대화의 규칙'들은 뮌히하우젠 트릴레마를 절차적으로 해소하는 도구다. 김상현은 알렉시의 규칙들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기본 규칙), 모든 것의 기본 전제로서, 절차에 참여한 이들은 모순 없는 진술을 해야 한다(논리적 일관성). 이를 위해 언어 사용의 공통된 의미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둘(이성 규칙), 화자는 자기가 믿는 바를 진술해야 한다. 거짓말이나 기만은 담론의 합리성을 파괴한다. 나아가 누구든지 담론에 참여할 수 있고, 어떤 주장이든 할 수 있으며, 어떠한 강압도 없는 상태에서 발언해야 한다.
셋(근거제시의 규칙), 자신의 주장이 의심받거나 공격받을 때, 화자는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근거를 대지 못하는 주장은 기각된다.
김상현의 연구에 따르면, 알렉시의 이론 역시 일견 '절차의 단절'을 포함하고 있는바, 이는 담론의 규칙 그 자체를 무한히 정당화할 수는 없는 사실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상현은 이를 뮌히하우젠 트릴레마의 '독단적인 절차의 단절'과는 구별되는 '절차적 단절(Procedural Breaking-off)'로 평가하고 있어 흥미롭다.
독단적인 절차의 단절이 "내가 옳으니 따르라"는 권위주의적 중단이라면, 절차적 단절은 "우리가 합의한 합리적 규칙에 따라 논의했으니, 그 결과를 잠정적으로 수용하자"는 약속에 기초한 중단이다. '잠정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언제든 새로운 반증이나 더 나은 논증이 등장하면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가류주의(Fallibilism)'를 전제한다. 즉, 알렉시는 뮌히하우젠 트릴레마의 무한소급을 끊어내면서도, 독단론에 빠지지 않는 '제3의 길'을 절차적 합리성에서 찾은 것이다.
이러한 알렉시의 통찰은 양형 도그마틱의 부재로 신음하는 우리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우리도 '반성'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을 쫓는 것을 멈추고, 피고인의 행위를 합리적 논증 절차 위에 올려놓고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알렉시의 이론을 양형에 적용하면, 반성은 더 이상 내면의 감정이 아니라 외부로 표출된 '언어적, 행위적 상호작용'이 된다. 임현경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인지설'과 '의사소통행위설'을 통합적으로 제시한다.
인지설적 측면에서, 반성은 자신의 행위가 법을 위반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발생한 해악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한 자백을 넘어, 사건의 경위와 자신의 동기, 결과에 대해 '진실된 설명'을 제공할 책임을 포함한다. 피고인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이러한 인지적 반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아가 의사소통행위설에 따르면, 반성은 공동체와 피해자를 향한 대화적 실천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을 빌리자면, 피고인의 반성 표명은 하나의 화행(Speech Act)으로서, 청자(피해자 및 법관)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수용해달라는 요청이다. 이때 이 화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서 알렉시가 말한 규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즉, 피고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며, 그의 약속이 이행 가능해야 한다.
기존의 양형 실무는 피고인의 '반성하는 태도'를 통해 그의 인격을 평가하려 하였는바, 이는 덕윤리학적 접근으로, "저 사람은 원래 착한 사람이다"라거나 "악한 성품을 가졌다"는 식으로 피고인의 전인격을 심판하려 드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임현경은 이러한 '인격평가설'이 피고인의 사회경제적 환경이나 기질적 특성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반사회적 인격장애(이른바 사이코패스)를 가진 피고인은 생물학적으로 반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또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소년범은 세련된 반성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항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들에게 '성품으로서의 반성'을 요구하고 이를 결여했다하여 가중처벌한다면, 이는 책임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나아가 행위 책임을 넘어선 인격책임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반성 판단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임현경은 이를 '인격 평가'가 아닌 '역량 평가(Capacity Assessment)'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이 반성의 감정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법을 준수하고 피해를 회복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피고인에게 도덕적 성인군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알렉시의 담론이론에서 모든 참여자에게 '이성적 언어 능력'을 전제하고, 이를 갖추지 못한 자에게는 담론 참여를 제한하거나 능력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나아가 임현경은 응보적 관점의 도덕적 책임을 대체할 개념으로 '의무부담적 책임'을 제안한다. 이 개념은 월러(Bruce N. Waller) 등의 논의에서 유래한 것으로, 과거의 행위에 대해 고통(형벌)을 감수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향해 자신의 삶과 행위를 통제하고 관리할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양형 도그마틱에 적용한다면, '진지한 반성'은 막연한 후회가 아니라 구체적인 '의무 부담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도출된다. 그렇다면, 그 '의무 부담 행위'는 무엇을 지칭하는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는 피해 회복 의무로서,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원상복구하거나 금전적으로 배상할 일차적 의무를 진다. 단순한 공탁이 아니라, 피해자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시도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이는 스캔론(Scanlon)이 말한 '피해 확인(Affirmation)'의 과정이다.
두번째는 교육 수용 의무로서, 자신의 행위가 왜 범죄인지,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에 대해 무지했다면, 이를 깨우치기 위한 준법 교육을 이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는 무지로부터 탈피하여 법 의무를 인지할 역량을 키우는 행위다.
세번째는 치료 수용 의무로서, 만약 어떠한 범행의 원인이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충동 조절 장애 등이었다면, 단순한 후회를 넘어 전문적인 치료를 받겠다는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행위 통제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이며, 미래지향적 책임의 핵심이다.
이러한 의무부담적 책임은 피고인이 "잘못했습니다"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망가뜨린 것을 이렇게 고치겠습니다"라고 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에 다름없다는 점에서, 뮌히하우젠 트릴레마의 무한 소급을 끊어내는 확실한 '절차적 근거'가 될 수 있어 시사점을 준다. 판사는 관심법으로 피고인의 마음을 투시할 필요 없이, 그가 제시한 계획의 타당성과 이행 가능성을 심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알렉시의 이론을 양형 실무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양형 절차를 하나의 '합리적 담론장'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때 여기서의 피고인의 변론(반성)은 단순히 감정을 호소하는 표출적 행위가 아니라, 반드시 규범적 타당성을 주장하는 논증행위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실무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여기선 두가지 전제를 짚어 보도록 한다.
첫째, 알렉시의 진실성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알렉시는 화자는 자기가 믿지 않는 것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반성한다"고 말하면서 뒤로는 범죄 수익을 은닉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한다면, 이는 진실성 규칙 위반이다. 법원은 피고인의 말(주장)과 행동(사실)의 불일치를 엄격히 검증하여, 불일치가 발견될 경우 '반성 없음'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피고인이 전략적으로 반성을 연기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근거제시의 규칙의 적용하는 것이다. 주장을 하는 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는 이상, "반성하고 있으니 감형해달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은 그 반성의 근거를 제시할 의무를 져야 한다. 이때 그 근거는 감정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의무부담적 책임의 이행 내역(합의서, 치료 이력, 교육 이수증 등)이어야 한다. 근거 없는 반성 주장은 기각되어야 마땅하다.
장기적으로 입법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이른바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에 명시된 '진지한 반성'이라는 독립된 일반 양형 인자를 삭제해야 한다. 이 모호한 항목은 판사의 자의적 판단과 피고인의 연기를 정당화하는 통로로만 기능할 뿐이다. 감정으로서의 반성은 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때, 모든 '감정'이 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독해해서 안 된다. 법감정이라는 것이 분석 대상이자, 하나의 감정으로서 실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반성'이 담당하던 기능은 '피해 회복 노력'과 '재범 방지 노력(교육/치료 의무 이행)'이라는 객관적 요소로 흡수·재배치되어야 한다. 피해자와 합의하였거나 상당한 피해 회복이 이루어진 경우, 이는 그 자체로 독립된 감경 사유로 평가되어야 하지, 여기에 굳이 '반성'이라는 주관적 꼬리표를 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피해 회복이 불가능한 사안이나 피해자가 없는 범죄의 경우라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수사 협조(진실 규명 기여)를 했거나, 재범 방지를 위한 구체적 조치(치료 감호 자청, 면허 반납, 사업장 폐쇄 등)를 취했는지를 평가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성문의 증거 가치 배제해야 한다. 이른바 '반성문'의 제출을 양형 자료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거나, 그 증거 가치를 현저히 낮게 평가해야 하며, 이를 위해 피고인이 작성한 '책임 이행 계획서'나 '피해 회복 현황 보고서'를 주요 양형 자료로 삼는 것을 제안한다. 이는 피고인에게 문학적 작문 능력이 아니라 실천적 책임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 형사재판의 양형 절차에서 '반성'이 갖는 법도그마틱의 부재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렉시의 논증이론과 임현경의 의사소통행위론을 접목하여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보았다.
현재의 '반성'은 응보적 정의관에 기생하여 피고인의 굴종을 강요하고, 재판을 위선적인 연극 무대로 만들며,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해 있다. 이는 '진지한 반성'이라는 개념이 객관적 실체가 없는, 검증 불가능한 내면의 상태를 지칭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이는 뮌히하우젠 트릴레마의 '독단적 절차 단절'에 해당하며, 법치주의적 관점에서는 '법의 내적 도덕성'을 결여한 상태다.
이에 본고는 반성을 '감정'에서 해방시켜 '의무부담적 책임'을 이행하는 '절차적 행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피고인이 느껴야 할 것은 막연한 슬픔이나 수치심이 아니라 구체적인 책임감이며, 그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눈물이 아니라 피해 회복과 재범 방지를 위한 실천적 행동이다.
알렉시의 법적 논증이론은 이러한 전환에 강력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알렉시가 진리의 문제를 절차의 문제로 치환하여 법적 판단의 정당성을 확보했듯이, 우리 역시 반성의 진정성 문제를 '회복적 정의를 위한 절차 이행 여부'로 치환함으로써 양형의 객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사람의 마음을 심판하는 신의 영역을 탐해선 안 된다. 법은 오직 드러난 행위와 절차를 통해 정의를 세울 뿐이다. 이제 법정에서 "반성합니다"라는 공허한 알리바이를 걷어내고, "책임지겠습니다"라는 실천적 언어가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명령하는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형법이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하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2025. 12. 1.
임현경, 《"뉘우침"에 관한 양형 법도그마틱- 반성이란 무엇인가》, 한국법철학회, 『법철학연구』 제26권 제3호, 2023. 12., 47-96면
김상현, 《알렉시의 법적논증이론의 최종적인 근거지움은 성공했는가-뮌히하우젠 트릴레마의 극복 여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이론연구센터, 『기초법학연구』 제2호, 2022. 6., 317-3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