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쏘시개 연작 - 11번
끔찍한 악몽. 언제쯤 끝나는 걸까. 현재 시각 새벽 1시 10분. 나는 고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이미 식어버린 땀과 함께 잠에서 깼다. 축축하고 끈적한 매트리스의 흔적은 전장의 상흔처럼 난잡하게 벌어져 있었다. 피 대신 땀일 뿐이다. 서둘러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도 심장은 발버둥질하며 마지막 펌프질을 하는 것 마냥 애처롭게 움직인다. 살아있음과 죽어감이 공존하는 이 상황.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내 왼손은 책상 윗편의 신경안정제를 들고 입안에 지원군을 투하한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놓인다. 약효가 나타나기까진 시간이 걸리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오늘은 저녁약도 이미 먹은 상태였다. 오후 9시에서 불과 4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으나 현 상태는 ‘부득이한’ 양상으로 흘러갔었다.
너무나 ‘부득이해서’ 하마터면 죽을 것 같았다. 공황인가. 최대한 왼쪽 동공으로 흘러 들어가는 피에 힘을 준다. 눈을 감기 위해 말이다. 눈을 감고 자판 위의 손가락들에게 마저 관심을 끊어 지금 이 상황을 기록해야 한다. 나는 무언가에 집중하고자 할 때 항상 눈을 감곤 했다. 듣기평가를 치룰 때도, 시험장에서 이지선다를 고를때도 늘상 그랬으니 말이다. 지금 역시 그러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대한 기억하고 남겨야 한다. 그게 내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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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해변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간척지와 비슷한, 이른바 갯벌내음이 코를 간지럽히는 시큼한 소금 냄새. 그것이 즐비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있는 한 펜션에서 나는 눈을 뜬다. 주변에 흐트러진 옷가지들은 누구의 것일까. 서둘러 내 옷으로 보일 만한 것들을 싹 다 모아, 뒤편에 있는 그레이 백팩(Grey backpack)에 쑤셔 넣는다. 차곡차곡 넣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런 이상한 공간에선 무엇이든 기민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정당화 과정을 생략한 채, 나는 심장에 아드레날린을 요청한다. 요동치는 심장과 함께 마지막 옷가지를 가방에 넣고 일어선다. 다리에 추라도 달린 건지 상당히 무겁다.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동안엔 미처 못느꼈던 불편한 상태가 나를 엄습했다. 언젠가 읽었던 인지심리학 교과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의 신체는 무언가에 집중할 땐 그 외의 신경에서 들어오는 전기신호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는 보병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때는 느끼지 못한 통증이 ‘고통’의 모습에서 ‘절망·지옥’으로 변한 때는 다름 아닌 전장에서 벗어나 그 상처를 목도했을 때다. 왼쪽 아래에 있어야 할 허벅다리는 곤죽마냥 짓이겨 그 형채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군복과 함께 작별을 고한 왼편의 허벅지를 보자 끔찍한 아픔이 뇌로 직접 들어온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계속하자. 창문 밖은 어두컴컴했고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새삼 와닿았다. 회색 꾸러미를 등에다 놓고 서둘러 문밖으로 나서기로 했다. 오래된 나무문에 달린 녹슨 철접이 세월의 흐름을 상기시켜줬다. 문을 여니 스산한 기운이 들어 나도 모르게 닭살이 돋았다. 오들오들떨며 몸을 바깥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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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30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얼른 무언가라도 타 이 엿같은 섬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두 가지가 나를 화나게 했다. 하나는 배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하나는 나머지 일행들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큰누나와 엄마는 늦어도 이해했다. 아니 그냥 신경안쓴다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작은누나의 이러한 ‘작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언제나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워 일처리를 해온 그녀는 흡사 작은 거인이었다. 물리적인 제약만 없었다면 필시 장신을 뽐내며 그 위세를 떨쳤을 것이 분명했다. 멀리서 그녀들(them)이 이곳으로 나지막하게 걸어온다. 어떠한 가방도 없이. 시야에 점점 윤곽이 구체화되자 내 뇌는 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 현재 인원은? 2명. 누구 누구? 작은누나와 큰누나. 누가 없는 거지? 엄마. 오케이. 스캔과정을 끝냈을 때 이미 그들은 도착한 상태였다.
혼자서 지껄이는 그의 모습에 의아해할줄 알았으나, 아무런 일도 없었듯 제자리에 서 있었다. 왜지? 왜 지적을 안하는 거지? 그 잘난 지적 말이다. 게다가 엄마는 왜 없는거야. 어딜 갔길래. ‘나’의 시선은 곧장 멀어져 갔다. 못해도 3m는 떨어져 있는 상태서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때의 ‘그들’에는 나 자신도 포함돼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한명의 감독. 배우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연기를 평가하고 지적하는 존재. 잠시 후 ‘나’로 보이는 대역이 누나들과 언쟁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심해져 가는 언성.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역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하지 않는가. 단지 그 당사자에 ‘나’가 있었다는 정도만 빼고. 그럼 구경이 아니지 않을까? 아니다. 구경이 맞다. 저건 내 ‘대역’이니까.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 그들을 보는 제3자에 불과해. 십여 분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자, 큰누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있는 힘껏 목청을 내더니, 오른손엔 어느새 거대한 주사와 바늘이 들려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녀는 죽어버린 입을 묘한 표정으로 연 후, 그 흉측한 도구로 ‘대역’을 찌르기 시작했다. 푹. 얼굴 위주로, 그것도 아랫입술과 오른쪽 볼. 수십번을 찌르며 피를 뽑아냈다. 바닥엔 혈흔이 낭자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핏자국은 옷과 머리카락을 적시는데 쓰였다. 립스틱을 칠한 것처럼 입술은 붉게 물들더니 어느새 괴사 직전의 상태에 직면했다.
아프다. 너무 아파서 미칠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고통은 너무나 생생했다. 대역이 맞나. 나는 서둘러 왼편에 든 확성기로 배우들에게 소리치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없었다. 확성기따위는 처음부터. 왼손엔 빨간색 물감이 꽃을 피웠고 정면엔 죽은 이의 얼굴이 비쳤다. 눈 두덩이가 모두 파여 검은색 공간만이 가득 채운 공동(恐動). 소리 칠 새 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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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여긴 또 어디야. 온갖 기자재들이 가득 놓인 창고를 지나 길을 헤메고 있었다.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는 작금의 얇은 그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2000년대 초에 초등학교에 보급됐던 양산형 ‘콤퓨타’의 모습을 띤 그것들은 화면이 깨진채 덩그러니 바닥에 쌓여있었다. 드디어 문이 보인다.
「철그렁 철그렁」
무슨 소리지.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려 했다. 그 녀석을 보았을 때 동공은 커졌고 심장에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나오는 걸 느껴졌다. 다리는 덜덜えjふぁうrkstlsglあはえんっdlfmfwlxおgkrhdltdjてk.wjdcpfmfdkftndjqtsmsrhlgksdldhfmswhrdpshrtmsfpsclfmfえmfrhskfmfwhcdkdhrhdltdjてjsrjtdぇk。
도망쳐야 돼. 문을 부여잡고 돌린다.
「끼익」
제길. 소리가 너무 크잖아. 잠시 후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집이 달려오는 걸 느꼈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문밖을 나오니 녹슨 복도가 즐비했다. 코를 유리하는 이 좆같은 쇠 냄새. 맡는 것만으로도 파상풍에 걸릴 것만 같았다. 숨을 헐떡이며 방향을 정하려고 할 때, 오른편에 놓은 5개의 캐비넷과 그 앞에서 쿵쿵거리는 ‘사람’을 보았다. ‘사람’은 애처롭게 캐비닛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나를 들여 보내줘. 보내달란 말이야. 제발. 이 씨발놈들아.
「쿵」
그 거대한 괴한의 숨소리에 한기가 들었다. 주변 공기가 차가워서 그런게 아니었다. 내 몸은 땀으로 점철된 상태였기에 말이다. 이제 진짜 죽었구나. 눈을 감고 고통을 체감하려던 찰나, 비명이 나야 할 자리가 이곳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오른쪽에서 애처롭게 렌치로 두들겨 맞고 있는 ‘사람’. 아니 두들겨 맞는건 너무 귀여운 표현이다. 이건 가히 도축이었다. 렌치가 저런 용도였나. ‘사람’은 비명에 가까운 절규와 함께 핏덩이가 되었다.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야 해. 그런데 왜 나한테 안 오고 저 사람에게 간 거지? 앞을 못보는 건가. 그래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거였을까. 괴한이 자리를 벗어난 틈을 타 최대한 빨리 캐비닛으로 몸을 옮겼다. 피로 얼룩진 3번째 캐비닛을 피해 4번째 자리의 손잡이를 부여잡는다.
「철컹」
문이 열린다. 나는 서둘러 몸을 숨겼다. 평소보다 2배는 빨리 뛰는 심장이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펌프질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음을 안건 오래지 않았다. 바닥에 질질 끌려 들려오는 역겹도록 녹슨 하모니가 귓바퀴에 도달한 것을 감지했을 때, 왼쪽에서부터 들려오는 거친 굉음으로 고통스러웠을 때, 어느새 내 앞까지 와 쾅쾅거리며 렌치로 두들기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왜 나야? 왜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나 말고도 죽어야 할 새끼들은 지천에 널려 있잖아. 왜 나냐고. 제길.
외마디와 함께 이미 내 몸뚱아리는 그의 손에 이끌려 바깥으로 내동댕이 쳐진 상태였다. 바닥과 입맞춤하듯 완전히 붙어버렸을 때 내 눈에 띈 빨간 핏덩이가 다시금 화면에 인출됐다. 속이 뒤틀리듯 구토할 것만 같은 광경이었는데도 몸이 그거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지금 내 뒤에서 이뤄지고 있어 본능적으로 차단할걸지도 모른다.
이젠 진짜 죽는 건가. 렌치로 여러 대나 맞아서 그런지 정신이 혼미해져만 갔다. 선체가 박살이 난 비행체처럼, 위험 표시를 띄우며 탈출할 것을 권고하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함장처럼 내 몸은 그렇게 망가지고 있었다. 그만. 제발. 너무 아파. 제발. 그만 때려.
시야가 흐려지고 있을 때, 뿌옇게 보이는 큰 물체 하나가 저기서 뛰어왔다.
「쿵쿵」
바닥의 진동 소리가 곧바로 귀속에 쳐박히는게 느껴졌다. 먼지와 쇳가루, 그리고 피 냄새를 전부 마시며 의식이 사라져 가는 그때. 내 뒤에서 폭음이 들려왔고 이후 뜨거운 액체가 뒤통수를 적시는게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었다. 이건 분명 피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조망하기로 했다.
렌치를 들고 있어야 할 개새끼의 모습은 더 이상 그 형태를 띠지 아니했다. 하반신과 상반신이 서로 절단난 채로, 온갖 신체 장기가 바깥으로 튀어나와 생존의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바닥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피로 덮은 타일 위에 회색빛 바닥이 올려져 있는 정도였다. 그 폭음은 이 개자식의 상반신을 날리는 데 썼나? 차분하게 생각하고 싶었으나 이미 내 후두부는 세 명의 피로 얼룩진 나머지, 무엇이 내 머리에서 나온 선지국인지도 알기 어려운 형국이 되었다. 의식이 흐려져 가고 다시 쓰러지려고 할 때쯤, ‘죽는다’는 것이 체감이 될 때쯤.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세 번째 캐비닛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두 개의 노란 불빛. 나를 비웃는 듯한 역겨운 음성」
차갑다. 바닥이 이렇게 차가웠나. 피는 분명 뜨거운게 아니었나. 너무 차가워. 아. 저곳에 숨어야 했던걸까.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거 같아. 더 차가워진다. 바닥과 하나가 된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라. 어떻게 이 방을 벗어날 수 있겠냐고. 여기까진가. 엿같다.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을지도 몰라. 아마도.. 그렇겠지..? 그냥 잘래. 너무 졸려.
「스르륵」
2025. 9. 19.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