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고동(心臟鼓動)

불쏘시개 연작 - 25번

by 소는영


비명(悲鳴). 그동안 진부하다고만 생각했던 “으아아악”하며 내지르는 소리. 그 것을 직접 경험해본 후로 단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기존의 생각을 철폐(撤廢)해야 마땅했다. 가위눌림으로 뇌는 각성했으나 몸은 여전히 잠들어 있을 때,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컨트롤타워(中央統制施設)가 있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되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나는 공포를 알게 되었다.


순간 사지는 멈춰있어도 소리 지르는 것은 본능인가 싶기도 했다. 혀가 주인 없는 살덩이처럼 꿈틀거리며 입안을 천방지축 돌아다니기만 바쁠 때, 목젖을 통해 올라온 파발마(擺撥馬)가 도성의 봉화(烽火)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직 밤도 채 시작하지 않은 상태서, 한 고요한 나라의 깊고도 깊은 동쪽 바다같이 잔잔한 물결만이 쑥쓰러운 듯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잘 내뱉던 그 말. 하다못해 ‘제길’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제대로 된 단어를 입 밖으로–말 그대로-내뱉었다면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누군가 이 방에서 들려온 괴소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주기만 했어도, 몸은 더 일찍 깰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궤변(詭辯)이다. 쓸모없는 거짓이다. 이 사태는 내가 만들고, 내가 자초하고 빚어낸 참극(慘劇).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정신 차려라. 남에게 전가하는 짓거리는 전혀 ‘나’답지 않다. 영화에서나 볼 듯한 대사인 “나 다운 게 뭔데”라고 놀림 받기에 좋은 상황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양심(良心)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어쭙잖은 나의 개똥철학이니, 태생이 이러니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지 뭐.


 



이 방(房). 애초부터 외부의 존재나 그 존재에서 파생된 일련의 모든 부산물을 차단하고자 고안한 육지의 섬이다. 나는 이 고립 속에서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중국 정부에 의해 봉쇄됐던 거대도시 우한은 세계지도에나 있던 상상의 나라가 아니었으니, 바로 이곳이 나의 우한(憂患)이었다. 내가 빚어낸 높고 높은 회색빛 콘크리트의 장벽은 비루(鄙陋)하기 짝이 없는 오만함에서 시작한 애처로운 차폐벽(遮蔽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왜 몰랐던 것일까, 아니 왜 외면했던 걸까.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천혜의 요새라고 제아무리 자언(自言)한들, ‘오랑캐’가 언제든 쉽게 넘어올 수 있음을 묵과한 채 방관만 한다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한다. 이와 같은 이치로 마음 밖의 벽을 재주 좋게 높게 지은다더라도, ‘집안 단속’을 무겁게 여기지 아니한다면 어찌 이 공간이 무너지지 않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너무나도 허탈(虛脫)하다. 아직도 사지의 감각이 채 돌아오지 않았으니, 왼편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웠던 데서 알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선 감각을 뇌로 집중시켜야만 한다. 최대한 많은 양의 피를 머리로 보낸다. 어떻게든 이 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만 하니까 말이다. 이제 눈을 감고 조용히 키보드를 내리친다. 리듬 게임을 하듯, 피아노의 건반을 애무하며 자그마한 공을 방안 천장을 향해 던진다. 공의 무게가 점점 무겁다는 걸 느꼈을 때, 내 방 안의 중력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했다. 양 손가락도 점점 무거워지더니 이젠 오른편 허벅다리가 가려움의 신호를 사정없이 보내기 시작했다. 입안에 마른 침을 한 바가지나 들이부어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듯 오른쪽으로 돌려도 여전히 안구는 의식불명(意識不明)의 상태였다. 뇌리를 스쳐 간 데이터(情報)의 파편이 양쪽 관자놀이에 마저 박혔다. 달아오른 총신(銃身)에서 나온 탄환(彈丸)이 가속하듯 전동드릴의 앞에다 설치된 대형 못이 최대의 출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떠한 지체도 허락하지 않은 채 전진하는 고속철은 종착역인 내 두개골(bulkhead)에서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꿰뚫는 빛이 자행한 고통이 엄습했다.


약물에 의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도 없을 터, 내 머리도 모르게 몰래 타이레놀로 손을 뻗어간 왼손을 낚아챈다. 항명(抗命)을 한 이 녀석을 단죄(斷罪)할 수도 없으니 가히 누굴 원망해야만 하는가.





 

내가 누웠을 때, 왼편에 서 있던 검은색 실루엣이 나의 왼팔을 가볍게 쥔 채 투명한 주사기로 뭘 주입한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이는 마치 과거 일본제국이 조선을 강제점거하던 당시 중국과의 결전을 앞두고 조선인 포로들을 대상으로 약물 실험을 강행한 것을 연상케 했다. 나는 한 명의 ‘조선인 포로’처럼 마루타마냥 그들에게 속박된 채 나의 신체가 무기력하게 유린당하는 걸 보아야만 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는 제아무리 발버둥을 치려고 한들, 점점 덫의 강도를 스스로 높이는 꼴이라는 것을 모른다. 서서히 포식자에게 모스부호를 보낸다는 것을. 귀신이라도 들린 듯, 광기(狂氣)처럼 흔들리는 섬유질의 모습에선 마치 피아노 건반에 연결된 음선(音線)이 현현(顯現)된다.


마에스트로의 손은 붉은 땀방울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높게 올라가는 라데츠키 행진곡의 헤르츠,
지휘자의 손동작은 점점 빨라진다.
관중의 열광은 하나의 카타르시스이자, 하나의 파토스(情念)
여덟 개 달린 눈을 동시에 깜박이는 순박한 ‘거미’는 ‘악당(惡黨)’ 나비를 복수(復讎)하리라
거미줄의 흔들림은 색정(色情) 속 침대 위를 보듯 흔들거림을 반복한다
자연의 지저귐은 또 하나의 진화의 파도를 묵묵히 예찬(禮讚)하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프로이트가 지껄인 ‘무의식’ 상태가 나로 하여 검은색 등줄기를 만들게 한 것일까. 당장이라도 그 자식의 멱살이라도 잡아 이 부당한 포괄일죄에서 벗어나고 싶다. 포괄일죄(包括一罪)란 행위자가 하나의 범의(犯意)를 가진 채, 그것에서 기인한 범행을 일관된 태도로 수차례에 걸쳐, 독립된 사건으로 자행(自行)하는 것을 뜻한다. 형법에서 다루는 용어라 일상에선 육성(肉聲)의 춤(舞姬)으로 현현(顯現)할 기회도 없다. 하지만 한적한 시골길일수록 범행은 일어나긴 쉬운 법. 작금의 ‘비정상적인 정상’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겐 ‘포괄일죄’가 지금의 시국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단어라 생각한다.


19231231.png 조지 오웰,〈1984〉


목이 잘린 오세아니아의 젊은 대위는 스스로 주도권을 잡은 채, 하나의 통제 불가능한 바이러스처럼 적국 병사들의 몸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한 명, 한 명을 쓰러뜨리며 그들의 검은색 전투 헬멧 속을 휘젓기 시작한다. 단단한 목뼈조차 막아내지 못하는 ‘위대한’ 오세아니아인의 환희(歡喜)로운 열정은 무고한 하품마냥 전 병영에 퍼져나간다. 백혈구가 도착하기도 전에, 육신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그들의 얼굴엔 어떤 이유에선지 수심(愁心)조차 보이질 않았다.


사이코패스의 텅 빈 방은 좁고도 넓은 하얀색 벽지로 꽉꽉 채워진 채 누군가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지길 기대한다. 피학증과 가학증의 변증법을 선보이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저 신사는 도대체.





 

귓가에 맴도는 음악이 어느새 한 바퀴를 다 돌았는지, 테이프의 태엽이 역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핸드폰을 펼쳐보니 어느새 시계는 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항상 글을 쓸 때면 적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標語)가 된 문구가 있다. “언제나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나’가 나타난다.” 의미부여를 크게 한 건 아니었지만 이젠 정말 ‘말하는 게 씨가 된’ 기분이다.


자기실현적(自己實現的) 태도는 그 목이 양지(陽地)를 향해 들이 내밀 땐 햇빛의 은총을 받게 해준다. 그러나 음지(陰地)로 가면 신이 저주의 위령곡(鎭魂曲)을 내 귓가에 쑤셔 박는다. 이중창을 뚫고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귀뚜라미 씨의 고백은 언제나 감미(甘味)롭고 고혹(蠱惑)하기 그지없다. 애정을 찬미(讚美)한 나는 미미(美味)한 고독(孤獨)을 ‘에피타이져’(朝餐)로 삼는다.


차분하게 책상에 앉은 채 악몽을 연료로 삼아 움직이는 바이오매스 동체(動體)는 묵묵히 검은 활자를 응시하며 하얀 종이가 젖고 있는 걸 감상한다. 한 장씩 물들 때마다 파피루스의 참나무는 순수한 정액을 산소처럼 계속해서 내뿜는다. 끈적하고도 달콤한 그의 고로쇠가 내 옆에 놓인 레드와인(赤葡萄酒,red wine)을 우습다는 듯이 쳐다보며 나를 유혹한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어느새 내 폐부를 찌르기 시작하더니 큰 구멍을 뚫어 놓았다. 혼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순진무구한 애완견처럼 그저 꼬리를 흔들며 교태(嬌態)를 부리기 바빴으니 가히 처세의 달인이다. 감기는 눈도 추위는 어찌할 수 없었단 말인가. 지조와 소신은 과거 왕조의 사라진 유산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정책(政策)을 펴야만 하는가. 선군(善君)과 암군(暗君). 그 사이의 폭이 북쪽의 크레바스만큼 넓어지고 있을 때 겨우 이성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2시를 향해 달리던 파발마는 목이라도 말랐는지 근처 마구간에 들러 앉아 해갈(解渴)하며 하늘 위에 떠도는 금성에 자신을 투영(投影)하듯, 눈물샘을 저 광활한 우주로 보내기 바빴다.






 

나 자신과의 싸움(爭鬪). 황정민이 연출한 영화 〈아수라〉에서나 볼 듯한 끔찍하고도 잔인한 광경은 지옥도의 위세(威勢)를 떨어뜨리는 데 충분했다. 이야기 창고로 보낸 하인에게서 바닥난 조롱박 서너 개가 너저분하게 바닥에 버려져 있다는 것을 들은 나(我). 노랗게 빛나던 형체가 힘없이 하얗게 변질(變質)됐음을 알았을 때, 연민의 감정이 사랑(愛)과 슬픔(哀)으로 포장된 채 입 밖으로 나오게 됐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이젠 더 할 이야기도 없구나. 아. 오늘의 추노(趨奴)는 여기까지구나. 두 시간에 걸쳐 그린 ‘놈’의 몽타주는 오늘도 미완(未完)에 그쳐야만 한단 말인가. 도대체 그 주사는 무엇이고 내 비명은 어찌 그리 절절했던 것일까!”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을 담아 오늘의 기억을 이정표에 담아 이 깊고 넓은 광야에 박아 넣겠다. 양 볼을 스친 이 존재가 모래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 분간조차 안 가는 지금이야말로 글을 마쳐야 하는 순간이다. 마친다. 바로 여기서. 미래의 ‘나’에게 남길, 이른바 작금의 ‘나’로부터의 편지를 보내며.







2020.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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