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29화
대한민국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상규(社會常規)' 조항으로 명명되는 이 규정은 독일이나 일본의 형법전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 형법만의 독창적인 입법례이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통상적으로 위법성조각사유는 정당방위, 긴급피난 등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여 개별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우리 형법은 '사회상규'라는 일반조항[Generalklausel]을 두어 위법성 판단의 최종적인, 그리고 개방적인 관문을 열어두고 있다.
이는 형식적으로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실질적인 관점에서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사회윤리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실질적 위법성[Materielles Unrecht]이론의 입법적 결단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적 결단이 과연 형법의 보장적 기능과 '죄형법정주의'라는 형법의 대원칙 위에서 정당하게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사회상규'라는 개념이 내포한 모호성과 불확정성은 법관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함으로써, 사법적 자의를 초래할 위험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바, 이에 본고는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 조항이 어떠한 역사적 궤도를 통해 도입되었는지를 규명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들을 분석한 뒤, 비판적 시각에서 이 조항이 초래하는 형법 도그마틱상의 문제점을 파헤치고자 한다.
본고의 1차적 목적은 형법 제20조 사회상규 조항의 의미를 역사적, 이론적 맥락에서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동운의 연구를 바탕으로 가인(街人) 김병로의 사상과 1953년 제정 당시의 논의를 추적하고, 양화식의 연구를 통해 이 조항이 가지는 '일반적·포괄적 위법성 조각 사유'로서의 성격을 규명할 것이다.
2차적 목적은 이러한 긍정론적 시각, 즉 사회상규가 실정법의 흠결을 메우고 구체적 타당성을 실현한다는 주장에 대해, 김성돈의 비판적 관점을 수용하여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상규 조항이 가지는 '적극적 역기능'과 '형법의 도덕화' 위험성을 논증하며, 갈라스[Gallas]의 예시와 같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실질적 위법성 이론이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논리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사회상규 조항에 대한 논의는 그 입법적 기원을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법제사적 호기심을 넘어, 입법자가 '사회상규'라는 모호한 개념을 형법전에 도입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했던 형사정책적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 제20조의 뿌리는 1953년 형법 제정 시기가 아닌, 그보다 훨씬 앞선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젊은 법학자였던 김병로는 『법학계』에 기고한 「범죄구성의 요건되는 위법성을 논함」이라는 논문을 통해 '사회상규'라는 개념을 이미 정립하고 있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위법성의 본질을 논하며,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의 공평에 의하여 사회적 반상규성, 즉 위법의 특별성이 있음을 요한다"고 주장하였다.
김병로에게 있어 위법성이란 단순한 형식적 법률 위반이 아니었다. 그는 위법성의 실질을 '반상규적 특별성'으로 파악하였고, 이때의 사회상규를 "공(公)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으로 정의하였는바, 이는 일본 민법상의 '공서양속' 개념을 형법의 위법성 판단 기준으로 차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김병로가 이러한 이론적 구성을 전개함에 있어 당시 일본 형법학계의 거두였던 마키노 에이이치(牧野英一)의 주관주의 형법 이론과 사회진화론적 시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마키노는 형식적 위법성을 넘어선 실질적 위법성의 판단 기준으로 '행위의 사회적 상규성'을 거론하였는데, 김병로는 이를 수용하여 식민지 조선의 법현실에 맞는 독자적인 위법성 이론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김병로는 1915년 논문에서 당시 일본, 프랑스, 독일의 형법에는 실질적 위법성을 판단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음을 지적하며, 이를 입법의 불비로 보았다.
반면, 그는 1911년 반포된 청나라의 대청신형률(大清新刑律), 이른바 지나형률의 총칙 제14조에서 "법률에 따른 행위 또는 업무 행위 외에 공서양속 또는 관습에 반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종래 각국의 입법례에 일찍이 보지 못한 영단(英斷)"이라고 극찬한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김병로의 인식은 해방 후 1948년 법전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형법 기초 작업을 주도할 때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는 서구 근대법의 계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중국의 입법례를 참조하여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는 조항을 형법 제20조에 명문화하였다. 이는 독일이나 일본의 형법을 답습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실질적 위법성'의 판단 권한을 명문으로 법관에게 부여한 독자적인 입법적 결단이었다.
사회상규 조항이 입법되는 과정에서 이 조항의 기능에 대한 당시 입법자들의 인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53년 국회 본회의 심의 당시 있었던 '분묘발굴죄'와 관련된 변진갑 의원과 엄상섭 의원 간의 논쟁이다.
당시 분묘발굴죄(제160조)와 관련하여 변진갑 의원은 "자기의 수호에 의하지 아니한 분묘"만을 처벌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하였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상 조상의 묘를 이장(면례)하거나 합장하기 위해 자신이 수호하는 분묘를 발굴하는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가혹하며, 우리의 미풍양속에 반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에 연유하였다. 이는 서구적 법률 규정이 한국의 전통적 효 사상이나 관습과 충돌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가벌성의 확대를 우려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제사법위원장 대리였던 엄상섭 의원은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 조항을 들어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사회상규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와 그 지역의 여러 가지 관습과 모든 것을 합해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자기 조상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발굴하는 행위는 설령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엄상섭은 별도의 예외 규정을 두지 않더라도, 제20조라는 일반조항이 존재함으로써 형식적인 실정법 규정이 포섭하지 못하는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논쟁은 사회상규 조항이 도입 초기부터 형식적인 실정법과 한국의 전통적 관습 사이의 충돌을 완화하는 완충 장치이자, 구성요건의 경직성을 해소하는 '해석의 마스터키'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양화식을 비롯한 긍정론자들은 사회상규 조항이 한국 형법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입법이며,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조화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평가한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본 것인가.
1.
양화식은 형법 제20조의 법적 성격을 일반적·포괄적 위법성조각사유로 규정하면서, 이를 우리 형법 제21조의 정당방위, 제22조의 긴급피난, 제23조의 자구행위 등 개별적인 위법성조각사유들이 사회상규라는 거대한 원리에서 파생된 예시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즉, 사회상규는 모든 정당화 사유의 원천이자 근본원리이며, 개별 조항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안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보충적 지위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법령에 의한 행위'나 '업무로 인한 행위' 역시 사회상규의 구체화된 형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설령 형식적으로는 법령에 근거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헌법적 가치나 사회윤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라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법령이나 업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사회상규에 부합한다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는 법관에게 실정법의 문언에 얽매이지 않고 '법 전체의 정신'에 입각하여 사안을 판단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하는 해석론적 근거가 된다.
2.
둘째, 이 조항이 '초실정적 정당성 기준'을 실정법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나치독일 당시의 수권법을 비롯한 일련의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실정법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때로는 정의에 반할 수 있다. 양화식은 이 지점에서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적 테제인 '라드브루흐 공식'과의 연관성을 제기한다.
라드브루흐 공식은 "법적 안정성을 위해 실정법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실정법과 정의 사이의 모순이 참을 수 없을 정도[Unerträglichkeit]에 이르면 그 법률은 '부정당한 법'으로서 효력을 상실한다"는 원리이다.
양화식은 한국 형법의 사회상규 조항이 이러한 초법규적 법원리를 명문화함으로써, 독재 정권하의 악법이나 정의에 반하는 국가 권력의 행사에 대해 법관이 사회상규(정의)를 근거로 그 위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평가한다. 즉, 제20조는 단순한 관습의 존중을 넘어, 헌법적 가치와 정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성돈을 비롯한 비판적 견해는 사회상규 조항이 가지는 위험성에 주목한다. 이들은 사회상규라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개념이 형법의 보장적 기능을 허물고, 죄형법정주의를 형해화하며, 나아가 형법을 도덕의 영역으로 회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앞서 논의한 양화식과 신동운의 긍정적 평가, 즉 완충 기능이나 정의 실현 기능이 실제 형법 운용 현실에서는 오히려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1.
사회상규를 기준으로 하는 실질적 위법성 이론의 본래 목적은 가벌성의 범위를 축소하는 데 있었다. 즉, 형식적으로는 범죄가 성립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위법하지 않은 행위를 구제하는 '소극적 순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성돈은 현실에서 사회상규가 가벌성을 확대하는 '적극적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
대표적인 사례로, 부작위범에서의 작위의무 발생 근거를 사회상규나 조리로 확장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대법원은 법령이나 계약에 의한 의무가 없더라도 사회상규나 조리에 의해 작위의무를 인정하여 유기죄나 사기죄의 성립을 긍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구성요건에 명시되지 않은 의무를 추상적인 도덕 관념에서 도출하여 처벌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의 파생 원칙인 명확성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사회상규가 피고인을 위한 방패가 되어야 할 위법성 조각 단계에서 벗어나, 피고인을 찌르는 창(구성요건 해당성 인정의 근거)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는 입법자가 정해야 할 범죄의 성립 요건을 사법부가 '사회상규'라는 이름으로 창설하는 결과를 낳는다.
3.
나아가 그는 사회상규는 다른 위법성 조각 사유의 적용을 제한하는 기제로도 오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정당방위 상황에서 방위행위가 '사회윤리적 제한'을 넘었다고 판단될 때, 법원은 사회상규(윤리)를 근거로 정당방위 성립을 부정하기도 한다. 이는 명문의 규정된 권리(정당방위권)를 모호한 윤리적 잣대로 제한하는 것으로,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피해자의 승낙이 있는 경우에도 그것이 '사회상규에 반한다'는 이유로 위법성 조각을 부인하는 판례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4.
사회상규 조항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비판은 그것이 형법의 '도덕화'와 '주관화'를 초래한다는 점인데, 이는 사회상규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되는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사회윤리', '사회통념' 등은 모두 법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윤리적, 도덕적 개념에 가깝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김성돈은 이를 두고 형법이 도덕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도덕이 형법을 지배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근대 형법은 법과 도덕의 분리를 통해 개인의 내면적 자유를 보장하고, 오직 외부에 드러난 행위의 불법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사회상규 조항은 행위자의 내면적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사회적 비난 가능성 등을 위법성 판단의 핵심 요소로 끌어들임으로써, 형법을 행위형법이 아닌, 행위자의 심정이나 태도를 처벌하는 '심정형법'으로 변질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법관이 피고인의 행위를 판단할 때, 객관적인 법익 침해 여부보다 '사회의 건전한 도의감에 반하는가'라는 주관적이고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재판의 자의성을 낳게 된다.
5.
사회상규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도구로 오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론적 사례가 바로 독일 형법학자 빌헬름 갈라스가 제시한 '수혈 사례'이다. 김성돈은 이 사례를 인용하여 사회상규(또는 사회적 상당성) 개념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논리로 작동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갈라스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어떤 희귀 혈액형을 가진 환자가 수혈을 받지 못하면 사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때 유일하게 같은 혈액형을 가진 제3자가 수혈을 거부하고 있다. 만약 '사회상규'나 '사회적 연대성'을 최상위 가치로 둔다면, 이 제3자에게 채혈을 강제하거나, 의사가 강제로 채혈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긍정론적 시각, 특히 사회상규를 공동체 유지의 기본 원리로 보는 입장에서는 생명 구조라는 고귀한 목적과 사회적 연대라는 '사회상규'에 비추어 볼 때, 제3자의 신체적 완전성 침해는 경미하므로 이를 용인해야 한다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어째서 위험하다는 것인가? 바로 의사의 강제 채혈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 평가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론적 시각은 이를 개인의 신체적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본다. 김성돈은 이 사례를 통해, 사회상규가 '공동체의 이익'이나 '사회윤리'라는 미명 하에 개인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논거로 악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나아가 사회상규를 기준으로 삼는 실질적 위법성 이론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될 경우, 형법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마그나 카르타가 아니라,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해 개인을 수단화하는 전체주의적 통제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6.
죄형법정주의의 핵심은 '명확성의 원칙', 즉 범죄와 형벌은 미리 성문의 법률로 규정되어야 하며, 그 내용은 일반 국민이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상규'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극도의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이 사회상규인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어느 정도의 위반이 형벌을 초래하는지는 오로지 사후적인 법관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김성돈은 사회상규 조항이 구성요건이라는 형법의 성문을 여는 '마스터키'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입법자가 엄격하게 규정한 구성요건의 문언을 법관이 '사회상규'라는 만능열쇠를 이용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 범위를 넓히거나 좁히는 현상이 발생하는 걸 지적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주장이 실현된다면 이는 사실상 법관이 입법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국민은 법률을 보고 자신의 행위가 처벌될지 여부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의 자의적인 도덕적 감수성을 예측해야 하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7.
또한 법적 안정성은 예측가능성을 전제로 하는데, 사회상규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어제의 사회상규가 오늘의 범죄가 될 수 있고, 오늘의 범죄가 내일의 사회상규로 정당화될 수 있다.
특히 김성돈이 경계하는 것은 '형법의 주관화'가 가져올 전체주의적 위험이다. 사회상규가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으로 포장될 때, 이는 다수의 도덕적 감정을 소수에게 강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법적 판단이 객관적인 법익 침해 여부가 아니라, 행위자의 사상이나 태도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으로 흐르게 되면, 형법은 다수의 횡포를 정당화하고 이질적인 소수를 탄압하는 도구가 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사회안정'이나 '국가안보'라는 이름의 사회상규가 민주적 요구를 억압하는 데 오용되었던 역사는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증명한다.
본고는 형법 제20조 사회상규 조항의 성립 경위와 그에 대한 긍정적, 비판적 시각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였다.
김병로와 엄상섭을 비롯한 입법자들은 서구 법제와 한국적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조항을 도입하였다. 양화식과 신동운은 이러한 입법 취지를 계승하여 사회상규를 일반적 위법성조각사유이자 초실정적 정의를 실현하는 통로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김성돈의 비판적 분석을 통해 확인한바, 사회상규 조항은 그 본연의 소극적 기능을 넘어 적극적으로 가벌성을 확대하고, 형법을 도덕화·주관화하며, 결과적으로 죄형법정주의와 법적 안정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역기능을 노출하고 있다.
앞서 '분묘발굴죄' 논쟁에서 보았듯, 전통적 관습을 존중하려던 선한 의도가 현대에 와서는 '갈라스의 예'가 시사하듯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불명확한 도덕적 의무를 법적의무로 둔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생각건대 형법학은 사회상규 조항의 '영단'을 찬양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되며, 오히려 이 조항이 '마스터키'로서 남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해석론적 통제를 가해야 할 것이다. 사회상규는 오직 피고인에게 유리한 위법성 조각의 방향으로만, 그것도 보충적으로만 적용되어야 하며, 결코 구성요건을 창설하거나 확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사회윤리'나 '건전한 도의감'과 같은 모호한 개념 대신, 헌법적 가치와 객관적 법익 개념을 통해 사회상규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객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형법 제20조는 한국 형법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항이지만, 동시에 법치국가 형법이 경계해야 할 '사법(司法)의 입법화'와 '도덕의 법화'라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조항이 법관의 자의적인 도덕 재판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실질적 정의와 인권 보장을 조화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조리'로서 기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형법학에 남겨진 숙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2025. 12. 8.
양화식,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한 고찰》, 한국형사법학회, 『형사법연구』제19호, 2003., 174-199면
신동운, 《형법 제20조 사회상규 규정의 성립경위》,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서울대학교법학』제47권 제2호, 2006., 189-219면
김성돈, 《한국 형법의 사회상규조항의 기능과 형법학의 과제》,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원,『성균관법학』제24권 제4호, 2012. 12., 247-2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