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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썬이 Dec 19. 2022

홈메이드 피자는 계속되어야 한다

엄마와 나, 그리고 내 아이의 연결고리

나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베이킹도 배운 적 없고 오븐도 없었을 텐데(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많은 아파트에 기본 옵션으로 들어가던 가스오븐레인지가 우리 집에도 있었던 것 같다. 위는 가스레인지, 아래는 가스오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가스레인지를 주로 쓰고 오븐은 쟁반 수납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자를 자주 만들어 주셨었다. 파는 피자보다 맛있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하얀 밀가루 반죽을 치대다가 소중한 아기처럼 면포로 감싸서 방 안의 가장 따뜻한 곳에 찾아 내려놓고 수시로 반죽이 얼마만큼 부풀었나 확인하는 일은 꽤나 즐거웠다.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피자를 나와 내 아이의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엄마와 달리 베이킹 수업에서 정식으로 피자를 배워본 나는 수업에서처럼 이탈리안 브레드 배합표를 활용하여 반죽을 하되 강력분 일부를 통밀가루로 대체했다. 그리고 상온에서 30분 발효시킨 뒤 곧장 냉장고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2-3일 내 조리를 원하는 시점에 언제든지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


점심시간을 한 시간 정도 앞두고 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내 둥글고 넓게 펼쳤다. 수업시간에 했던 반죽 중량 그대로를 내가 쓰는 작은 오븐 팬에 맞추다 보니 피자 도우가 좀 두껍다 싶었다. 피자 도우가 너무 두꺼우면 피자가 아닌 피자‘빵’이 될 우려가 있다.


토핑은 아이의 몫이다

토핑은 아이의 몫이다. 단순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기에 아직 손놀림이 서투른 아이도 적은 노력으로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단, [피자소스-치즈-채소-햄-치즈]의 순서는 꼭 지키도록 한다. 치즈를 전후에 뿌려야 토핑들이 잘 고정된다. 토핑 마무리는 햄과 치즈로 하는데 햄에서 나오는 기름이 다른 재료들을 튀기듯이 익히면서 풍미가 좋아진다. 채소의 양이 너무 많으면 구울 때 수분이 많아져 도우가 축축해질 수 있으므로 듬성하게 조금만 올리는 것을 권한다. 또, 피자소스 대신 파스타용 토마토소스를 사용하면 수분이 너무 많고 묽어서 원하는 맛을 내기 어려우므로 가능하면 시중에 나와있는 피자소스를 찾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오븐에서 막 나온 홈메이드 피자

오븐 베이킹 단계는 짧고 강렬한데, 나의 경우에는 230도에서 10분 구우니 토핑이 살짝 탄 듯이 바짝 익혀졌다. 도우가 두꺼워서 피자빵이 될 뻔했지만 다행히 바삭한 식감으로 잘 구워졌다. 통밀의 구수하고 퍽퍽한 맛도 나는 좋았는데, 도미노피자를 좋아하는 남편이나 아이 입맛에는 백밀가루 반죽이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이번 피자는 내 마음속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있지만 내가 먹기에는 꽤 맛있는 피자’ 정도로 결론이 났다.


같은 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3시쯤 엄마가 아이들을 봐주러 우리 집에 오셨다. 엄마는 점심식사에 커피까지 하고 왔다면서도 나의 피자를 ‘참 맛있다’며 남기지 않고 드셨다. 그리고 나중에 집에 갈 때는 ‘네가 만들었다고 하면 좋아하실 거야’ 하면서 피자 좋아하시는 외할머니께도 전해주겠다고 굳이 굳이 남은 조각들을 챙겨가셨다. 내 아이에게 추억을 남겨 주자고 만든 피자가 어쩌다 보니 다시 내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내 엄마와 내 딸도 자신의 따뜻한 기억 중에 나와 내 빵을 담아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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