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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썬이 Dec 16. 2022

발효가 다 했다 치아바타

사전 반죽이 보태준 풍미 한 스푼

해도 안 뜬 새벽에 쿠팡 프레쉬로 받은 햄, 치즈, 루꼴라와 무염버터 넣은 홈메이드 잠봉 프로마쥬를 먹으면서 나는 진심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샌드위치는 치아바타가 다 했고 그 치아바타는 효모가 이틀 동안 열일해서 알아서 다 만든 것이다. 난 그저 때 맞춰 반죽 몇 번 접어주고 낡은 슬리퍼(치아바타의 뜻이라고 한다) 마냥 팬 위에 늘어놓은 뒤 오븐에 넣어줬을 뿐이다. 나를 들들 볶는 아이 셋이 있는 주말에도 구울 수 있는 빵인 것이다.



치아바타 같이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는 대신 장시간의 발효가 중요한 빵의 경우에는 사전 반죽이 큰 역할을 한다. 여기서는 풀리쉬(poolish)라고 하는 매우 묽은 반죽을 14시간 전에 미리 만들어 본 반죽 시 사용했다.


본 반죽을 하기 적합한 시점은 풀리쉬가 부풀어 최고점을 찍고 다시 부피가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라고 셰프 소랍(나의 빵 선생님)이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풀리쉬는 7-8시간이 지났을 때 3배까지 부풀었고 치아바타에 사용하기 직전에는 2배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풀리쉬에 코를 가까이 대보면 톡 쏘는 시큼한 향이 느껴지는데 이는 효모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곧 만들어질 빵에 더해질 깊은 풍미의 예고편이다. 본 반죽을 시작하기도 전에 치아바타의 반은 완성한 기분이 든다.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 만으로 풍성한 맛과 질감이 만들어졌다. 거칠지만 촉촉하고 고소하면서도 산미가 느껴진다. 치아바타는 충분한 시간만 들이면 원래 이렇게 만들어지는 빵인 것이다. 효모가 빵에 남겨놓은 멋진 결과물에 나는 무염버터를 슬쩍 얹어본다.



요즘 자꾸 뜻하지 않게(?) 대량생산을 하는데 이날은 다행히 결과물이 좋아서 초대형 치아바타 6개 중에 5개가 당일에 다 팔렸다(물론 돈은 안 받았다). 일은 효모가 다 했는데 내가 칭찬을 받으니 약간 머쓱했다. 오늘 밤엔 효모에게 감사하며 사전 반죽에 대해 공부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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