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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hat Oct 20. 2020

천안의 비

"이렇게 이주 동안 무계획으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암석문공원 사랑플러스구름다리

 비가 아주 많이 왔다. 곳곳의 침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우리가 가던 길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천안의 고속도로 위에서 버스가 멈춰섰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지, 이대로 천천히 강진까지 가는지, 한치 앞 상황조차 알 수 없었다. 승객들뿐만 아니라 버스 기사아저씨마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에서는 작은 승용차들이 회차해서 돌아가고 있었고, 주변의 강물은 다리 기둥 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버스 안의 공기가 술렁였다. 나는 모두가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비가 점점 잦아들고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그러지는 분위기 속에서 안도감이 온몸에 퍼질 때, 머리 속에 ‘무계획’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순간적이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우선순위를 정하지조차 못하는 계획들 속에서 어지러울 때가 많았다. 그로부터 떠나온 여행이지만 여전히 마음 속 한 켠에는 부피 있는 계획들을 무의식적으로 꾹꾹 눌러 담아 왔다. 나에게 무계획이란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천안의 비와 함께 여행의 시작부터 무계획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이주 동안 무계획으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의 시작부터 무계획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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