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일찍 돌아간다고 하니까 가족 모두가 나를 보러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줬다. 내 사랑 반려견 똑이까지. 엄마는 핸드폰을 내 코에 닿을만치로 들이대며 입국하는 영상을 찍으셨고(재생 버튼을 안 눌러서 하나도 안 찍혔지만), 아빠는 캐리어를 번쩍 들려다가 허리가 나갈 뻔하셨다. 대체 뭘 넣은 거니. 집 가서 보여줄게. 어서 가자. 비행기에서 잘 자지 못해서 눈이 퀭했다. 가족을 보니 한국에 왔다는 게 진정 실감되었다. 그 긴 여정이 벌써 끝이 났구나. 빨리 돌아오고 싶어서 표도 바꿨는데, 막상 도착해서 되돌아보니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여행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도착해서 기념품을 나눠주고 안방 침대에 누우니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식의 결말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이 있을 줄 알았다. 퇴사를 하거나, 반대로 회사를 사랑하게 된다거나, 이런 류의 결말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냥, 쉬다 온 것뿐이었어. 회사에서 서둘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후로는 나의 무력함이 부끄럽기도 했다.
뭘 할 수 있겠어 내가.
그런 내게 의미, 그런 건 없었다.
꼭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허무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마냥 즐길 걸 그랬나.
그렇다고 즐기지 못한 건 아니다. 여행 중에 퇴사 고민을 진지하게 한 날은 얼마 되지 않으니까.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돌이키고 싶지는 않지만 마지막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거면 되었다고 스스로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사원인 내가 지속되겠지. 나의 삶은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한 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분명 존재한다. 여운이 긴 여행이었을까. 좀 더 지나보면 알게 될 일이다.
때로는 내가 찾는 대답이 생각보다 나중에 찾아오기도 하니까.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를 한 편에 남겨둔다. 혹은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언젠가 발견할 수 있기를.
한숨 자고 엄마표 참치김치찌개를 엄청 먹을 거야. 계란찜도. 상추에 쌈장도 찍어서 먹을 거야. 삐그덕거리지 않는 내 방 침대에 누워 똑이와 뒹굴거릴 거야. 또, 저녁에는 치킨도 시켜 먹을 거야. 엄마한테 어깨 주물러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다음날에는 출근을 해야겠지.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어떤 마음일까.
새벽에 알람을 듣고 깨는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서 기념품을 다과실에 넣어두는 나는, 자리에 앉아 밀린 수천 개의 메일을 읽는 나는, 긴급 품질 문제를 대응하는 나는, 아침에 챙겨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 나는, 퇴근 후 집에서 조용히 저녁을 먹는 나는, 운동을 나서는 나는, 유튜브를 보다가 밤늦게 잠드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어떤 마음일까.
*추신. 한달만 퉤사하겠습니다의 31~33화는 한달만 퉤사하겠습니다 2에 별도로 연재되었습니다. 10편 이내의 브런치북은 공모할 수 없기에 추신으로 남겨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 혹시 이후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제 브런치스토리의 작품 중 ‘한달만 퉤사하겠습니다 2’를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