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이륙하겠습니다. 예상 비행시간은 11시간입니다.
그로부터 다섯 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다. 기내식으로 나트륨 가득 비빔밥을 먹고, 기내모니터로 무한도전을 보다가, 혈당스파이크의 힘으로 한 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나니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가 퉁퉁 부어있었다. 몸도 풀 겸 제로콜라도 먹을 겸 스낵바에 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70대의 할머니가 걸어오셨다. 이미 익숙한 인상. 옆옆자리 할머니셨다. 자리는 순서대로 나-할머니의 따님-할머니 이렇게였다.
할머니는 10분 전 즈음부터 나가셔서 자리에 없었는데 산책을 하고 계셨던 것 같다.
20대의 나도 몸이 뒤틀리는데 할머니는 오죽 힘드실까. 벽의 조그마한 창문으로 하늘을 보며 바나나를 드시는 할머니께 말을 걸었다.
“할머니~ 힘드시죠~”
“어휴 죽겄어.”
“어깨 주물러드려도 돼요?”
할머니는 흔쾌히 등을 내어주셨고 나는 어깨를 주무르며 할머니와의 토크타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따님과 동유럽 패키지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셨다. 출발 전부터 10시간이 넘는 비행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고. 그럴 만도 하다. 나도 부담스러운걸. 하지만 할머니는 미국 서부, 호주, 태국, 베트남, 중국, 일본 등등 나보다도 훨씬 많은 나라를 다닌 여행 전문가셨다. 이 나이가 되실 때까지 유럽여행을, 심지어 엄청나게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시다니. 9박 10일 동안 5개의 나라를 가셨단다. 나는 3개. 내가 졌다.
할머니는 그중에서 슬로베니아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내가 안 갔다고 하니까 어깨를 찰싹 치며 거기를 안 가면 어떡하냐고 화내셨다. 얼떨결에 혼났다. 아야, 다음에 꼭 갈게요.
스페인-포르투갈 여행까지만 가보고 싶은데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다는 말씀에 아니에요 할머니! 할 수 있어요!라고 쉽사리 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할머니의 패키지여행에서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세명이나 있었다고. 두 명은 노부부였는데, 잘 걷지 못하셨지만 자식이 다섯 명이나 함께 와서 번갈아가며 업으면서 여행을 했단다. 부모를 업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는 자식들에게도 뭉클, 아무리 자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용기 내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노부부에게도 뭉클했다.
또 한 명은 다른 할머니셨는데, 심지어 그분은 혼자 오셨단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적금을 깨고 그 돈으로 유럽에 온 것이었다. 정말 멋있지 않냐는 할머니의 말에
“제가 보기에는 할머니도 정말 멋있어요.”
하니까 눈이 초롱하게 빛나며 수줍게 웃으셨다. 그쯤에는 어깨 옆쪽도 주물러달라고 하셔서 꽤 세게 힘을 줬는데 아따 시원혀- 하셨다. 귀여우셔.
잠깐만 있어보라더니 스낵바에서 과자를 훔쳐오자고 하신다. 나는 바나나 하나, 할머니는 프링글스 하나. 내가
“챙겨놨다가 좀 이따 먹어야지~“
하니까 할머니도
”나~두~“
웃음이 푸흐흐 터졌다. 귀여우셔!
우리는 그렇게 스낵바 옆에서 30분동안 소곤소곤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귓속말을 할 때마다 입을 가리고 이야기하셨다. 마지막으로 등을 두드려드리니까
“때리는 게 제일 좋다.”
하셔서 남은 힘을 모아 우다다다다다.
이제 들어가서 한숨 자보자고 하셔서 돌아왔다.
할머니 조금만 참으셔요. 간식 먹고 밥 먹으면 곧 도착할 거예요.
할머니는 그려, 하며 내 등을 토닥토닥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