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벽돌책깨기 Mar 02. 2021

죽은 경제학자 불러다 이야기 듣기(3)

세 번째 낭독, 3장. 암울한 예언가, 멜서스

일시: 2021년 2월 24일(수) 3회차 낭독     

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저)     

읽은 부분: 3장 <암울한 예언가, 멜서스>      

참석자: K가 아파서 참가하지 못했다. Y, J, H 참석      

(*벽돌책 깨기: 의도치 않게 인원이 4명으로 굳어진 덕에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임에도 가까스로 모일 수 있는 소규모의 소중한 낭독 모임)     


3장. 암울한 예언가, 멜서스     


멜서스의 인구론은 유토피아적 낙관론에 반박하기 위해 처음으로 쓰여졌다. 1793~1794년 즈음 윌리엄 고드윈, 콩도르세, 윌리엄 페일리 등 당시 철학자들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예언했다. 인구 증가가 총체적인 행복의 증대를 의미하고, 인간은 완벽해질 수 있으며 부단히 향상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멜서스는 이들에게 반박하기 위해 <인구론>을 집필한다. 맬서스는 식량 생산이 결코 인구 증가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며 인구가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멜서스는 적극적 억제와 예방적 억제가 인구 증가를 저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후 개정판이 출간된 이후 저명한 학자와 정치가들이 그의 주장에 동의 혹은 격렬한 반대를 하며 이후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        

    

j의 픽: “마르크스는 역사라는 기차가 굽은 길을 돌 때마다 모든 지식인들이 차장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128쪽)


멜서스는 인구 증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직접 목격했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는 보지 못했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이론을 내놓는 지식인들이 차장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은 곧 시대의 한계를 눈으로 보는 느낌. 이거 말고 좋은 문장은 별로 없었다.

      

h의 픽: “경제학자들이 미국에 대해 희망을 품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 계속 지켜볼 것이다.”(145쪽)    

 

지금 우리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앞두고 인구구조 변화의 시기를 앞두고 젊은 여성들을 갑작스레 애 낳아야 하는 것처럼 모든 매체가 난리를 치는데, 이 문장 쯤에서 쭉 계속 되오던 찝찝함이 확인이 되었다. 저자가 어떤 입장에서 글을 써왔는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때 말하는 인구는 누구이고, 부양해야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국민’이어야 한다는 거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의 국민이나 (사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인구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늙어가고 있는데 우리 자식들이 자식을 안 낳으니까 외국의 못 사는 나라에서 와서 허드렛일을 해야 하고, 그러니까 그들이 돈을 덜 받는 것은 당연한 거고. 이런 저자의 입장이 너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멜서스가 오히려 전 지구적인 측면에서 인구와 자원의 관계를 내다보려고 노력했다가 실패했지만 시사점을 준 사람이라면 저자는 좀 그냥 그 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백인 남자 미국인. 어떻게 해서 이들을 평가하며 어떤 관점에서 이들을 보고, 자기 나라가 무엇으로 어떻게 구조가 되어 있어야 자기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제대로 된 나라라고 생각하는지 너무 눈에 보여서 찜찜했던 것 같다. 자기는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짐덩어리로 나눠져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여기서.   

   

y. 나는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근데 걸리는 부분이 멜서스한테 걸리는 게 아니었다. 멜서스의 통찰은 지금에도 좀 유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유토피아적인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앞에서 그게 지금 말이 되냐, 현실을 똑바로 보자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통찰력 있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멜서스보다 오히려 이 저자가 쓰는 방식이 좀 문제 있다고 느껴졌다.   

   

몇몇 군데 예를 들자면, 환경 오염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135 페이지) 환경오염을 비용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환경세 이야기를 한다. 환경오염을 생산비용의 일부라고 생각해보자면서 결국은 환경세 공해세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은 이것이 다 현실화 되어 있는데 사실 문제가 많지 않나.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이냐부터 배출권을 가지고 거래하고, 이미 배출 많이 한 사람들에게 소급적용하지 않고 개발도상국에만 적용시키면서 (자기네는 이미 다 배출해서 그걸 안 해도 되는 일만 하면서도) 탄소배출권을 또 돈 받고 팔고, 그런 환경세에 대한 너무나 당면하게 보이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자원을 돈으로서 커버할 수 있는 비용처리라고 하는 인식 자체가 자연을 대상화해서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갖다 쓸 수 있는 ‘나의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극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 같다. 


그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산아제한 이야기. 이민자들 이야기... 이런 글의 흐름을 보며 이게 어떤 나라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규제와 정책을 가지고 사람들을 포섭하고 규율하는지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자연을 도구화하더니 이제 국민들도 도구화하고, 여성의 교육을 이렇게 했더니 산아제한이 잘 되었다 이런 식으로 여성을 도구화하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좀 불편했다.     

 

지난주에도 사실은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는 되게 급진적이고 세상을 날 것 그대로 보는 느낌인데 뭔가 모르게 꺼름직한 부분이 있었다. 근데 이번에 읽으면서 그게 확인이 되더라. 이 저자의 의견이 들어갈 때 더 꺼림직해지더라...


-  책 살 때 리뷰 본 것 중에 딴 것보다 이 저자의 보수적 관점에 여러 번 삼켜야(?) 한다. 이런 글들이 있었는데 그게 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저자의 의견과 상관없이 어찌되었든 훌륭한 경제저자들을 소개한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이 책을 통해 경제학자들의 원저작들을 소개받는 의미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 맞다. 멜서스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실제로 멜서스가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낙관론자들의 이야기에 빡쳐서 현실을 제대로 보자, 라는 의미에서 쓴 거라는 것.   

  

- 난 그 부분은 되게 좋았다. 이렇게 책을 쓰게 된 계기들.

 

- 그리고 나는 지금 멜서스의 이야기가 굉장히 유효하다고 생각된게, 식량을 자연이라는 유한한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들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코로나 같이 전반적인 인류 행동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댓가를 치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너무 크게 나타나는 것 아닌가.     


- 코로나로 인해서 환경이나 이런 것들 좀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생활습관이 달라지면서 집에서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게 되는데 포장 용기들 재활용 안 되는 것들, 일회용품들에 대해 죄책감이 많이 생기더라. 특히 코로나로 택배도 많이 받는데 포장이 너무 과하고, 똑같은 게 2가지 용품을 시켜도 각각 다른 상자에 엄청난 포장으로 오는 게 좀 그랬다.    

  

- 그렇다. 그게 사실은 되게 신속하게 분업화되어서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새벽에 받으려면. 나는 진짜 이게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카카오 선물하기, 네이버페이, 돈 먼저 파킹해놓는 시스템...이게 다 사람들이 다 너무 바쁘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너무 바빠서 뭘 하는지 잊어버려. 너무 바쁘니까 증권사에 가서 내 증권 어떻게 해주세요. 이런 속도로는 되지 않아서 분 단위, 초 단위로 거래하게 하고. 너무 바쁘니까 집에서 밥을 천천히 해먹을 시간도 없고, 그래서 마켓컬리에서 새벽에 시켜먹어야 하고. 


- 바쁜 건 나쁜 것으로...     

      

- 환경오염이 되게 심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었다. 온도 많이 안 올랐다. 라는 부분도 있더라.      


- 그런데 사실 평균 온도에서 몇 도가 올랐다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가장 무서운 것은 빙하가 있는 지역과 그 근처의 지역인 거다. 그 몇도 낮아진 것 때문에 원래 빙하지역이 아니라 그 아랫 지역이 엄청 피해가 많이 간다. 그냥 온대기후였던 것이 막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온대가 냉대가 되고 난리가 나게 되는 것..     

 

- 그런데 이 사람은 괜찮다고 한다. 리카도적 접근으로 보면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 이게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하는 건지, 나만 아니면 되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 베트남에서 무를 경작하는 농부는 다 죽어버릴 수 있지만 우리는 이제 포도를 기를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건데, 그래 지리적으로 춥고 습한 나라에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라고 쓰여있는데 이 말은 너넨 그냥 죽어야지 뭐, 이런 뜻이지 않나. 요즘에 어떤 보수적인 저자도 이렇게는 쓰진 못할 듯. 그런데 물론 완전 모든 생활이 다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은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멜서스에서 시작해서 저자의 관점을 비판하다가 환경오염 이야기까지... 

내가 생각하는 오늘의 깨달음은, 바쁜 건 나쁜 것이다.

바쁘지 않게 천천히 읽으면서 찝찝했던 부분을 마음껏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어느 부분에서 왜 찝찝했는지 정리되는 것도 낭독모임의 백만스물한가지 장점 중에 하나. 

작가의 이전글 죽은 경제학자 불러다 이야기 듣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