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는 음악의 조건
앞서 2화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음악을 ‘찾아서 듣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퇴근길, 카페에서, 술집에서, 헬스장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소비합니다. 음악은 더 이상 삶의 중심에 있는 것이기보다는 일상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BGM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악이 삶의 부수적인 문화 소비재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인디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통로는 바로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들이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되고 많은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을까?
많은 음악 관계자 분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제작해 온 큐레이터들과 이 주제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각자의 기준과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흥미롭게도 ‘어떤 음악이 플레이리스트에 잘 어울리는가’에 대한 공통된 의견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공통적으로 공감한 몇 가지 조건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물론 이 노하우들이 반드시 정답은 아닙니다. 콘텐츠에는 정답이 없고 음악이라는 콘텐츠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기준들이 누군가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용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는 음악의 조건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음악 자체의 완성도’입니다. 사운드 퀄리티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며, 믹싱과 마스터링, 장르에 어울리는 보컬의 조화는 음악을 콘텐츠로 활용하려는 제작자들에게 중요한 어필 요소가 됩니다. 특히 믹싱이나 마스터링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곡은 넓은 공간에서 재생될 경우, 증폭 과정에서 소리가 깨지거나 뭉개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많은 플레이리스트 제작자들이 이런 곡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믹싱과 마스터링은 가능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여건이 어렵다면, 최소한 전문적인 지도를 받으며 작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는 두 번째 조건은 ‘도입부 10초를 사로잡아라.‘입니다. 플레이리스트 제작자는 많은 곡을 들어봐야 하기에 도입부 10-30초 정도만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음악을 제작할 때 도입부 10초 안에 본인의 곡에 대한 매력을 어필해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재지한 곡은 도입부에 매력적인 피아노 선율이 등장한다던지, 빡센 비트의 힙합곡은 매력적인 킥/스네어의 사운드가 들린다던지, 감성적인 알앤비는 도입부부터 보컬을 강조하여 음색으로 어필을 한다던지 여러 가지 방법은 존재합니다. 이처럼 장르에 따라 전략적으로 도입부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는 세 번째 조건은 ‘나의 음악의 분위기와 주요 청취 나이대를 파악하라‘입니다. 여러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보면 나의 음악이 어떤 연령대가 많이 듣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나의 음악이 어떤 연령대를 타켓해야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그 연령대가 많이 소비할만한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피칭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퇴근길에 듣는 플레이리스트면 30-40대가 그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할 확률이 높고, 공부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면 10-20대가 들을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곡들은 카페의 분위기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잔잔한 곡들이 흘러나올 것이고 술집, 클럽에서 나오는 곡들은 대체로 빠른 템포의 곡들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인의 곡의 분위기가 어떤 플레이리스트에 수요가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는 마지막 조건은 ‘반복 노출‘입니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한 번 듣고 잊혀진다면, 그 곡은 대중의 기억 속에 남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즘 인디 아티스트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는 ‘어떻게 내 음악을 자주 접하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그 해답은 팬 기반과 콘텐츠입니다. 단순히 곡을 발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SNS에서 자주 등장할 수 있는 짧은 영상, 밈, 리릭 카드, 브이로그형 콘텐츠 등으로 곡의 존재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가 공유되거나 저장될수록, 자연스럽게 개인 플레이리스트에 곡이 추가되고, 이는 알고리즘의 주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반복해서 들은 유저들의 행동 데이터는 플랫폼이 해당 곡을 ‘인기 있는 콘텐츠’로 인식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큐레이션에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음악이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입니다. 이제는 ‘어디서 흘러나오는지’가 곡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점에서 인디 아티스트에게 가장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수치보다 더 중요한 건 음악이 닿을 수 있는 자리 하나하나를 만들어나가는 방향성. 이 글이 방향성을 고민하는 많은 인디 아티스트분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