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0이 될 수 있는 용기”래퍼 제이켠을 만나다

“무대 위 조명을 끄고 찾은 진짜 나”

by 손익분기점

화려한 비트와 날카로운 래핑, 우리에게 익숙한 래퍼 제이켠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는 최근 가장 뜨거웠던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고, 펜을 들어 자신의 내면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간 <0이 될 수 있는 용기>를 통해 그가 건네는 말들은 화려한 수식어 대신 담백하고 단단한 진심으로 가득합니다. 채우는 삶보다 비워내는 삶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 래퍼라는 옷을 잠시 벗어두고 '인간 김정태'로 돌아온 그와 나눈 솔직한 대화를 전합니다.


그는 왜 '0'이 되기로 결심했을까요? 본 인터뷰에서는 음악 활동의 멈춤을 통해 얻은 철학적 성찰과, 작가로서 새롭게 구축해 나가는 그의 이야기를 집중 조명해 보았습니다.


지금 바로 래퍼이자 작가 ‘제이켠’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Q : 안녕하세요. 제이켠님 반갑습니다. 먼저 채널 구독자분들께 근황과 함께 짧은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안녕하세요. 래퍼에서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켠이라고 합니다. 근황이라면 사실 특별할 건 없고요. 곧 두바이 출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어 연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계속 작은 알람처럼 울리고 있습니다. 아직 끄는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웃음)




새로운 챕터: 래퍼에서 직장인으로



Q : 최근 브런치를 통해 ‘취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아티스트로서 살아오다 조직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와, 첫 출근 날 느꼈던 기분이 궁금합니다.

A : 취업을 새로운 도전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첫 출근 날보다는, 그 적응하는 기간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1년 동안은 참 무거웠어요. 많은 생각들이 짐처럼 쌓여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듯 하루를 살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래퍼로서 실패했다는 생각, 젊은 날 하고 싶은 일을 한 대가로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 그때는 우울증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서요. 저는 음악을 하면서 굉장히 고립된 삶을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지독한 외로움이 서글프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어느 순간 번뜩, ‘아, 언제까지 이렇게 표류한 채로 살 수는 없겠다’는 느낌을 직감적으로 받았습니다.



Q : 아침에 일어나 작업실이 아닌 회사로 향하는 일상의 변화가 음악적 감각이나 글을 쓰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출근하는 제이켠’의 하루는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A : 루틴이 자리 잡기까지는 2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이전에는 넘쳐나는 시간에 허우적대며 뭔가를 잡으려고 팔을 휘휘 저었다면, 지금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무언가를 적립해 나가는 일이 즐거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처음엔 눈치채지 못하다가, 소복소복 쌓인 눈처럼 어느 순간 알아차리게 됐어요. 음악 작업도 그냥 취미라고 생각해 버리고, 일종의 무책임함을 살짝 더했더니 오히려 부담 없이 잘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Q : 회사 생활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어떤 깨달음을 주는지, 혹은 그 안에서 발견한 의외의 즐거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 래퍼로서의 삶이 스스로도 무의식 중에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아요. 비로소 삶의 형태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비정상’이라는 단어가 마치 무언가 잘못된 것을 가리키는 것 같아서, 그 생각마저 보류해 두게 됐고요. 가장 힘들었던 건 구직 활동을 하면서, 제20년의 래퍼 커리어가 사회에서의 이력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오히려 마이너스였을 수도 있죠. 내가 해온 일들이 이렇게까지 의미가 없었나 싶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된 건, 삶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아주 작은 단위로 움직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감각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큰 그림을 그린 뒤 세밀하게 깎아 나갔다면, 회사 일은 시작부터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차곡차곡 체크하지 않으면 바로 허점이 생기더라고요. 면의 직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촘촘하게 연결돼서 우리가 입는 옷이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주 작게 해 나가는 일에서도 의미를 찾게 됐습니다.





문장의 확장: 브런치와 작가의 삶



Q : 브런치에서 연재하시는 글들을 보면 음악과는 또 다른 깊이가 느껴집니다. 가사를 쓸 때와 에세이를 쓸 때 가장 크게 다르게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A : 잡생각을 소품처럼 팔 수 있었다면 저는 대규모 소품숍의 점장이 됐을 거예요. 그 잡생각들을 늘어놓고, 다듬고, 한 발짝 떨어져서 ‘흠…’ 하고 감상해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딱 한 글자만 고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가사는 입으로 뱉어 공기로 전달되는 ‘소리의 모양’에 가깝다면, 글은 캔버스에 칠해지는 ‘물감’ 같아요. 랩은 리듬과 함께 흘러가야 하지만, 글은 멈춰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에세이는 제 삶의 일정 구간을 긴 호흡으로 풀어갈 수 있어서, 조금 더 밀도감이 생기는 것 같고요.



Q : 힙합은 함축적이고 리듬감이 중요한 장르인 반면, 브런치의 글은 조금 더 호흡이 길고 솔직합니다. 혹시 음악으로 다 담아내지 못했던 ‘인간 김정태’의 갈증을 글을 통해 해소하고 계신 건가요?

A : 제이켠이라는 인물은 미디어를 통해 오해가 굉장히 많이 쌓여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쇼미더머니를 촬영할 당시, 제작진이 원하는 멘트나 방향을 파악해서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비록 제가 악역이 되더라도요. 그런데 ‘이미지’라는 건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기 같아서, 한 번 배어들면 쉽게 사라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안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소재가 고갈될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그 숨겨진 이야기들이 반짝반짝하고, 누군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 여기 이런 게 있었네”하고 흥미롭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Q : 취업 준비 과정이나 직장 생활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독자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본인의 솔직한 고백이 타인에게 닿는 것을 보며 작가로서 느끼는 책임감이나 보람이 있을까요?

A : 예전의 저는 한 번 산다면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마치 “너도 일론 머스크가 되렴”처럼 무책임한 말은 아닐까? 대부분의 삶은 대단해지지 않습니다. 그 대신 계속됩니다. 모두가 일론 머스크가 된다면, 오히려 평범한 무언가가 특별해지겠죠. 그래서 말하고 싶어 졌습니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새벽에 일어나 영어 마스터가 되겠다고 책을 펼친 게 아니라, 그냥 붐비는 버스가 싫어서 조금 일찍 일어났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영어 공부를 하게 된 거라고요. ‘래퍼가 안 되면 죽어버리겠어!’보다는 ‘어쩌다 보니 제이켠’이 된 것처럼요. 이런 보편성이 운 좋게도 독자분들의 공감을 산 게 아닐까 합니다. 작가로서의 책임감이라는 말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세계 평화를 요구하는 것 같아서 조금 조심스럽네요. (웃음)





음악과 현실: 변하지 않는 정체성



Q : ‘직장인’과 ‘아티스트’라는 두 자아를 동시에 운영하는 지금, 본인에게 가장 평온함을 주는 균형점은 어디인가요?

A : 저는 아직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런 상태는 꽤 불안하죠. 회사에서 일하다가 깜빡한 1번 트랙의 애드리브를 떠올리고, 음악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마무리하지 못한 회사의 IR 자료가 생각난다든지요.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하네요) 그래서 차라리 이 어중간함에 자리를 틀고, 그곳을 새로운 터로 삼으려고 합니다. ‘평온함’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네요. 정부 지원 사업 중에 ‘일·생활 균형 인프라 지원’이라는 게 있는데, 음… 뭔가 의심스럽지 않나요? 작가답지 않은 발언을 하자면, 평온함은 언젠가 벼락같이 통장에 쌓인 거대한 숫자를 발견했을 때 비소로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음)



Q : 최근 준비 중인 작업물에는 이러한 ‘현실적인 삶의 조각’들이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오피스 힙합’ 같은 새로운 무드를 기대해도 될까요?

A : ‘오피스 힙합’이라니…! 획기적인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수상하네요. (웃음) 제이켠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장르가 ‘제이켠’이었으면 합니다. 이렇고 이런 특징이 있어서 이런 음악이다라기보다는, 뭉뚱그려서 “아, 맞아. 그거지. 그런 느낌적인 느낌.” 같은 거요. 기본적으로는 듣기 편한 사랑 노래를 선호해서 그런 곡들이 많이 쌓여 있고, 동시에 힙합 본연의 묵직한 곡들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섞이지 않아서 고민이었어요. 마침 한국 힙합의 대부 격인 더 콰이엇이 저와 친구라서(운 좋게도요),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 친구가 전화로 특유의 시큰둥하지만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이러더군요. “어— 둘 다 나쁘지 않은데, 원래 잘하던 걸 계속하는 게 맞지 않나?”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웃음) 인생은 종종 그런 식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간극이 쉽게 메워지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인스타그램 투표라도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Q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 요즘 제 삶의 기조는 ‘열심히 하는 취미’처럼 살자입니다. 다행히 작업해 둔 곡들이 조금 쌓였고, 방향에 대한 고민은 독자분들께 슬쩍 책임을 떠넘겨 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다는 점인데요. 언젠가 책 한 권쯤 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제목부터 지어봤습니다.


― 『영[0]이 될 수 있는 용기』


장담은 못 하겠지만, 면의 직물처럼 한 땀 한 땀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입을만한 재킷 하나쯤 되지 않을까요.



Q : 마지막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 꿈과 현실은 반드시 구분돼야 할까요? 그 질문을 받으면 저는 그냥 “음… 그런가요?” 하고 눈을 꿈뻑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고, 그게 현실이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걸 보며 “어라, 내 건 참 초라하네” 정도만 안 느끼면 그만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현실적인 이유로 꿈을 버렸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서랍에 접어두었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가끔 꺼내 들여다보면 그것도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쓴맛일 때도, 감칠맛일 때도 있겠죠. 중요한 건 꿈을 꿨다는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 본래 꿈이라는 것의 성질이지만 만약 그걸 이룬 사람이 있다면— 저를 잊지 말고 한 번쯤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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