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로서의 맛집을 다시, 새롭게 보기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1층 입구에 경호원 같은 차림을 한 남자 두 명, 그 옆에 엘리베이터 하나가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려다가 ‘OO법무법인 전용’이라는 글씨를 보고 흠칫 놀란다. 이게 뭐지? 무슨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어? 참 나⋯. 그럼 이 법무법인과 전혀 관련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디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 당황한 나머지 옆에서 조근조근 수다를 떨던 남자 중 하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위로 올라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마치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이 들린다. 들어가 보면 알 것 아냐. 여기는 입구니까.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한 질문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수치스럽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과 천장과 벽이 모두 검고 어둑어둑한 조명이 깔린 공간이 나온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엘리베이터로 추정되는 그림 표지판이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무슨 영문인지 꼭꼭 숨겨져 있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고 찾아야만 위치를 알 수 있는데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검은 벽으로 가려진 좁은 통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철저히 가려지는 구조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투명창으로 되어 있어서 타고 있는 동안에 바깥을 볼 수 있다. 그 덕분에 각 층 식당마다 사방이 트여 있는 잘 꾸며진 테라스 같은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사람들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분명히 들을 수 없지만, 모든 층에 개방된 높은 천장에 부딪혀 희미하게 반사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잔잔한 재즈 풍의 배경음악이 뒤섞여 그들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이 공간에서 시선과 몸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밖으로, 바깥으로 노출된 식당의 테라스로. 반대 방향으로는 흐르지 않는다. 일단 식당에 들어오면 엘리베이터는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공간은 어떤 의도로 설계된 걸까? 엘리베이터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워버리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왜?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든다. 왜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에게는 바깥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엘리베이터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완전히 가려져서 보이지 않으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은 식당에 들어서면 엘리베이터의 존재와 위치를 잊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서는 그들을 볼 수 있다. 들키지 않고 바깥을 몰래 관찰하기에 제격인 장소인 셈인데, 그게 그렇게 유쾌하지가 않다. 염탐하는 재미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이미 어떤 권력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의 신경이 감지해버린 탓이다.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감시할 수 있는 파놉티콘의 권력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시선을 받는 쪽, 관찰당하는 쪽, 보여지는 쪽에 권위를 부여한다. 이 장소에 어울리는 사람들, 진입이 허용된 사람들이라는, 장소에 받아들여진 사람들이라는 권위를.
반대로 가려지고,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의 사람들은 특권을 부여받은 듯 보이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것을 강요받으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놓인다. 그들을 부러워해라! 그들이 먹는 음식과 그들이 머무르는 장소에 동경의 시선을 보내라! 시선은 발걸음을 그리로 향하게 하고, 발걸음은 어느새 카드를 꺼내는 손가락으로 물 흐르듯 이어질 테다. 지갑을 열어라! 높은 가격에 망설이지 말고! 망설이는 순간부터 이 공간과 불화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이 장소가 제공하는 어떤 특권적인 분위기와 완전히 동화되기는 불가능하다.
아침부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서울 시내를 뚜벅이로 돌아다녔던 터라 온몸이 음식을 달라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당장 무언가 먹어야 했다. 광화문광장에서부터 지친 다리를 끌고 무작정 식당이 있을 법한 건물로 이끌리듯 들어와보니 이곳이었다. 마침 저 앞에 어젯밤 동생이 했던 농담 속에 등장했던, 그래서 그나마 익숙한 이름의 간판이 보인다. ‘매드 포 갈릭Mad for Garlic’.
“예약하셨어요?”
“아니요, 혼자 왔어요.”
나를 응대한 그 남자 웨이터는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눈앞에 보이는 구석 테이블로 나를 인도한다. 서두르는 기색이 왠지 불편하다. 이렇게 바쁜 주말 점심 시간에, 이 비싼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와서 메뉴를 많이 시킬 것 같지도 않고 가족이나 연인 같은 행복한 분위기 연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그러니까 한마디로 매출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빨리 나가주는 게 도움이 되는—사람이라는 판단을 했을까. 그게 영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영 찜찜하다.
주문은 식탁 위의 태블릿을 이용하라고 말하고 그는 자리를 떠난다. 메뉴판을 보니 내가 불청객이 맞구나, 하는 강한 확신이 든다. 2인, 3인, 4인 세트 메뉴 이벤트를 한다는 광고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것의 가격이 내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기 때문이다.(이벤트로 할인된 가격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1인 메뉴 이벤트는 없었다.) 서둘러 파스타 단품 메뉴를 찾아보았다.
나는 지금껏 20000원이 넘는 파스타는 본 적이 없다. 망연한 시선이 숫자들에 머무른다. 하지만 나는 너무 지쳤다. 아침부터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을 굴린 탓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체력은 남아 있지 않다.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끼 정도는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으로 먹어도 괜찮다고 자기합리화를 한 후, 입구에서 무슨 법무법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보았을 때처럼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태블릿에서 24900원짜리 오일 파스타를 눌러 주문한다. 주문하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물 한 잔이 나오지 않는다.
주말이라서인지 식당 안이 붐비는데다 내 자리가 구석이라서 더 그랬을 테지만, 자꾸만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혼자 왔다고, 분위기 깬다고, 매출 안 된다고 지금 나를 홀대하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야? 나도 손님인데! 나도 정당하게 내 돈 내고 밥 먹으러 왔는데 왜? 왜 내가 여기에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
의심이 분노가 될 때, 내가 습관적으로 하는 일은 그 감정을 마음 속 ‘보안검색대’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 감정을 표출해도 될까? 이 분노는 ‘정당’한가?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까?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 침묵할 것인가? 내게는 아주 익숙한 자기검열 과정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은 자동으로 일어난다. 보안검색대를 거치지 않은 부정적 감정 표출은 종종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그런 감정을 드러낸 일을 후회하게 했으므로.
이러한 자기검열 결과에 의하면, 내가 이렇게 분노하고 이 장소에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는 단지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종업원의 태도나 구석 자리 배치가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오고 나서 내 옆자리에 한국인과 외국인 커플이 앉았는데, 그들을 응대하는 웨이터의 태도가 나를 대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내게 자리를 안내한 그 웨이터는 “태블릿으로 주문하시면 되세요.”라고 재빠르게 던지듯 말하고 사라진 반면 이 둘을 자리에 안내한 웨이터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시간을 들여 주문 방식을 안내해 주었고 곧바로 물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물을 가져다주면서 주문은 하셨는지 한 번 더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그 모든 일이 내 옆에서 진행되는 동안, 내 테이블에는 물 한 잔도, 꼭 그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당황스러움, 어색함, 분노, 시기 같은 감정이 퐁퐁 솟아오르는 내면의 부글거림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점점 더 애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내 앞에도 물 한 잔이 나왔고, 나는 하루 종일 그 순간만 기다려온 사람처럼 물컵을 우악스레 쥐고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 때 다른 편 테이블에서 이런 대화가 들려온다.
“너 의대 갈 거야, 치대 갈 거야. 응?”
“아니~ 나 치대~ 치대 갈 거라고 지난 번에 말했는데? 뭔 의대야~”
아빠와 딸로 추정되는 그들의 대화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듯한 분위기다. 의대냐 치대냐, 그것을 장난스레 추궁하듯 묻는 아빠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늘 그런 농담을 주고 받아온 사람처럼 대답하는 딸. 의대냐 치대냐, 그런 문제를 내 문제로 고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농담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 의대와 치대. 정확히 얼마나 뛰어나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매우 뛰어난 성적을 받아야만 겨우 갈 수 있는 곳.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의 워너비 장래희망. 그것이 가벼운 농담거리가 되는 삶은 어떤 삶일까.
내가 그런 삶에 관해 떠올릴 수 있는 건 어떤 드라마 밖에 없는 것 같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사람들 말이다. 자녀를 명문대학의 의대에 입학시키려고 다른 사람을 개미를 손끝으로 눌러 죽이듯 가뿐히 짓뭉개던 자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소름이 돋으면서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무서워졌다. 왠지 그들을 본 순간 그들의 얼굴이, 표정이, 대화가 내 기억에 그 드라마처럼 박제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음식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나는 그들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경악한 일은 또 있다. 음식의 양이 매우 적다. 내가 평소 즐겨 먹는 식당에서 나오는 양의 절반이나 될까. 음식을 담은 접시가 엄청나게 커서 그 안에 담긴 파스타는 그와 대조적으로 더 적어 보인다. 이 곳에서는 적은 것이 더 좋은 것인가? 그렇다고 해도 음식 가격은 두 배 가까이 비싼데, 양은 절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 오일파스타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아, 하지만 맛있다. 내가 먹어본 오일파스타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양이 이렇게 적은 것이 더욱더 아쉽게 느껴진다. 평소처럼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먹으려면 이 메뉴를 한 개는 더 시켜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가격이 하나에 24900원이니, 그렇게 먹으려면 한 끼에 내가 50000원 상당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그 돈이면 평소에 비싸서 잘 사먹지 못하는 스타벅스 디저트를 10번은 사 먹을 수 있는데! 그 생각을 하니 이걸 더 먹고 싶다는 생각과 더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마저 사라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 먹었으니 나가자. 나는 이곳이 암시하는 규칙—터무니 없이 적은 양의 음식을 다른 식당의 두 배쯤 되는 금액을 지불해야 먹을 수 있다—과 분위기—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이벤트 할인 중인 비싼 세트 메뉴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에 어울리지 않고, 그것을 더는 견딜 수 없으니.
문득, 내가 이곳에 다다르기 전에 지나온 장소가 광화문광장이었음이 떠오른다. 나는 광화문광장에서부터 무언가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5분을 걸어 이 장소로 유입됐다. 이곳에서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행복’해 보이는 한 때를 보내는 이들의 유리창 너머로, 그들이 광화문광장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한다. 광장을 검은 점으로 시커멓게 채운 머리들,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머리카락을 태우고야 말 것 같은 맹렬한 더위 속에도 그 광장에서 부는 바람과 비와 땡볕을 맞으면서 무언가와 싸우는 사람들, 싸운다기 보다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이니 이 억울함을 호소라도 하고 죽겠다고 광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투명한 창 너머로 내려다보는 사람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그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이벤트 할인 중이라 이십 만원이 채 안 되는 2인 세트, 삼십 만원에 가까운 3인, 4인 세트 메뉴를 먹으려 우아한 재즈 음악에 맞춰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는 사람들.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것이 틀림 없어 보이는 서로의 눈을 응시하다가 힐끔, 광장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그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광장의 사람들이 찰나의 생각조차 되지 않는다면,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 건물과 광장 사이는 지나치게 멀다. 광화문광장에서 계속되는 시위가 그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가로등과 같다면. 그래서 엄연히 그 자리에 존재함에도 그 존재가 어떤 주의도 생각도 끌지 못한다면.
음식을 먹다가 불현듯 떠오른 상상에서 빠져나와 사방을 둘러본다. 그곳에는 바깥으로 난 유리창이 없다. 사방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만큼은 개방되어 있지만, 이 건물 안과 밖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 그러니 그들은 보지 않는다기 보다, 보지 못한다. 이 곳의 분위기와 이질적인 요소를 철저히 삭제함으로써. 이 장소의 내부를 이루는 엘리베이터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시야에서 없애버림으로써. 그러니까 광장은 결코 이곳에서 보여서는 안 되었다. 광장의 모습과 광장의 소리는 엄격하게 차단되어야 했다. 광장은 이곳의 분위기를 오염시킬 테니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거의 완벽히 편집한 공간에서, ‘세련’되고 ‘감성적’이며 ‘힙한’—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매드 포 갈릭’은 전국 점포 수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계속에서 줄어들고 있는 프랜차이즈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지방에 오랫동안 살며 서울이나 주변 대도시를 거의 오가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그곳의 분위기가 ‘힙하다’고 느꼈지만 서울을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그 장소가 ‘힙하다’는 내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더 ‘힙한’ 장소가 훨씬 더 많다고 했다. 하지만 지방에서 ‘매드 포 갈릭’ 정도 분위기를 내는 장소를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내 시야에서는 광화문 D타워 안에 위치한 ‘매드 포 갈릭’은 충분히 ‘힙했다’. 도대체 그 ‘힙함’이란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분위기와 동화되기를 강요받기 위해 적은 양의 음식에 값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했을까. 외국인과 마주 앉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글로벌’하게 썸을 타고, 의대와 치대를 두고 농담을 던지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이렇게 불편하고 찜찜했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식당이 맛있다, 주말에 얼마나 웨이팅을 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 장소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진정한 의미의 리뷰Re-view(다시 보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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