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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Jul 31. 2023

수술하던 날

수술(手術)「명사」 의학』 피부나 점막, 기타의 조직을 의료 기계를 사용하여 자르거나 째거나 조작을 가하여 병을 고치는 일.                         

*표준국어대사전



점심 즈음에 진행할 거라는 수술이 계속 늦어졌다. 바늘을 꽂고, 초음파를 찍고, 영상촬영을 하고, 조영제 주사를 맞느라 오전은 어찌 저찌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나자 기력이 달리기 시작했다. 전날 자정부터 물을 포함해 금식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배고픔엔 장사가 없다.


드디어, 두 시 반이 다 되어서야 수술실에서 호출이 왔다. 긴장감보다는 안도의 마음이 더 컸다. 병실에서 이동 침대로 옮겨 타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침대째 수술층까지 이동했다. 맨 정신에 누워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으려니 조금은 민망했다.


대기실에 도착하자 의료진들이 혈압이나 당뇨가 있는지, 보청기와 틀니, 또는 귀금속을 착용하진 않았는지, 주사 알레르기가 있는지를 여러 번 확인했다. 안전한 마취와 수술을 위해 거치는 작업인가 보다. 그리고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왔다. 함께 대기하던 환자들은 모두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나는 꼼짝없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 이사야 41장 10절


대기실 천장에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성경 구절이다.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건 저 짧은 성구(聖句)를 수 백번 되뇌는 일뿐이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큰 일을 앞둔 이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 수 없는 한 마디였다.


한참을 더 대기하고 나서야 수술방에 입실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산소호흡기를 비롯한 각종 장치를 내 몸에 달았다. '마취주사 들어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온몸에 강렬하게 퍼지는 약 기운을 느끼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나의 주치의는 데이비드가 아니었다 @ 인터넷짤 줍줍



회복실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저녁 일곱 시가 다 된 시점이었다. 원래 두 시간 정도 걸린다는 수술 시간이 거의 두 배 가까이 걸린 거라 처음에는 수술 범위가 조금 커졌구나 싶었다. 다행히 수술 중 생검(生檢, 생체검사를 줄여 이르는 말)하는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됐을 뿐, 원래 계획이었던 부분절제만으로 잘 끝났다고 했다. (의느님 만세)


전체 수술 과정 중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는 동안이 가장 괴로웠다. 하지만 병실로 돌아와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두통과 메슥거림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물도 마시고, 죽도 먹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잘 살아있다고 문자도 보내고, TV도 봤다.


멀쩡하다고 하기엔 설레발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멀쩡할 수 있겠는가.) 손가락 세 마디 정도의 흉터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불편함이 남았다고 해 두겠다. 아직 넘겨야 할 잔잔한 파도가 많지만 그래도 또 한 고비 넘겼다. 굳세져야지.



"내가 널 굳세게 하리라. 널 참으로 도와주리라"  - 이사야 41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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