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김밥 배달
이날이야말로 OO역 사거리 안에서 배달꾼 노릇을 하는 달수 씨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다이어트 한 답시는 의원 간호사 선생님께 샐러드를 하나 배달해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콜이 있을까 식당가에서 어정어정하며 배달앱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햄버거집에서 그 바로 옆 건물로 너겟양념 하나를 배달해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천오백 원 , 둘째 번에 삼천이백 원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기본 배달료 밖에 구경하지 못한 달수 씨는 세건 이상 배달 시 추가로 지급되는 프로모션비 오천 원이 앱에 찍히자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오천 원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라떼를 마실 수도 있음이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싸릿눈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콧물 닦던 휴지로 훔치며, 햄버거 집 옆 건물을 돌아 나올 때였다. 앱에서 “콜이 배정되었습니다!”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콜이 꿀콜임을 빠꼼이 달수 씨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앱은 다짜고짜로 “바로 옆 건물로 17,000원짜리 김밥배달을 하면 삼천칠백 원을 주겠소”라고 했다.
‘김밥이라...’
하고 배달원 달수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김밥이라는 메뉴가 싫었음일까? 삼천칠백 원이 배달료에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스스로의 다짐에 마음이 켕기었다. '오늘은 욕심부리지 말고 딱 세 건만 배달하고 와야지. 날도 궂은데……'
“60초 이내 수락하지 않으면 배달 요청이 취소됩니다”
하고 앱은 초초한 듯 알림을 주었다.
“수락”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달수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제 손으로 수락을 해놓고도 스스로 그 엄청나게 가까운 거리에 놀랬다. 백 걸음이나 되려나. 한꺼번에 이런 배달을 상상이라도 해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다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한 건 더 한다고 몸이 상할까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중략)
달수는 배달가방을 여미고 김밥집에 다다랐다. 김밥집이라 해도 물론 겨우 홀테이블이 두 개 밖에 되지 않는 배달전문음식점이요, 또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는 집이다. 만일 달수가 사람 좋게 인사를 하지 않았던들 한 발을 가게 안에 들여놓았을 때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 ―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이 다리가 떨렸으리라. 아무 말 없이 김밥을 포장하는 아주머니의 한숨 섞인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부스럭하는 그윽한 소리, 김밥용기를 비닐봉다리에 담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聽覺)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부스럭 소리는 한 번이 아니라 부시럭부시럭부시럭 여러 번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달수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안녕하세요오- 픽업왔는데요오”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하여간 달수는 앱을 왈칵 열었다. 배달지와 배달메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순간 배달메뉴 금액에 ‘0’이 하나 더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숫자에 약한 달수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0이 하나 더 붙어있는 건 불변할 사실이었다.
배달 가방에 김밥을 한 줄 놓을 사이도 없이 배달원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확인했다.
“이거 17만 원 맞아요?? 1만 7천 원 아니었어요? 김밥 세트가 열 개? 헐, 서비스 음료수도 열 개나 포함되는 거예요??”
라는 소리와 함께 마음속으로는 후회의 발길질을 몹시 해댔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달수 씨의 멍청함과 취소할 수 없는 주문이었다. 이때에 부스럭 소리가 딩동 소리로 변하였다. 포장이 완료된 것이다. 식당 주인이 온 얼굴을 찡그려 혼자 배달이 가능하겠냐는 표정을 할 뿐이다. 안타까운 표정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나는 듯하였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달수 씨는 주방 앞 음식 픽업대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한 손에 다섯 개씩 봉다리를 꺼들어 흔들며,
“아이고, 무거워 무거워”
“으응, 이것 봐, 그래도 난 할 수 있어.”
“바로 앞 건물이니까 괜찮을 거야, 근데 바로 앞 건물인데 왜 배달을 시켰지.”
“으응, 가정집인가, 사무실인가, 왜 열 세트나 시킨 거야.”
이러다가 한 걸음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이 눈깔! 이 눈깔! 왜 메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거리만 봤느냐, 응.”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배달 봉다리를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달수 씨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어대며 중얼거렸다.
“꿀콜인줄 알았는데 왜 똥콜이니… 왜 똥콜이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 작가의 <운수좋은 날>을 패러디 해 기억에 남는 배달 에피소드를 꾸며 보았습니다.
--> <원문 바로가기>
**커버사진은 출판사 꿈소담이, 삽화 이우범 님의 <운수 좋은 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