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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Oct 09. 2023

똥콜 거르는 법

도보 배달기사의 소소한 에피소드 

적게 일하고 많이 벌 길 바라는 마음은 직업막론 지위고하 나이불문 누구나 같지 않을까. 배달기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배달은 소위 ‘꿀콜’과 ‘똥콜’로 구분된다. 높은 단가의 꿀콜은 지향하고,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똥콜은 지양하는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 둘은 단지 지급되는 배달료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암환자이든 아니든, 재미로든 취미로든, 도보 배달에 도전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이 둘을 구분하는 작지만 소중한 팁을 드리도록 하겠다. 



꿀콜 vs 똥콜


'꿀콜'과 '똥콜'을 나누는 기준은 단가, 메뉴, 거리다. 그 중에서도 단가보다 거리, 거리보다 메뉴을 우선순위로 따지는 것이 현명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다. 일단 메뉴, 음식양과 종류를 꼭 확인해야 한다. 프로모션이 설정된 높은 배달비에 눈이 멀어 바로 수락하면 아니 된다.(<운수 좋은 날>과 같은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설렁탕과 쌀국수 등 국밥류는 최대 3개가 적정량이다. 그 이상은 정말 무겁다. 햄버거, 감자튀김, 음료수로 구성된 버거 세트는 간단해보여도 기피 품목 중 하나다. 음료가 추가되면 무게가 확 늘어날 뿐만 아니라 혹여 이동 중에 음료가 새지 않을까 신경이 계속 쓰이기 때문이다. 바삭함이 생명인 감자튀김과 얼음가득 이슬이 송송 맺힌 음료수는 최악의 배달 궁합이기도 하다.


언덕 위의 집은 체감상 이렇게 느껴진다... @그리스 바를람 수도원


거리도 중요하다. 단가가 높은 덴 십중팔구 이유가 있다. 배달 단가와 거리는 대부분 비례하기 때문이다. 사실 거리보다 더욱 중요한 건 지형이다. 아무리 짧은 거리라고 해도 언덕 위의 배달지는 수락여부를 재고해야 한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꼭대기 층, 동간 간격이 넓은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다.


이번 콜과 다음 콜이 쉽게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도 고려해야 한다.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 수록 다음 콜을 받을 확률은 떨어진다. 배달단가가 거리와 시간을 상쇄할 만큼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콜이 신청되고 배달기사가 수락해야 하는 60초의 시간동안 이 모든 조건들 - 거리대비 단가, 동선과 지형, 다음 배차 가능성 등 - 을 재빠르게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배달의 매력이다. 마치 게임과 같다.




배달 사고는 없었지만...


백 건이 넘는 배달을 하는 동안 감사하게도 큰 배달사고나 고객 불만은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컴플레인이 하나라도 접수 되었다면 소심한 마음에 당장 그만두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 당황한 적은 몇 번 있었다. 메뉴를 잘 확인하지 못하고 무작정 콜을 수락해버린 까닭에 몸이 고생한 적이 더러 있었고, 집 앞 까지 가져다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공동현관문은 열리지 않고 손님은 전화를 받지 않아 건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기억도 있다.


이 시리즈 아시는 분들 자수하시기 바람

꽤나 길을 잘 찾는 편인데도, 어느 날은 뭐에 홀린 것 처럼 바로 앞에 목적지를 두고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추억의 ‘유우머’ 처럼 ‘여기가 거기가 아닌가벼’, ‘아니 아까 거기가 맞는가벼.’ 처럼 말이다.

유명 유튜브 스튜디오나, 웹툰 회사, 연기 학원에 배달을 가 본 적도 있다. 혹시 유명인을 마주칠까 조금은 기대했는데, 아무도 보진 못한 건 조금 아쉽다.


여성인 배달기사가 흔치 않기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도 있다. 동네 특성상 피부과, 성형외과가 많이 있는데, 여기로 배달을 가면 환자로 오해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노 부부가 운영하던 식당에 음식을 픽업하러 갔을 때는 사장님이 면전에 대고, ‘헐, 여자도 배달을 하네...’라고 말씀하셔서 약간 민망한 적도 있다. 


어느 날은 조금 차려 입은 상태로 치킨집에 들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 한마리를 가지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다급하게 쫓아 나왔다. 


“손님, 이건 배달할거에요!”  

“아, 예, 제가 바로 그 배달기사입니다만…”




*커버사진 : 페리카나 양념반후라이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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