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대학시절 버킷리스트
대학생 때 꼭 해보고 싶었는데, 하나도 해내지 못했던 세 가지가 있다. 휴학, 장학금, 그리고 캠퍼스커플. 다시 말해 학부 4년 동안 쉬지 않고 놀았는데 남자친구는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엉엉)
몇 년 전, 해외에 거주했던 시절, 나는 국내 모 사이버대에 편입해 두 번째로 대학생이 됐다. 타지 생활의 무료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공부의 영역으로까지 이끌었던 것이다.(강조하지만, 나는 평소 전혀 아카데믹한 사람이 아니다.) 이왕이면 배움을 통해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사이버대학교의 특성상 대부분 과정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수업을 듣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심지어는 장학금도 두 차례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자원봉사 시간도 코로나 덕분에(?) 수월하게 해결됐다. 비대면, 온라인 활동으로도 대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수행한 봉사활동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영화에 한글 자막을 입히는 일이었다. (오롯플래닛 소개 <바로가기>, 자원봉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Click!>)
그렇게 대부분의 졸업요건은 다 충족했지만 문제는 사회복지기관에서의 현장실습이었다. 실습 없이도 졸업은 가능하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은 어려워진다. 그래도 몇 년씩이나 공부했는데 자격증을 따지 못하면 조금 아깝지 않은가. 의무 실습 시간은 120시간인데(그나마 최근엔 실습시간이 160시간으로 확대됐는데 다행이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이를 채우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하루 8시간씩 꼬박 3주를 채워야 하는데, 연차를 한꺼번에 몰아서 쓰던지, 어렵게 주말실습지를 찾아 삼 개월의 주말을 온전히 반납해야만 겨우 가능한 시간이다. 하여 한국에 돌아와 복직한 이후에는 졸업은 언감생심, 계속 휴학에 휴학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인간지사 새옹지마, 이렇게 시간이 생길 줄 또 누가 알았겠는가. 수술을 마치고 난 후 방사선 치료를 기다리며 비는(?) 시간을 알뜰살뜰 사용하기로 했다. 실습지는 지하철로 약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노인재가복지센터. 노인들 중에도 ‘말기암’ 환자를 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그렇다, 배달수익을 전액 기부한 바로 그곳이다.) 수많은 사회복지기관을 두고 굳이 이 먼 곳에 실습을 신청하게 된 까닭은 분명하다. 암 환자로서의 정체성, 예비사회복지사로서의 사명감, 늙은 부모를 둔 자녀로서의 마음가짐, 그리고 늙어갈 스스로에 대해 대비하고자 하는 준비성이 합쳐진,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열세 명의 실습생들, 반평생 이상을 노인복지에 힘쓰고 계신 세 명의 지도자 선생님들과 온갖 잡다한 업무를 도맡아 하던 신참 사회복지사 선생님, 그리고 돌봄 실습으로 맺은 아흔 살 이희복(가명) 어르신. 3주 동안 이 분들과 함께 짧은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배우고 깨닫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사회복지학 수업에서 거듭 강조되던 ‘환경속의 인간(Person in Enveronment)’의 개념을 새삼 되새기게 됐음은 물론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 날, 드디어 학사모를 썼다. 이십 여 년 전 학부를 졸업했을 때도 그러했듯이, 가방끈이 하나 더 생겼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자격증이 생겼다고 전문가가 된 것도, 당장 관련 이직을 할 것도 아니다. 변한 건 사회 이슈, 특히 소수자들에게 아주 조금, 예전보다 아주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정도랄까. 솔직히 공부했다고 떠벌리기엔 많이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뜬금없이 공부하겠다고 나선 나를 말없이 써포트해준 가족들께 감사를 표하고, 그래도 뭐 하나 더 해낸 나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기 위해서다. 고마워요. 수고했어.
덧, 장학금과 휴학, 두 번째 대학 생활을 하며 스무 살 시절 이루지 못했던 버킷 리스트 중 두 가지는 결국 해냈다. 그치만 캠퍼스커플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아, 왠지 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