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 여행 일기(1)

25-02-04 화요일 | 첫 번째 일기

by 메밀

2025년의 끝자락에서, 한동안 묵혀두었던 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올려본다.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 올해를 조용히 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이랄까...

(…라는 말로 게으름을 살짝 포장해 본다.)

12월까지 밀린 포스팅을 모두 마무리하는 게 작은 목표



보홀 여행의 두 번째 아침.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오전 10시 요가 예약을 기다리며 나는 근처 카페에 와있다. 어제 오후에도 방문했던 곳인데 요가원과도 가깝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 다른 곳은 찾아보지도 않고 왔다.

어제 바다수영을 하다 물이 들어가 지금 내 폰은 배터리 off. 요가원 가는 길에 구글 맵이 필요하기에 남자친구 폰을 내가 가지고 오게 되었다. (폰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일단) 오히려 좋아…! 덕분에 둘 다 반강제 디지털 디톡스 중이다. 늘 폰이든 아이패드든 기기를 품고 살다가 그 어느 것도 습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으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이 든다.

날씨가 더워도 마냥 좋기만 하다. 요가복만 입고 바깥 테라스에 앉아 있다. 다른 외국인 여행객들과 큰 테이블을 쉐어한 채로 일기를 쓰는 중이다. 주변 대화가 들린다. 유럽 어느 나라들의 언어로 추측되는,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채워진 공간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귀에 흘러들어 올 수밖에 없는 한국어와 영어가 부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완전한 이방인으로 만든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비일상적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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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요가원답게 난이도가 아주 낮은 요가 클래스만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아쉬탕가 풀&하프 프라이머리 수업도 있어 꽤나 놀랐다. 아쉬탕가를 해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전혀 맞지 않아 아쉽지만 Energiging Vinyasa로 선택했다. 해외에서 요가 수업을 듣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일 정도로 오랫동안 기대해 왔는데 어떤 시간이 될지 조금 설렌다.

독감 이슈로 2주 동안 요가를 쉬었고 여행 내내, 또 어젯밤까지도 맥주를 주구장창 마셨기에 내 몸에 크게 기대하는 바는 없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외국인 선생님, 그리고 (아마도) 다국적 요기, 요기니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될 테니 조금 어설퍼도 뭐 어떤가 싶다. 다음엔 어떤 여행지에서든 내 만두카 매트를 직접 들고 와서 꼭 아쉬탕가를 해보리라!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다시 진지한 아쉬탕가 수련자가 되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늘 꿈꾸던 치앙마이의 한 달 살이 삶은 어떨까 잠시 상상해 본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일도, 요가도 하고 카페도 다니면서 오로지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만 가득 채운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마치 지금 이 순간처럼.

내 옆 사람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배경음악 삼아, 그래서 무심결에 귀 기울일 일도 없고 뭔가 특별한 걸 할 필요도 없는 충만한 혼자만의 시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따 요가 끝나고 남자친구와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각자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조잘댈 생각을 하니 벌써 행복하다. 홀로 있는 시간을 서로에게 흔쾌히 허용할 수 있고 또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카페에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다른 손님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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