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알 권지연 Nov 26. 2022

가난을 자랑합니다




 어제는 가난을 자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지나온 가난이겠네요. 글을 쓰고 나누는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모임에서 그녀는 어릴 적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이토록이나 절박하고 서글픈 것이었지. 내 배는 그만두더라도 식구들 배를 채우는 일. 버는 일. 돈을 버는 일. 쌀알을 버는 일. 밥을 지어 먹는 일. 그러므로 살아가는 일. 그 치열한 것을 떠올리자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아프면서 살아야 하나 울분이 올라옵니다. 삶은 막연한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 “지그와 지그와(지겨워 지겨워)”가 귓가를 맴돕니다. 해 질 녘 노을이 드는 어느 골목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도와주세요’를 중얼거렸다는 어린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울컥울컥 뜨거운 뭉텅이가 자꾸만 올라왔습니다. 울음을 삼키는 일은 몸속 내장들의 자리를 지켜내는 일이었습니다.     



 깊이 없는 눈물로 그녀를 서글프게 할까 봐서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오히려 그녀를 서글프게 하는 걸까 싶어 나는 서글퍼집니다. 결국엔 울지도, 울지도 않는 나란 존재는 아무런 위로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낭독이 끝나면 추앙의 시간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박수갈채가 이어집니다. 당신의 글과 당신을 추앙합니다. 한참을 말없이 손뼉을 치고 계속해서 손뼉을 치며 뜨겁게 추앙합니다. 그녀의 글을 읽고 그녀 옆의 다른 그녀가 입을 뗍니다.   


   

 “당신의 인생이 나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더 가난했네요.”라고 합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그녀 옆의 그녀 옆의 또 다른 그녀가 “제 어린 시절은 가난 때문에 움츠려 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보다 제가 조금 더 돌아온 인생인걸요.” 웃음소리가 조금 더 커집니다. 또 그 옆의 그녀도 “누가 제일 못살았는지 이야기하는 거라면 제가 4등쯤 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다시 그 옆의 그녀도 “여기선 댈 것도 아닌 듯하지만 저 역시 넉넉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저는...이러이러해서.. 이 정도면 여기 끼일 수 있는 걸까요?” 웃음 범벅입니다. 이쯤 되자 다음 가난이 궁금해집니다. 그 옆의 그가 “저도 가난했었거든요.. 저희 집은 화장실이..” 마지막 남은 그에게 묻습니다. 설마 당신도..?

“저도 안 빠집니다. 리어카 끌고 일 년에 이사만 대여섯 번...”      



 웃느라 눈물이 났습니다. 가난이란 건 모임의 자격요건에는 없었던 것인데, 이렇게 뭉치는 것도 쉽지 않겠습니다. 그녀를 위해 우리가 모여진 것이었나 봅니다. 웃음으로 눈물을 닦으며 가난의 세월을 자랑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를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낭독할 때 보인 눈물은 쏙 들어간 듯합니다. 모자란 자가 모자란 자들과 부비며 온기를 채웁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 선생님과 청송 사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