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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Nov 22. 2022

박 선생님과 청송 사과



 사과를 깎는다. 박 선생님이 농사지은 청송 사과다. 신규 시절 만난 박 선생님께서는 그때부터 꿈이 농부라고 했었다. 스물다섯 앳된 얼굴로 처음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박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아이코 아(애)-가 왔네.”라고 하셨다.      



 첫 발령지가 청송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주왕산과 눈이 떠올랐다. 청송은 BYC 중에 C를 담당하고 있었다. 봉화, 영양, 청송은 경북의 3대 오지 BYC로 불리며 신규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신규교사연수에서 벽보에 첫 발령지가 붙고, 내 이름 옆에서 C를 발견했을 때 동기들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도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걸을 때마다 구두 위로 눈이 덮였고 손도 발도 시렸다. 교실 하나 반 정도의 교무실에서는 석유난로 냄새가 났고, 무언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미닫이문 하나 사이의 갑작스러운 온기였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두꺼운 코트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박 선생님의 “아-가 왔네.”라는 천연덕스런 한 마디에 그곳의 선생님들이 선한 눈으로 웃었다. 그 참에 나도 따라서 슬그머니 웃었다.    


 

 첫 학교는 다행히 청송 중에서도 다니기 수월한 곳이었다. 그래서 동료 선생님들과 카풀을 했고 박 선생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동료라고 적어보지만 그땐 내게도 선생님 같은 분들이었다. 양 선생님, 심 선생님, 박 선생님과 아침저녁마다 한 시간씩 안동에서 청송으로, 청송에서 안동으로 달렸다.     



 겨울엔 해뜨기 전이나 신새벽부터 만났다. 춥고 어두컴컴한 길 위에서 종종거리고 있노라면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깜빡였다. 혼자라면 서글펐을 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책만 붙들고 있던 내게 청송 가는 길은 생명력 넘치는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4년을 그렇게 달리며 태어나 처음으로 계절의 변화를 체감했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새순이 돋고 풀잎 흔들리고,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고, 강이 흐르고... 경이로움으로 가슴이 벅찼다.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나 지금처럼 단풍이 곱게 물든 아침이면 천지갑산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눈앞에 펼쳐진 천지갑산의 노송을 바라보거나 길안천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바람 냄새를 맡았다. 어린 속내로 이러다 지각하는  아닐까 염려하는 마음이 슬며시 생기다가도 한없이 평온한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고 이내 잊었다.     



 어느 날은 다리 밑으로 내려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골부리(골뱅이)를 잡았다. 엉덩이를 쑥 내밀고 물속을 뚫어져라 헤집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손으로 바위를 휘감아 훑으면 큼직한 골부리가 손에 잡혔다. 처음부터 수확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잡고는 놓아주었다. 토요일이면 꼭 퇴근길에 있는 영양탕집이나 짜장면집에 들렀다. 양 선생님은 염소탕을 드실 때 항상 땀을 닦으며 드셨다. “선생님 왜 그렇게 땀을 흘리세요?”라고 묻자 껄껄껄 웃으셨다.      



 차 안에서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들은 주로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하셨다. 양 선생님은 늦둥이 쌍둥이들 대학 보내려면 명퇴도 맘대로 못한다고 하셨고, 심 선생님은 어릴 적 꿈이 코미디언이었다고 하셨다. 박 선생님은 농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사과 농사를 지을 거라고, 땅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셨다. 아, 나는 멋진 꿈이라고 생각했다.     



 박 선생님은 어떠한 기회로 북한을 다녀오셨는데, 북한에서 지어맞춤양복을 입고 오시는 날이면 늘상 그 양복 자랑을 하셨다. 또 내게 종종 “권 선생, 사람은 항상 낮은 곳을 바라봐야 합니데이.”라고 말하셨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남편과 연애 중임을 전했을 때 나의 선택을 지지해준 몇 안 되는 분이기도 했다. 완두콩을 좋아하는 내게 완두콩이 소복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건네시기도 했다.      



 처총회(처녀총각모임)에서 1박 2일 MT를 갔을 때는 처총이 아닌데도 따라오셨다. 격이 없고 유머러스하셔서 동행이 편안했다. 그날 밤 모닥불 앞에서 박 선생님은 비구니가 된 첫사랑 이야기를 해주셨다. 총인 유 선생님이 기타를 튕겼는데 박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와 어우러져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비구니가 된 첫사랑처럼 사연 있는 여자가 좋다고 하셨다.    


  

 나는 곧 떠날 것처럼 왔던 첫 학교에서 5년 만기를 채우고 떠났다. 동기들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그곳이 앞으로의 교직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학교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학교를 이동하고 몇 년 후 박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가O재 농장 산 사과 주문



박 선생님은 진짜 농부가 되었다.      



 매년 11월 초가 되면 박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그러면 나는 투잡러가 되신 박 선생님께 맛있게 익은 겨울 부사를 주문한다. 청송 사과와 함께 박 선생님의 소식이 배달된다. 1년 동안 정성으로 자식처럼 키운 사과를 내놓을 때의 마음을 생각한다. 아삭아삭한 사과를 베어 물며 그 시절 박 선생님의 꿈을 나눠 먹는다. 다디단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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