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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May 14. 2023

스승의 날 - 한우와 홍삼

자랑인 듯 자랑 아닌 자랑 같은 글





 10년 전 제자가 우리 동네에 왔다.

 3년 전쯤 봤었는데 그때보다 더 거대해져서 나타났다. 너는 키가 아직도 자라느냐고 하니 근육이 붙어서 그렇게 보인다고 190센티 장신이 자랑인 듯 자랑 아닌 자랑 같은 자랑을 했다.



 승진을 했으니 한우를 사주겠다고 하길래 나는 한우보다 삼겹살을 더 좋아한다고 하니, 다음부터는 삼겹살집에서 보자고 한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귀가가 늦으셔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길래 나 내일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고 하니, 선생님 불교 아니었냐며 여태껏 불교인 줄 알았다며 불교같이 생기셨는데 의외라고 했다. 10년 만에 스승의 종교가 기독교인 것을 알게 된 것에 흥미로워했다.



 ㅂ이 열다섯 때 같이 국어 수업을 했고, 열여섯 때는 우리 반이 되었다. 네가 2학년 때 4반이었지? 라고 하니 그런 것도 기억하냐며 놀라워했다. 3학년 때는 몇 반이었지...? 분명 우리 반이었는데.. 우리가 몇 반이었지?라고 했더니 1반이라고 했다. 나는 4반이라고 했다. 분명히 4반이었던 것 같은데 1반이었다고 우겨댔다. 네가 우리 반 학생이었던 것은 맞냐고, 관계의 시초(?)부터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할 때쯤 ㅂ의 부모님께서 상담을 하러 학교에 오셨던 것이 생각이 났다. 내가 너의 부모님과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상담도 했다고 하자, 그건 담임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계속해서 우겨댔다. 둘이서는 해결이 안 되니 제삼자에게 물어봐야겠다던 그때, 불현듯 1반 담임이었던 체육 이ㅇㅇ 선생님의 존재가 떠올랐고 네가 이ㅇㅇ 선생님 반이었던 적이 있었느냐고 하자, 그 자의 동공은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10년 만에 자신이 중3  4반이었었다는 기억을 되찾았다.



 청년 ㅂ은 취업 이야기, 이직 이야기, 다시 취업 이야기를 했고, 내 집 마련 이야기, 그간 지나간 여자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차이기만 했는데 차일 때쯤엔 차이고 싶어서 정떨어지는 행동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동시에 '쓰레기.. 네.' '쓰레기... 죠?'라고 말했다. 만나서 처음으로 생각이 통했다.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는 2년째 만나고 있는데 결혼까지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택배를 받으면 상자와 물건을 바로 정리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종종 커플링이며 휴대폰 같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 요리하는 중에 칼이나 포장지 같은 것을 싱크대 안에 넣어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욕실 청소는 기가 막히게 잘하고,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서 우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결혼 날짜 잡히면 연락을 하라고, 혹시나 청첩장의 그녀가 지금 말한 그녀가 아니더라도 꼭 연락을 하라고 하자 알겠다며 웃었다.



 스물다섯의 ㅂ은 제법 빨리 자신의 길을 찾고 든든한 직장의 직장인이 되었다. 우리 동네까지 자차를 몰고서 오는 길에 나를 태워 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다며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제자가 사주는 밥을 먹었다. 제자들이 찾아오면 밥이든 뭐든 계산은 당연히 내 몫이라 여겼는데 사주는 밥을 먹는 기분이 참 묘했다. ㅂ은 내게 밥 사주는 첫 제자가 본인인 것에 으쓱해진 것 같았다.



 청년 ㅂ은 고기를 구우며 한우의 붉은 기가 사라질 때쯤이면 큼직한 놈으로 골라서 내 숟가락 위에 올렸다. 먹고 나면 또 올렸다. 누군가 내 숟가락 위에 음식을 올려준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니 친정엄마 말고는 없다. 남편은 종종 파재래기 그릇에 올려주긴 했었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식탁에서 내 숟가락, 내 밥그릇에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신다. 그리고 나는 내 딸아이 입만 쳐다본다. 내 입에 들어오는 것보다 어린 딸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더 집중했다. 식탁에서 오물거리는 딸아이 입만 쳐다보는 시간이 익숙했다. 순간 그런 생각을 하다가 ㅂ을 쳐다봤다. 너도 많이 먹으라고, 나는 원래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었다고 하니, 고기는 단백질이라서 괜찮다며 자꾸자꾸 올려서 고기가 쌓였다. 명이나물을 더 담으러 다녀오니 그사이 또 고기가 올려져 있다.



 내가 웃으니, 선생님 그새 눈가에 주름이 생기셨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내 나이 돼 보아라. 나도 이제 주름 생길 나이다'라고 하자 웃으며 더 열심히 고기를 나른다. 아, 고기가 자꾸 쌓인다. 병 주고 약 준다. 헤어질 때쯤엔 홍삼도 쥐여 준다. 뭐지, 이 효도 당하는 기분은. 나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겠노라고 고맙다고 했다. 한우와 홍삼이 내 주름도 펴 줄 수 있기를.



 헤어지고 카톡이 왔다. '선생님 덕분에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라고 하길래 '니가 잘해서 그런 거지. 힘들 때 연락해.'라고 보냈다. 그리고 너를 보니 지나간 시간도 감사하고 교사로서 살아가는 오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에 이 글은 아주 아주 치밀한 자랑글인 것이다.




   

190센티 장신의 고운 손과 집게와 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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