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래 알고지낸 친구가 있다.
내 나이 44살. 알고 지낸지는 유아일 때부터니까 적어도 4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것이다.
어릴 적 동네 놀이터에서도 등하교도 함께 했던 사이니 내가 기억하는 어린 날의 대부분은 함께 한 사이다.
집안 끼리도 아는 관계이니 내 맘 한 구석엔 언제나 든든한 사이로 남아있는 친구였다.
세월은 흐르고 그 긴 시간을 내내 함께 한 건 아니라, 그 길었던 여행속에서 조금씩은 변했고
주고 받은 말이나 함께 나눈 기억은 점차 적어져 갔다.
성격이 썩 같은 놀이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큰 기대를 하고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하지만,해 저무는 뒷 골목의 연탄을 함께 깨고 도망치고 치기싫은 피아노 학원을 빼먹고 놀이터에서 놀던 비밀을 함께 한 친구라 그런지 내 마음속에그 친구는 친구로 굳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외국 생활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 친구도 아들래미 달랑 데리고 근처에 와서 살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내 맘 속에 소꿉놀이 하던 친구로 기억되는 사람인데 낯선 타향살이에서 보게 된 그 아이는 이미 내 기억의 어느 편에도 없는 그냥 아이의 성공을 갈구하는 동네 아줌마로 자꾸 나를 흔들어댔다.
처음에는 혼자 와서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했지만,만나면 만날수록 날 대하는 그 아이의 태도는 이미 친구와 마음과 생각을 나누겠다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이미 친구로 각인된 내 머리속은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였다.
그냥 그 아이는 궁금한 정보가 내게서 나오는게 당연했고 그 어떤 것에도 고마움을 표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난 내 입이 말하는게 참으로 싫은 지경이 되었다.하지만 내 마음은 그래도 친구인데 어쩌겠냐는 반신반의로 친구임을 부인하진 않았다.
내 성의로 알려주는 여러가지의 크고 작은 알거리들.그 성의마저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무성의함.간간이 내게 드러내는 질투와 그 어떤 것이라도 아들에게 꼭 해주고말겠다는 일념들을 볼 때면.난 진저리가 났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알았다.
친구도 세월따라 변한다는걸.
세월도 흘렀고 우리도 변해가고 있었다.
나 혼자만 초등학교 시절의 그 모습으로
이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는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게 자연스러운건데,
다 제각기 갈 길 찾아 가는건데
이제 모두 다 가버린 운동장에서 다 떠나버린 친구를 기다리며 놀고 있었는지 새삼 서러웠다.
나이 먹으며 곁에 친구가 있어야 좋다
하지만,꼭 모든걸 같이 했던 사람이어야 하는건 아니다.꼭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이쯤에서
헤르만 헤세의 글귀를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