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 가네요

by BreeZE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란 문장이 들어간 글을 많이 읽었어요. 아마 그 수만큼 내 나이도 들어가겠죠.

참 많이 읽었어요. 지겨울 만큼


내가 어떻게 느끼던 또 한 해가 저무네요.


오늘 아침 친한 언니에게 받은 셔츠 한 장이 매년 비슷비슷하게 지나가던 이브날을 새롭게 만들었어요.

그 날이 그 날이고 , 그 노래가 그 노래이던 날을요.

기분 좋더라고요. 왠지 더 사랑받는 사람인 것 같고

잘 산 덕에 좀 더 받는 것 같아서요.

남들이 뭐 그깟 일로 재느냐고 해도 난 기분 좋았죠.

그런데 잠시 후, 가족 산행을 가기로 하고 밍그적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금세 기분이 상해버렸죠.

특별한 날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떤 날에는 무언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을 알기에 머리 쥐어짜 낸 계획인데 아이들은 귀찮은 마음을 그냥 드러내버렸죠.

난 그 모습이 야속해서 퉁퉁거리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어요.

조금 지나 산에 오르고 탁 트인 풍경을 보고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줄 바람을 한 줄기 맞으면 금세 웃을 줄 알지만, 다 만들어 놓은 계획도 척척 따라오지 않는 그 모습이 못마땅해 순간 심통 섞인 말을 해버린 거죠.

"오지 말던지"


들뜬 모습으로 남들과 밖에서 즐거울 일이 아니라, 일단 가족과 함께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의 크리스마스를 겸허히 보내고자 계획을 세우고서도 말이에요.

내 기분을 거스른 것이 뭐 대단할 일이라고..


후회도 잠시 하지만, 아이들은 뾰로통하게 창 밖만 봅니다. 이 시간이 조금 지나면 풀릴테지만 모처럼 나선 발걸음이 조금 창피함에 느려지네요.


지난해는 내가 사람들과 지내는 모습이 좀 달랐어요.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표 나게 대했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 알았거든요.


사람은 나이를 먹고 지나가는 세월을 겪느라 변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왠지 내 곁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던 거죠. 아니, 그럴 거라고 믿고 싶었던 거 같네요.

아니면 내가 먼저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느라 변해버려 그들도 놀라 당황한 나머지 나를 놀라게 한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것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 보다 , 그런 일이 어떻든 생겼고, 이젠 그것에 맞춰서 나도 바뀌어야 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 기분이 순간순간 변해서 선물 받고 좋아하다가

남들이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순간 화를 내는데,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온 개개인들이 어찌 한결같을 수가 있겠어요?

그럴 거라고 믿어온 내가 미성숙한 믿음을 가졌던 거죠.


그 믿음을 가졌을 때는 편했죠.

내가 이렇게 하면 이들은 이럴 거라는 대강의 아우트라인이 있었고 , 난 사람들을 대하는 어떤 나만의 공식 덕분에 좀 편했던 것도 같아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대하곤 의문에 휩싸여 고민하기도 했죠.

"대체 내게 왜 그럴까?"


내 잘못인지 깊게 생각하다가 자책도 하고 반성도 하고

인과관계를 따지다 내가 이상한지 그들이 이상한지 따지기도 부지기수


그러다 알게 됐죠

나도 변하고 사람들도 변하고

변한 나와 상대들이 만들어 내는 변수는 내가 생각하는 경우의 수보다 훨씬 많아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걸 말이죠.


머리로 아는 것과 내가 자연스레 행동할 수 있는 만큼 제대로 느낀 건 많이 다른 얘기 같아요.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풀려고 해도 풀지 못하고 알려고 해도 잘 알지 못한

개개인의 한계를 넘은 여러 문제들의 광란 같은 건. 아닌가 싶네요


내가 좋아해서 세심한 마음으로 대한 이들도 좀 부담스러워하더군요. 내 맘이 네 맘 같지 않은지라 그럴 테지만, 그야말로 내 한계를 지닌 문제란 생각이 들어서 상심했던 마음앓이를 겨우 멈췄어요.

마구 구르는 뭔가를 억지로 세우면 바닥에 충격으로 흠집이 생기잖아요.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아직 그 흠집이 남아있어요. 아직도 그 흠집은 조금씩 생기기도 하는데, 그게 나의 한계겠죠.


한계를 지녔기에 인간이고, 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이 곳은 그래서 늘 시끄럽고 설명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로 늘 복잡한지도 모르겠어요.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시시각각 변하고 바뀌는 내 마음속 한 공간을 비우는 일이에요.

나만의 생각. 고집. 이기심이 들어찬 그곳을 비워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느끼며 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아마도 새 해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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