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같지 않던 그 시절"이란 노래를 들었다.
제목이 내 맘에 쏙 들었다.
내 맘 같지 않은 일들은 얼마나 많고 또 아프게 하던지..
실은 이 글은 제목을 붙이기 한참 전에 썼던 것이고
맘에 쏙 든 김에 가져다 붙였다.
내 맘 같지 않던 사람 관계가 많았다.
지금까지 만나고 알고 인사하고 지내온 사람들을 헤아려보면 꽤 많다. 그러나 연락을 취하는 빈도는 그 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안부도 묻고 함께 밥도 먹으며 지냈으나 흐지부지 만나는 횟수가 뜸해지다 결국엔 전화번호부 한편에 있고 카톡 리스트에도 있으나 만난다거나 안부를 주고받는 실재적인 관계는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굳이 지워 없애버릴 이유는 없었고 그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긴 한다.
꽤 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람에 대한 욕심도, 기대도 많았다.
마음에 두는 사람과는 잘 지내고 싶어서 얘기도 들어주고 하기 싫은 일도 곁을 내주며 함께 했다. 기꺼이 시간을 내주며 열심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네 마음과 같지 않고 내 생각이 그들의 생각과 같지 않은지라 선의를 표해도 받아들이는 몫은 각자의 영역이기에 오해가 생기는 일도 있었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정적인 때는 정작 모르는 의외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대범해지고 너그러워지면 좋으련만,
난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것 같다.
잘 지내며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과 오해가 생겼을 때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 여겨 수습하려고 꽤나 애를 썼다.
잠자리에 누워 나의 실수를 복기하기도 부지기수.
그렇지만 유기체인 인간관계는 너무나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진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대화를 할수록 헛헛한 마음이 들 때, 그저 친구로 입력된 역할을 수행하리란 기대 하나로 통하지 않는 대화를 계속 어렵게 이어 붙인 적도 있었다. 자연스러울 리가 없었다. 난 변한 관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내 생각을 강요하며 상대를 질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이 의리라 생각했다.
그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생각이 달라서 생긴 상황인데도 난 내 마음만 고집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지치는 것 같았다.
그러려니 하라는 많은 조언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얽기섥기 엮인 일들이 부담으로만 느껴졌다.
난 사람 사이에 일어난 갈등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잘 지내고 싶다는 의욕만으로 잘 이어지는 관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구 상의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각자의 시선이 잘 어우러진다는 건 애초에 포기해야 하는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거나 살다 보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무책임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싶진 않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함께 지낼 수밖에 없고 결정적인 순간 쓰러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것도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난 '죽은 시인의 사회'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힘을 주어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 내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가득해서이다.
각자에겐 개인만이 아는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다 얘기하고 드러낼 순 없지만, 우리가 살다 보니 누구나 겪었음직한 보편적인 위로를 서로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서로를 이상한 외계체로 여기는 순간은 오지 않겠지란 믿음이 있다.
나만 힘든 순간이 있진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도 나처럼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기대가 허물어졌으며 배신감에 분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겠지만, 내 맘이 네 맘 같지 않아서 생긴 간극은
여러 가지 오해와 불신, 실망을 너무나 많이 만들어버려서
함께 했던 시간은 저 뒤에 남았겠지만, 지금 차 한 잔을 마시고 밥 한 끼를 함께하며 소소함을 나누고 싶어 지진 않는다. 그저 그럴 뿐이다.
하지만 그 물리적 간극은 서로에게 두는 심리적 공간으로 남겨둘 때 유지되기도 한다.
딸아이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 힘든 때 보내온 메시지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가 유독 크게 보였다. 딸아이가 묻고 있는 건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 힘을 주는 말 한마디를 듣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난 그랬다.'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항상 네 편이라고'.
내 맘 같지 않은 일들로 시달리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더 해 줄 수가 있겠나 싶다. 그저 내 맘은 네 맘 같다는 덤덤한 말이 그 애는 듣고 싶었을 것 같다.
그 말을 서로에게 해주는 관계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상 일이 다 내 맘 같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