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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l 31. 2023

언니가 말했다. 대충 살라고

언니가 덧붙였다. 그렇다고 너무 대충 살지는 말라고

 중국발 황사가 짙게 깔리던 무렵이었다. 워커홀릭으로 살면서 한편으로는 버거워하는 나를 보며 언니가 말했다. “대충 살아.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면서 살고 그래” 당시에는 귀에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언니의 음성이 없이도 그 말이 귓가에 맴돈다.


 대한민국 직장인 2명 중 1명은 스스로를 워커홀릭(일 중독자)이라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워커홀릭이라고 답한 사람 중에서 ‘비자발적 워커홀릭’이라고 답한 비율은 52.5%, ‘자발적 워커홀릭’이라고 답한 비율은 47.5%였다. 우리나라에 워커홀릭이 이렇게 많다니! 하고 한번 놀랐고, 우리나라에 비자발적인 워커홀릭이 이렇게 많다니! 하고 두 번 놀랐다.


 10년 전 사회초년생 시기로 돌아가 보면, 나 또한 워커홀릭이었다. 평일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직장에 나와서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혈안이었다. 주로 자발적이었고, 이따금 비자발적이었다. 나는 개인적인 성향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맞물려 워커홀릭이 되었다. 일터로 나 자신을 내몰면서 일중독에 빠뜨린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내 성향이 맞았다. 하지만 옆에서 슬슬 부추긴 건 사회였다. 내가 경험한 사회는 ‘자신을 열심히 채찍질하는 동력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나마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정부에서 물리적으로 근로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법정 근로 주 52시간제를 도입하고부터였다. 주 52시간제는 주 40시간 근무가 기본이고, 초과 근무 시간은 주 12시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다니던 광고 대행사에서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당시 중소기업이라 강제성이 없기도 했다. 회사에서 이 제도를 독려하는 척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업무 시간 내에 일이 끝나지 않아 집까지 일을 끌고 들어갔다.


 같은 시기, 지인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법정 근로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위해 ‘셧다운 제도’를 도입했다고 했다. 오후 6시가 되면 아예 사무실의 전기 공급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전기는 끊겼지만, 일은 끊기지 않았다. 사무실이 셧다운되면 지인은 바로 집에 가는 게 아니라, 회사 근처 카페로 가서 노트북을 켜고 남은 일을 마저 한다고 했다. 심지어 이 시간은 정규 근로 시간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현 정권에서는 이러한 현황을 반영하여 탄력적 근무를 도모하며 주 69시간제 시행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반발이 커서 결국 예정했던 시기에 정책을 도입하지 못했다. 반발은 ‘69’라는 숫자가 주는 중압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탄력 근무의 취지인 것은 맞지만, 은연중에 ‘와...사람이 주 69시간까지 일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치 야근을 권장하는 것만 같기도 했다.  


 적게 일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사회, 퇴근을 눈치 보게 하는 사회. 나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적게 일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해 왔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는 우스갯소리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월급을 받았으면 최소한 받은 만큼은 일하는 것이 직장인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살짝 화가 나기까지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상 서울에서 10년간 일하면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사람은 거의 못 본듯하다. 내가 일하는 동안에는 멈춰있는 사람을 보기가 어려웠다. 내가 다녔던 직장이 네 군데가 전부라서 모든 회사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곳에서는 내남없이 바삐 달려갔다. 오히려 멈추면 민폐가 되었다. 이따금 멈춰 서고 싶을 때도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서 움직여야만 했다. 


 와중에 흐름을 깨고 멈춰 서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이전 직장에서 온라인 스토어 런칭 준비를 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런칭 총괄을 맡아 스토어의 모든 페이지를 직접 기획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의 연속으로 마침내 완성한 기획안을 디자인팀에 넘겼다. 기획안이 어떻게 제작될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나온 디자인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촌스러웠다. 이후 내가 원했던 디자인의 방향과 최대한 비슷한 레퍼런스를 찾고, 원하는 바를 더 명확하고 세세하게 정리하여 나의 피드백을 전달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디자이너의 ‘퇴사 의사’였다.  


 “나는 그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본인이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한테까지 이렇게 높은 수준의 업무를 요구하면 힘들다. 그냥 퇴사하겠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에겐 디자이너가 회사 성장의 흐름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보였고, 심지어 나약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공감되지 않는 감정도 존중받아야 할 것이 마땅하나, 여전히 그 디자이너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해오던 일의 의미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의심하는 것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거대한 흐름을 깨고 멈춰 선 사람은 또 있었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비자발적으로 워커홀릭이 된 안타까운 동료였다. 나는 동료와 친밀하게 지내면서 가끔 일대일로 점심을 먹곤 했다. 동료는 거의 만날 때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괴롭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만의 스트레스 분출구를 찾기 위해 퇴근 후에 첼로를 켜기도 하고, 모임을 가기도 하고, 등산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스트레스 해소 창구로 동료는 ‘퇴사’를 택했다.


 동료가 퇴사하겠다고 한 때는 옆 건물에서 일하다가 자살한 사람이 나왔다는 뉴스가 보도된 때와 맞물렸다. 씁쓸한 감정이 밀려왔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뇌는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뇌의 자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멈추어 서야만 했던 동료를 나는 그 누구보다 축복해 주었다. 동료가 더 행복하기를, 인생에서 더 즐거운 시간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나는 괜찮은 것인가. 동료가 퇴사하고 난 후 나를 돌아보았지만, 어쩐지 나는 괜찮은 것만 같았다. 취미 하나 없이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법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내가 지닌 스트레스는 내가 맡은 그 업무가 끝나야 비로소 해소되었다. ‘매출이 인격이다’라고 말하던 회사 임원의 말에 따라 나는 더 많은 매출을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치열하게 사는 삶을 찬미하며 살았다. 쉼은 내 인생에서 환대받지 못했다. 나는 휴가에도 성과 지표를 들여다보며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일을 시킬 때 가장 바빠 보이는 사람에게 시킨다는 것처럼, 가장 바쁜 내게 가장 많은 일이 몰렸다.


 감사하게도 덕분에 빠르게 승진했고, 빠르게 팀장이 되었고, 빠르게 연봉이 올랐다. 여기저기서 강연을 했고, 많은 회사에서 오퍼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소중할 수 있었던 많은 순간을 놓치기도 했다. 인생에서 일이 가장 우선시되자 종종 인간관계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가족들과 외식한다거나, 친구들과 놀러 간다거나, 계획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내가 누려서는 안 되는 사치처럼 여겨졌다. 집요하게 일에만 매달렸고, 나아가서는 일과 나를 동일시했다. 마치 이 일을 잘 해내야만 자아실현이 되는 것처럼.


 뜻밖에 워커홀릭 타이틀을 내려놓게 된 것은 이직한 직장에서 기대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였다. 회사에서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성과를 내고 있는데 어떻게 못 알아보는 거야? 언제나 회사의 수뇌부라고 생각했던 나는 직장 생활 처음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탈감을 느꼈다. 


 꼭대기에서 추락한 것 같이 처참한 심정이었지만, 돌아보면 내 삶의 전환점을 준 계기가 되어 감사하다. 인생 전반에 걸쳐 매번 나를 인정해 주는 회사만 경험했더라면, 여기서도 늘 받던 과분한 인정을 받았더라면,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은 없었을 것이고, 회사에서 더 성과를 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여정을 예정보다 더 빠르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하나의 자아가 아닌 또 다른 자아로서의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가 생기자 다시 부리나케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대충 살라는 언니의 처방전이 내게는 잘 들지 않나 보다. 여전히 나는 달리고 싶은 욕망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다. 지금도 무언가를 계속해서 써 내려가야만 할 것 같은, 백지를 빼곡히 채워야만 할 것 같은 자기 의무감에 빠져든다.


 10년 전만 해도 치열하게 살라는 메시지가 만연했지만, 최근에는 열심히 살지 말자는 메시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마도 너무 열심히 살았던 지난날들에 대한 부작용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꼭 이런 양극단의 메시지대로 살 필요가 있나 싶다. 글쎄, 나한테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전자의 삶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사는 편이 더 좋긴 하지만, 우리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열심히 살다가도 적당히 쉬면서 말이다.


 언니가 말했다. 대충 살라고. 그러나 언니의 인생을 보면 대충 살라는 말의 뒤에는 2절이 숨어있는 듯하다. 아마도 당시 워커홀릭인 나에게는 2절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대충 살아. 그렇다고 너무 대충 살지는 말고.”



사진: Unsplashed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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