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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Sep 23. 2023

나와 다른 사람과 충돌할 때 세계는 확장된다

그 사람, 나랑 너무 안 맞는다고? 오히려 좋아

 직장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 동료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나는 업무에 있어서 약간의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새로운 시도에 있어서 데이터 기반이든, 직관이든, 경험에 의해서든 확실히 될 것 같은 것만 시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그는 굉장히 도전적이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새로운 걸 시도하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처럼 양극단에서 숱한 대립각을 세웠다. 우리의 성향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도 멀어 보였다. 이번 생에선 도저히 그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여겼다. 여기에 더해 일에 있어서 잘잘못을 따지려는 그의 태도는 나의 세계를 자주 혼돈에 빠지게 했다. ‘진심이야…? 꼭 이렇게 잘잘못을 따져야만 속이 편하겠어요…? 이제 그만.’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로 소모전이 계속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마음이 어려워질 대로 어려워져서 나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퇴사해야겠다고 알렸다. 이런 나의 말에 지인들의 반응이 갈렸다. “진짜 힘들겠다. 퇴사해라”라며 위로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있다. 힘들겠지만 극복해 봐라”라는 현실적인 반응도 있었다.   


 전자의 말은 내 마음을 편하게 했고, 후자의 말은 불편하게 했다. 진실은 대부분 불편하고 거슬리기 마련이니까. 후자의 말은 마치 연어가 거세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내 성향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후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누군가와의 관계에 직면하고 부딪치는 것은 내게 미지의 세계였다. 하지만 약간의 계시처럼 처음으로 부딪쳐 봐야겠다는 강렬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퇴사하느니 한번 부딪쳐나 보자고.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그를 따로 회의실로 불렀다. 그리고 속에 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냈다. “우리가 일을 같이 잘해보자고 모여있는 건데,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가면서 일하는 것이 예전부터 불편했다”고. 덧붙여 “우리의 성향이 많이 다른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정답은 없으니, 앞으로 잘 맞춰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그랬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뜻밖에 내게 사과를 했다. 막상 문제에 직면하고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여태껏 나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던 건지, 살짝 허무하기까지 했다. 


 어찌 되었든 이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의식적으로 조심하기 시작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시도였다. 단단한 벽으로 감싸고 있던 서로의 성향도 점차 내려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하다가도 각자의 업무 성향을 돌아보고, 종종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간 지점을 향해 서로 조금씩 발을 내딛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우리 관계의 실마리가 보였다. 


 갈등 현장에 있을 때야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장을 벗어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사실은 그가 맞았던 부분도 있었다. 나는 새로운 시도에 있어서 진취적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많이 배웠다. 늘 성공만 할 순 없으니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 실패하더라도 제대로 실패해 봐야 한다는 것, 제대로 된 실패를 통해 의미 있는 배움을 얻어야 한다는 것, 모두 그에게 배웠다. 내 세계에 빅뱅을 일으켜 준 그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를 계기로 나와 성향이 아주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비슷한 사람끼리 있으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변화가 생기기 어렵다. 반면에 나와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을 만날 때 나의 세계는 확장된다. 그리고 도망치지 않고 맞설 때 진정으로 관계가 회복된다. 나아가 이후에도 다른 관계를 이어나갈 모종의 힘도 얻을 수 있다. 그때 도망쳤더라면, 아마도 나는 여전히 나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나의 소중한 절친이 된, 나와 힘껏 부딪쳐 준 J에게 짙은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그 사람, 나랑 너무 안 맞는다고? 오히려 좋다. 



사진: UnsplashGuillermo Fer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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