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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Feb 28. 2024

취향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취향이 있다는 건 일상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

 “어떤 여행 스타일을 선호하세요?”

 “평소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세요?”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예요?”


 누군가 내게 취향을 물을 때면 난감했다. 얼핏 보면 간단한 질문임에도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일시 정지된 화면처럼 굳어버렸다. 내 취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 위한 일시 정지가 아니라, 어떻게 대답해야 무난할까 (혹은 상황에 따라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특별해 보일까) 고민하는 일시 정지였다.


 나는 머릿속에서 급하게 취향을 고르고 골라서 어렵게 대답했다. 이런 순간엔 집중력이 좋은 동시에 아주 산만했다. 내가 내뱉을 말에만 집중했지, 진짜 내 취향에는 집중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진짜 내 취향은 뭘까?


 어릴 땐 경험이 적으니 취향이란 걸 가지기가 어려웠다. 뭘 경험해 보고 다양하게 구매해 봐야 취향이라는 것도 알아가기 마련인데, 가난했던 그 시절엔 ‘취향’이란 단어도 낯설었다. 그러니 베스킨라빈스31에 가서도 주구창장 체리쥬빌레만 먹는 것이다. 다른 맛을 먹어봐야 맛있는지 맛없는지도 알지…다른 건 무슨 맛인지 사 먹어보지 못해서 알 수가 없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키는 게 체리쥬빌레니까, 진짜 좋아하는 맛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체리쥬빌레’ 좋아하는 애가 되어버리고 만다.


 커서는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취향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경제력이 어느 정도 생겼지만,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향을 취향으로 가졌다. 연예인들이 즐겨한다는 필라테스를 따라 하고, 테니스를 치고, 위스키를 마시고, 스테이크를 썰고, 유명하다는 향수를 뿌렸다. 내 취향은 남들이 봤을 때 예쁘고 멋진 것이어야 했다. 사실은 운동도, 술도, 음식도, 향도 잘 모르면서, 온갖 좋아 보이는 것을 내 취향인 척했다. 취향마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용납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나만의 취향을 갖는 게 참 어려웠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성향 때문에 뭐든 평균 이상으로 잘하려고만 하지, 뭔가를 엄청나게 좋아해본 적도 없고, 깊게 빠지지도 않았다.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일이라면 딱히 관심이 없는, 내게 취향이란 딱 그런 존재였다.


 그러다가 30대가 되면서부터 주변에서 취향이 확고한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커피를 사랑하는 한 동료는 본인이 어떤 커피를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같은 커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맛도, 향도, 성분도 다를뿐더러 심지어는 누가 커피를 내리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고. 그 순간, 동료가 미각 천재로 보였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뮤덕 친구는 뮤지컬 관람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최애 배우의 모든 공연은 다 찾아다니며 보고, 살 수 있는 모든 굿즈를 구매했다.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있는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위스키 없이 하루도 못사는 남편은 틈만 나면 위스키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도 다양한 위스키를 시도해 보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고 있다. 위스키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남편의 두 눈동자가 싱싱해졌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내게 부러움과 부끄러움의 마음이 동시에 찾아왔다. 뭘 해도 흐릿한 나와 달리 선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사람들, 자신의 취향을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빛나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삶이 풍성해 보였다.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취향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취향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고 나와 있었다. 자신의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은 즉,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인 셈이었다.


 결국 취향을 찾아간다는 것은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민감하게 캐치해낸다는 것 - 세상과 잘 소통하는 동시에 나 자신과 잘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려면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우리가 경험한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이 취향으로 자리 잡으니까.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 마음의 방향성을 찾고 취향을 깊게 파기 위해서는 감각을 열어두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 그것이 여행이든, 공부든, 독서든, 사람이든, 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흔쾌히 겪어보는 것이다.


 경험 이후에는 ‘내 마음의 선호’를 잘 분간해내야 한다. 취향을 발견하는 여정은 감각을 섬세하게 열어야 시작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야 구체적인 내 취향을 알아갈 수 있다.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이 경험이 어땠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찾은 취향은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걸 찾았다는 건 행운이다. 좋아하는 걸 아직 못 찾았어도 괜찮다. 앞으로 좋아하는 걸 찾아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지닐 수 있으니까.


 나는 아직도 취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취향을 욕망한다. 취향의 부재로 살아온 지난날을 애도하며, 언젠가는 가장 나다운 선명한 색깔의 파레트를 펼쳐 보이면서 “이것이 내 취향이야”라고 확고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부록] 제가 좋아하는 건요.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여행보다는 휴양하는 여행이 좋아요.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멕시코 칸쿤이에요.    

    보노보노와 도라에몽이 갖고 있는 발랄한 블루 색깔을 좋아해요.   

    삼겹살을 케찹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해요.   

    우디 계열 향을 좋아해요. 시트러스 계열 향을 안 좋아해요.   

    지브리 영화를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에요.   

    인생 영화는 유럽 영화 <Blind>, 티모시 주연의 <콜 미 바이 유어네임>이에요.  

    인생 드라마는 <커피프린스 1호점>이에요.  

    인생 책은 주제사라마구 작가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요.  

    자전적 소설을 쓰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를 존경해요.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좋아해요. 맥주는 싫어요.   

    녹차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 민트 초코를 싫어해요.   

    최애 음식은 떡볶이에요. 하지만 밀가루를 싫어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해요.  

    열대 과일을 좋아해요. 최애 과일은 망고와 두리안이에요.   

    커피를 못 마셔요. 대신에 캐모마일차나 히비스커스차를 마셔요.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이름 모를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해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해요. 악보대로 치는 것보단 변주를 좋아해요.   

    간식 취향이 할미예요. 고구마, 옥수수, 밤양갱, 약과, 쌀과자…  

    살짝 어둡고 조용한 곳이 좋아요. 사람 많은 곳은 싫어요.   

    저녁형 인간이라 저녁이 좋아요. 아침엔 눈꺼풀도, 몸도 무거워요.   

    사람은 소수로 만나는 게 좋아요. 최대 4명까지. 5명부터는 정신이 혼미해져요.  

    뜨거운 여름이 좋아요. 싸늘한 겨울은 크리스마스만 보고 견뎌요.   

    남의 집 동물을 좋아해요. 남의 집 강아지를 특히 좋아해요. 먹이 주는 건 더 좋아해요.   

    순발력을 요하는 운동은 좋아요.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은 싫어요.   

    청각이 민감해서 음악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니카 벨루치에요.   

    섬세한 사람을 좋아해요. 섬세하다가 한 번씩 터프한 사람은 사랑해요.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고 있는 귀한 당신을 좋아해요.



사진: UnsplashKrasimir Savch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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