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Nov 17. 2023

복이는 자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철학 소년, 복이

 복이의 학창 시절은 철학적 사색으로 가득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복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죽을 운명이며, 삶 따위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 이후로 복이 인생의 목표는 자살하는 것이 되었다.


 적절한 자살 시기를 모색하던 중, 복이의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복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성의를 보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후로 복이는 더욱 깊은 니힐리즘에 빠져 살았다. 이따금 니체의 영혼이 복이를 찾아와 귓속말을 했다. 신은 죽었다고. 복이는 술과 담배를 절친으로 두었고, 한 학기 학교 등록금을 고스톱으로 탕진했다. 복이에게 인생이란 무의미한 것이었으므로 그저 그렇게 살다가 적당한 때에 죽을 작정이었다.


 복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복이의 생김새는 더욱 샤프해졌다. 사람들은 복이의 눈이 마치 뱀 눈 같다고 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이 시기에 복이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복이의 자살은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하면서 미뤄졌다. 그러나 내면엔 여전히 큰 혼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복이는 대학에 가는 대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형과 함께 사업도 하고,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철학 소년 복이는 인생을 사는 데 거침이 없었다. 고된 노동이나 인생의 고단함은 오히려 그가 환영하는 것이었으리라.


 고단한 인생을 보내던 복이는 신문에서 대한민국 10대 재벌 기업 리스트를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적혀있는 주소로 직접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랬다. 나는 이런 사람이며, 이렇게 살아왔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당신네 회사에서 고용해달라는 것. 놀랍게도 그중 한 기업이 복이의 편지에 감명받아 복이를 고용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복이는 자신만의 올곧은 철학을 무기로 그렇게 대기업에 입사했다.


 복이의 재산은 복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점점 불어났다. 본인 스스로 형제들과 재산 싸움에 말려들기 싫다며 부자 아버지의 재산을 단 한 푼도 물려받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자수성가를 이뤄냈다. 당시 복이의 재산은 서울 강남에 집 한 채는 거뜬히 살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다. 20대 초반의 나이로는 쉬이 모을 수 없는 재산이었다. 그러나 복이에게 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중에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복이의 인생은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부자가 된 복이는 난생처음으로 소개팅을 하고, 여자를 만났다. 복이의 자살이 또다시 미뤄졌다.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것 같이 느꼈던 복이에게도 여자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알 수 없이 무언가를 먹고 싶어 했고, 알 수 없이 데이트 중에 체력이 바닥났으며, 알 수 없이 울었다. 그리고 '내 동생이 나보다 먼저 결혼할 것 같다'면서 우는 까닭에 엉겁결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복이는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으나,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유부남이 된 복이는 머지않아 사우디아라비아로 출장을 떠났다. 복이는 아마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어떤 존재가 복이를 찾아왔다. 바로 신이라는 존재였다. 복이는 그곳에서 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느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극히 사적인 경험의 세계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복이는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더 이상 자살을 꿈꾸지 않았다. 그리고 기꺼이 살아가는 사치를 누렸다. 죽음을 소망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내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 내세를 바라보는 복이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 찬란함일까, 아니면 참담함일까.


 복이의 생각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복이의 피를 이어받은 나는 복이와 마찬가지로 이따금 철학적 사색을 즐긴다. 그러나 동시에 복이 아내의 피도 이어받았음으로 별생각 없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날도 많다. 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깨달은 사람을 모두 철학자라고 부르는데, 복이는 그런 의미에서 진짜 철학자다. 그리고 나는 가짜 철학자다. 그저 철학자 복이를 좋아하는 복이 빠순이다.


 나는 복이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가 오늘은 어떤 사색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사색하는 복이가 좋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나에게 신나게 떠드는 복이가 좋다. 복이가 내 아빠인 건 큰 행운이다.



사진: UnsplashSteinar Engeland

매거진의 이전글 빼빼로 데이의 쓴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