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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May 15. 2023

어린왕자와 세 번의 인사

서른 하나에 만난 어린왕자

 지난 주말엔 본가에 다녀왔다. 마지박 방문 때 누나가 '어린 왕자'를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이 기억나 선물할 요량으로 서점에 들러 표지가 예쁜 책 한 권을 골랐다. 주말엔 비가 제법 많이 오고 있었기에 종이봉투에 든 책이 울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품 속에 고이 넣어왔다. 책은 선물이라는 감투를 쓸 때 답례로 뿌듯함을 잔뜩 벗어놓고 가는 모양이다. 책을 읽고 있는 누나를 보자니 괜스레 나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말이 지나기 전에 돌아가야 하기에 가족들이 잠든 새벽녘에 책을 집어 들었다.


 흔히들 '어린 왕자'는 인생의 어느 타이밍에 읽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게 다르다고들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 여기 내가 만났던 어린 왕자들을 간략히 나누고자 한다. 처음 만났던 어린 왕자는 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사촌 누나 방에 있던 책을 우연히 읽었는데, 그때는 동화를 읽듯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흡수하며 머릿속으로 상상의 이미지들을 펼쳐나갔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든지, 행성을 파괴할만한 바오밥나무라든지 (나는 이때 바오밥나무가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빠르고 크게 자라는 무시무시한 나무인 줄 알았고, 우리나라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황금빛 밀밭에서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를 생각하며 단편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즐긴 것 같다.


  두 번째 만남은 스무 살 남짓이었는데, 이 때는 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 전 들렀던 행성들에서 만난 '이상한 어른'들에 꽂혔었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갈 무렵에 나는 아직 소년의 순수성을 고집하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이야기에 나오는 '이상한 어른'들을 보며 나도 어린 왕자의 시선에 크게 동조하였다. 권위에 집착하는 왕, 소유와 계산에 매몰된 사업가, 술을 마시는 것이 괴롭지만 그 괴로움에 술을 찾는 술꾼. 각자의 아집에 갇혀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고자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만에 나는 이제야 어린 왕자를 만난 것 같다. 이번에 내 마음을 울린 것은 어린왕자가 귀향을 결심한 마음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우연함으로 장미를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그 마음이 서툴러 싸우고 별을 떠나왔으나, 이미 마음을 그곳에 두고 왔음을 깨닫고 돌아가는 그 귀향길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장미가 저 위에 있기에 모든 별이 아름답고, 그 장미가 위험에 빠진 상상만으로도 모든 별이 슬퍼지는 마음. 앞서 서술한 '이상한 어른'들과 보편적 우리들이 잊어버리고만 마음말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존재에 마음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에게 삶이 주어진 이유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주어진 삶 동안 마음을 던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로 말미암아 세상을 희로애락으로 다양하게 채워가는 것이다. 서른 하나의 나는 비로소 금발의 소년과 눈을 맞춘 듯하다. 안녕, 반가웠어! 10년 후에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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