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건물의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나는 양치를 할 때면 건물 창을 통해 연못을 빤히 바라보곤 한다. 이 연못에는 거위들이 사는데, 거위들이 연못 위에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엽다(이 거위들의 귀여움에 대해서는 후에 다뤄보겠다.) 이들이 헤엄을 칠 때면 수면에는 거위들의 그림자도 생기기 마련인데, 거위의 그림자는 조막만 한 물갈퀴가 만들어내는 작은 물장구에도 이지러지곤 한다. 분수라도 틀어져있을 때면 어지러운 물결파들에 의해 그림자의 형상은 유지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듯 실체는 수면을 만나 한껏 왜곡되고 과장된 비실체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왜곡은 실로 변화무쌍해서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하는데, 해가 뜨고 지며 선사하는 오묘한 빛의 스펙트럼과 스쳐가는 크고 작은 바람들에도 수면 위 비실체의 그림자는 무한한 형태의 변환을 보이곤 한다. 이 넘실거림에는 묘한 마력이 있어서 우리는 하릴없이 이 율동의 조용한 관객이 되곤 하는 것이다. 물이 만들어내는 왜곡의 율동은 불쾌함 없이 실로 자연스럽다.
우리 모두는 우리만의 수면으로 세상을 비추어본다. 우리는 실체의 세상을 온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우리의 감각과 인지를 통해 세상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감각과 인지의 수면은 실로 물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한껏 일그러지고, 왜곡되고, 과장되고, 축소된, 끊임없이 변하고 요동치는 수면 위의 그림자이다. 너와 내가 바라보는 노란색이 같을 수 없음이며, 너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우리 안에서 전혀 다른 사람임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것, 모든 타인은 나라는 수면을 통해 탈바꿈한 그림자로서 인지된다. 세상은 나만의 수면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수면을 가꾸는 일은 세상을 가꾸는 것과 같다. 고로, 나는 소망한다. 나의 마음의 수면이 조약돌에 이지러질지언정 요동치지 않기를, 혼탁하여 무언가를 맑게 비출 수 없지 않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답게 물들어가기를.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러하기를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