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은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기대한 일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서 기대한 만큼의 상처를 받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한숨짓다가도 그래도 일어나야지, 무너지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털어내지만 막상 또 비슷한 일 앞에 서면 위축되고 만다. 위축이 되고 나면 머뭇거리게 되고, 새로움이 더 이상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여러 상황을 단정 지어 버리고 만다.
실망감이라는 감정에 맞서 싸워 이겨내는 것이란 실망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죽어버린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염없다.'라는 말이 너무나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어김없이 실망하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실망에 맞서고, 회복되길 기다리며 다져진 마음들이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삶을 지탱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실망' 속에서 제자리를 걷고 있다.
괴로워하기도 하고 후회하다가도 다시 괜찮아지기를 반복한다.
그 제자리걸음에 대하여 적어보려고 한다.
사소한 실망은 절대 사소하지 않은 흔적을 남겼고, 쌓이고 쌓인 흔적들에 실망이 습관처럼 되어버릴 때, 내가 느낀 것은 비관이었다.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으려는 나였다. 어느샌가 또 실망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 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 시간들이 더 많았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연연하며 상처받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순간순간들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 원망스러웠고, 불안에 사로잡혀 나아가지 못한 채 그대로 요동쳤던 시간들이 후회로 남았다. 그렇게 얻은 것도 남은 것도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며 인생을 돌아보기 일쑤였다.
이처럼 나는 나에게 쥐어졌던 것들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보냈다. 그렇게 굳어버린 시간들이 아까웠고, 괴로움의 이유는 갈수록 명확해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지나온 시간들 속에, 분명 아무것도 없지는 않았음을 은연중에 스스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공백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고, 이유를 알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그러나 언제나 생각이란 문득 찾아왔다.
짧게 스치는 생각들은 괴로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한때 나는 절대 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는 단발이 되었다.
줄곧 긴 머리를 유지할 것만 같았지만 그렇게 마음은 한순간에 바뀌어 있었다. 너무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에겐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한 달에 미용실을 두 번 간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바보 같았던 것 같다. 커트 비용이 많이 비싸졌는데,,,)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내게 필요했던 것은 머리카락은 언제나 새롭게 자란다는 사실이었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고 말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자를 때면, 어딘가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답답함을 깨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엉켜버린 마음을 쉽게 끊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조금씩 걷어내다 보면 어느샌가 엉켜버린 마음 앞에 서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단발인 모습은 마음에 든다.
'어떤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다. 생각은 많았지만 생각의 폭은 좁았던 것 같다. 속이 좁은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남들에겐 너그러운데 나에게만 엄격한 것을 보면 또 그건 아닌 것도 같고,,,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먼저 알게 된 것은 한 개의 일은 여러 개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일이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주 힘들고, 아픈 일이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절대 잊히지 않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냥 흘려보내지는 일이라는 것.
같지 않음을 알아차려야 했고, 바로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언제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해야 했다.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결국에는 허우적거릴지라도 떠오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며 알게 된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할 것만 같았지만 사실 생각의 헤엄을 멈춘 채로 가만히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더욱 단단해진 시간은 두려움에서 생겨난 다짐을 새로운 다짐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었고, 어떠한 일이 어떠할지는 모두에게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