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랜 말

정글 늪을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어요.

by 십일아

'불안'은 늘 함께였다.

기분이 좋을 때도, 기분이 별로일 때도.

기분이 좋을 때는 맘껏 기뻐하지 못하도록 벅찬 감정을 막았고, 기분이 별로일 때면 더 깊은 어둠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 속에서 만들어진 감정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문득문득 나를 찔렀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맞출 장단이 없는 게 문제였다. 언제나 치우치는 곳은 어둡고 외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참 애석한 마음이었다. 나의 마음이었지만 나도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불안 속에서 헤매는, 그렇지만 그 속에서 묵묵히 버텨내는 시간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목표가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목표가 없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면, 그토록 인생을 허무하게 만든다면. 그렇다면 목표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어쨌든 알 수 없는 곳 일지라도 길을 걸어야 했다. 여러 곳을 가보진 않았지만 한 곳에 다가서기도 쉽지 않았다. (성격 탓도 참 많이 했다.) 그렇게 마주한 길은 뚫려있는 공간과는 다르게 숨 쉴 수 없는 공기들로 가득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다가섰을 때의 두려움을 잊지 못한다. 조급함이 만들어낸 방황이었다. 그 여운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삶이 멈춘 듯 살았던 적이 있었다. 꽤나 거창하게 얘기한다 싶겠지만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 꽤나 버거웠던 것 같다. 그래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의 일로 '아,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알아차렸고, 참 깊게 아파했다. 그렇게 어둠을 견디기엔 아직 나약하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두려움이 건넨 아득한 어둠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구부러진 길에 멈춰 섰을 때, 한숨과 함께 느낀 건 묘한 안도감이었지만 이것이 쉬어가는 것인지, 도망치는 것인지 오랜 시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느 곳을 향해 가든지 이리저리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앞만 보고 나가고 싶었다. 안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에 갇힌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바라보는 세상만큼은 그러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마음과 세상은 연결되어 있었고, 마음을 마주하는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세상을 외면하다가 결국은 나조차 외면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외면하다가 결국은 세상마저 외면한 것일까.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무시하려고 애쓴 마음은 결국 회피가 되어 나를 꽉 붙잡았다.

불안은 늪과 같았다.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깊어져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나를 더 지치게 만들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무서움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냥저냥 흘러가겠지 싶었다. 그러나 나를 세게 누르는 공기도, 깊게 가두는 세상도 없어지지 않았고, 질끈 감은 눈이 알려준 것은 나는 꾸준히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아차 싶었다.

정말 내가 두려웠던 것은 세상이 주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공포였던 것이다.


이처럼 짙은 여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일단 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첫 번째는 현실이 아닌 걸 알기에 슬프다가도,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단 사실에 아이러니하게도 안도하는 마음이었고, 두 번째는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지만 마치 없었던 일처럼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처음이 어떠하든, 그 마음이 어떠하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생긴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었지만 가끔은 그 마음이 너무나도 짙어져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벗어나려고 애써보았지만 그때마다 처참하게 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며, 그 시간들 속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빠져나오는 방법은 허우적거리기보단 그냥 스며들게 놔두는 시도였다. 마음껏, 온 마음을 다해 끌어안으면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보내줄 수 있거나, 더욱 단단해진 마음으로 완강하게 맞서거나. 그렇게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마주할 수 있도록 멈출 수 있었다.




물론 ‘시도’였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그렇지는 않았고, 몇몇의 일들만 그럴 수 있었다. 아무리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아도 계속해서 버티며 도망가는 것들도, 온기조차 나눠주지 않고 토라져버린 것들도 많았다. 추억이 되지도 못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맞설 수 없는 일들도 허다했다. 여전히 시달리며, 아파하는 일들이 암흑으로 나를 온통 감싸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짙어지고 무너지는 세상의 결핍 속에서 몇몇의 일들의 자국이 나에게 남았다. 그럼에도 잘 보내주기 위해서, 잘 버텨내기 위해서 오랜 시간 기다려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새겨진 자국들을 볼 때면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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