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그때라는 건, 매 순간을 살았다는 것.

by 십일아

별거 아닌 듯 떠내려가길 바랐지만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 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흘러가는 강물이 나에겐 멈춰버린 강물과 다를 게 없었다. 휘저으며 맘껏 흘러가라고 손짓해도 양손에 미련만 잔뜩 묻히고는 또 마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메마른 손이 갈라질 때쯤 불어온 바람에, 손톱에 할퀴는 것 마냥 쓰라려오는 마음을 안고, 또다시 강물에 손을 담그고 휘휘 젓기를 반복했다.


잠시만 물러서면 안 될까. 잠시만 부르튼 마음을 꽉 쥔 채, 감싸 안으면 어떨까. 충분히 아파했다면 이제 그만 놓아줘도 된다고 말하는 너였지만 충분히 아파했다는 것이 얼마만큼인지 나는 헤아릴 수 없었다. 괴로움에 나의 마음을 내어줬다면 이제 그만 놓아줘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내어줘도 내어줄 마음이 있다는 것이 나도 속상하기만 했다.


배려는 회피가 되고 침묵이 도움이 되는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고뇌하는 시간이 길어져만 가도, 종잡을 수 없는 마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끌려다니는 것일지라도, 아파했던 순간들에 사로잡혀 나를 상처 입힌 것들을 탓하며 시간을 허비해도, 한순간에 나도 그렇게 잘한 것은 없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또 다른 아픔을 맞이해도.

거창할 거 없는 인생 이랬다. 나와 같은 글귀에 위로받고, 나와 같은 날씨에 울적하는 나날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물에 비친 너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너는 거기에 있었다.

멈춰버린 강물에 너의 안색을 살피고, 너의 표정을 살피고, 웃어도 보고, 울상도 지어 보이며,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아니,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이다.

강물에 따스한 햇살이 일렁일 때, 후두둑 떨어지는 비에 강물이 출렁일 때, 부는 바람에 강물이 찰랑일 때, 밤하늘의 달과 별이 강물에 수놓을 때. 그때가 오면 언제든지 다시 흘러갈 것이라고 했다.

이전 17화아직도 여전히, 그러나 비로소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