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도 포기한 적 없었지만

18.

by 십일아


그 말은 껍데기가 아니었다

그 존재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우선이었고 더욱 의미 있었으며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힘이 생겼을 때

점점 더 강해져만 갈 때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커져버렸을 때

그제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구나 하며

너무 많은 마음을 낭비하고 있었구나 하며

괴로워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내어준 뒤였다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온다고 한들 자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 많은 시간과 많은 마음을 다시 쥐여준다고 해도 다르게 쓸 자신이 없었다

원했던 것이 대체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한순간에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나

애초에 아무런 말도 아니었는지

처음부터 그런 멋진 존재는 가질 수도 될 수도 없었던 건지

시간에 쫓겨서 눈여겨봐야 했을 것을 놓쳐버린 건지

마음이 부족했던 탓에 열심히 채워야 했을 것을 깎아버린 건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젠 껍데기가 되어버린 말인데

여전히 필요하다며 곁에 두고 있을 뿐

떠나지도 버리지도 밟지도 잡지도 간직하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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