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풍봉 거래를 찾은 건 남편이었다
하풍봉 거래를 찾은 건 남편이었다.
“중앙제어 되는 버전 맞아. 이만 원. 새미로면 서주초등학교 있는 그쪽이네.”
하풍봉은 하늘색 풍선 봉의 줄임말로 지오디 응원봉을 팬들끼리 부르는 애칭이었다. 지오디의 부산 콘서트는 10년 만이었고, 남편이 지인을 통해 어렵게 구한 티켓이었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가야 했다. 요즘은 콘서트 때 공식 응원봉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오만 원이나 하는 새 하풍봉을 사려던 참에 남편이 반값도 하지 않는 가격의 당근 거래를 찾아낸 거였다.
“지금 바로 올 수 있냐는데?”
두 눈을 폰에 고정한 채 남편이 물었다.
“가야지. 가자.”
새미로로 이사를 간 건 6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때였다. 새집은 서주초등학교 바로 뒤 약 700세대 정도 되는 유명 건설사의 신축 아파트였다. 당시 서주동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4~5층짜리 주공아파트와 오래된 주택가들로 들어찬 동네였기 때문에 20층이 넘는 아파트가 들어선 건 일대에서는 꽤 떠들썩한 일이었다.
“옛날에는 그냥 미나리꽝이었단다.”
엄마는 이삿날 시킨 자장면 그릇의 비닐랩을 뜯으며 말했다.
“미나리꽝이 뭔데?”
“미나리 밭. 그 정도로 아무것도 없던 동네였다고.”
베란다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주공아파트를 보며 엄마는 저게 다 30년은 된 집들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장면 위에 뿌려진 노란 스위트콘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옥수수알은 열 개도 채 되지 않았다. 스무 개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우리 집은 엄청 높네. 높으면 좋은 거가.”
비닐랩이 잘 뜯기지 않아 엄마는 애를 먹고 있었다.
“그렇지. 가위 좀 가져와 봐라.”
엄마는 내 질문을 제대로 들은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서른 평이 넘었고, 당시 유행하던 옥색의 부엌 수납장도 있는 데다 화장실은 무려 두 개였으니, 우리 집은 좋은 거였고, 우리 집은 높았으니, 어쨌든 엄마의 말은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심심하기만 했던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전학생으로 처음 새 교실에서 인사를 하던 날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저기 위에 사는 이은지’라고 소개했다. 반 애들은 손뼉을 치며 반겨주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우리 반 앞 복도는 쉬는 시간마다 나를 보러 온 다른 반 아이들로 북적였다. 내가 특별히 예쁘다거나 해서는 아니었고, 그즈음 전학 오는 애들은 새로 지은 그 ‘좋은’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라는 게 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신발장의 내 나이키 운동화를 보고 갔다. 와 진짜네, 진짜다, 하면서.
“너거 집에 놀러 가도 되나?”
전학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지원이가 물었다. 지원이는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큰 여학생이었다. 큰 키만큼 머리카락도 길어서 항상 빨간 방울이 달린 고무줄로 머리를 정수리 높이까지 높게 묶고 다녔는데, 눈썹까지 길게 내린 앞머리 때문에 지원이의 얼굴은 아주 작아 보였다.
“너거 집에서는 우리 학교 운동장이 다 보이네.”
집으로 놀러 온 지원이가 베란다 창 너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포도 맛 폴라포 끝을 쭉쭉 밀어 올리며 마지막 단맛까지 빨고 있었다.
“다음엔 니 집에서 놀자.”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다.
“우리 집은 저 밑에다.”
지원이가 말했다.
“니 밑에 집 가봤나?”
지원이는 폴라포의 주둥이를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아니. 여기서 너거 집 보이나 그럼.”
지원이를 따라 나도 잘근잘근 씹으며 물었다.
“보인다. 저기 있는데, 니한테는 잘 안 보일 걸?”
나는 지원이가 가리키는 곳 대신 빨간 머리 방울이 달린 지원이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눅눅하게 떨어져나온 폴라포 종이가 입술에 붙어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았다.
지원이네 집은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주공아파트 2단지였다. 아파트 후문과 학교 후문이 바로 연결된 우리 아파트와는 달리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했다. 지원이네 집은 4층이 없는 5층이었는데, 아주 좁은 현관에 너무 많은 신발이 뒤엉켜있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신발들을 몽땅 밟고 들어가야만 했다. 집은 어둡고 좁았지만 아주 오래 키웠을 법한 이름 모를 화분들이 가득해서 마치 작은 정글에 온 것 같았다.
“이거 다 우리 할머니가 키운 거다.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지원이는 화분 중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의 넓적한 잎을 매만지며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이런 거를 진짜 잘 키운다.”
나는 지원이 옆에 서서 다른 넓적한 잎 하나를 따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랑 아빠는 일하러 갔고, 할머니는 시장에 갔을걸. 언니는 고등학생이라서 밤늦게 온다.”
지원이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주며 말했다. 우리는 냉장고 앞에 나란히 앉아 요구르트의 초록색 은박 껍질의 가운데를 검지 손톱으로 콕 찍었다. 쪼그려 앉은 지원이의 발과 내 발이 닿아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에 원래 피아노도 있었는데, 언니가 고등학교 가면서 아빠가 팔아뿌따. 있었으면 은지 니 치게 해줬을 건데.”
지원이가 쪼그리고 있던 다리를 쭉 펴며 말했다. 지원이의 다리는 정말 길었다. 나보다 한 뼘은 더 길었다.
“아니면 그냥 놀이터에서 놀래?”
지원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빈 요구르트 병은 싱크대 위에 올려 놓았다. 검지 손톱에 묻은 요구르트 때문인지 손가락 끝이 끈적거렸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누가 그네를 더 높이까지 탈 수 있는지 시합을 해보기로 했다. 두 다리를 허공에서 휘젓는 힘으로 지원이와 나는 거의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나는 이내 힘이 빠져버렸고, 그러는 동안에도 지원이는 긴 다리로 하늘에 닿을 듯 계속해서 온몸을 차올렸다. 나는 그네에서 내려 그런 지원이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붉게 내려앉은 노을빛에 반사된 지원이의 까만 머리칼이 순간 금빛으로 노랗게 빛났다.
“니 지금 공주님 같다. 금발 공주.”
내 말에 지원이는 활짝 웃었다. 그때 내가 본 건 긴 앞머리에 가려져 있던 지원이의 이마였다. 하늘에 가깝게 몸이 올라갈 때마다 지원이의 이마가 환하게 드러났다. 하얗고 둥근 지원이의 이마에는 좁쌀 같은 빨간 여드름이 가득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리.”
지원이는 그걸 비밀이라고 했다. 우리 둘만 아는 비밀. 그리고 우리는 그날 이후 단짝이 되었다.
1년 뒤, 지원이와 나는 같은 미용실에서 귀밑 3센티에 맞추어 머리를 자르고, 비슷한 모양의 뿔테 안경을 맞춰 꼈다. 똑같은 교복을 입었고, 지원이에게만 있던 여드름을 나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나는 생리를 시작했다.
“생리대는 여기에 넣어 다녀라. 안 보이게. 내랑 같은 거다.”
지원이는 분홍색 체크무늬로 된 작은 주머니를 내게 주며 말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한지원, 니 민희 언니 동생이제? 학교에서 힘든 일 있음 언제든지 말해라.”
입학 첫날, 3학년 언니들은 지원이를 보러 1학년 교실에 내려왔다. 지원이는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는 지원이가 그런 언니들과 어울리는 일진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나와 같은 학원에 다니는 다른 학교 친구들까지 지원이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은지야, 지원이라는 애랑 니가 친하다는 게 선생님이 보기엔 좀 이상하다. 걔하고는 거리를 좀 둬라.”
학원 선생님은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나를 따로 불러 말했다.
“그리고 걔는 학원도 안 다닌다며.”
나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 게 그렇게 이상할 일인가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원이와 나는 여전히 붙어 다녔다. 지원이는 가끔 민희 언니를 따라 동네 슈퍼 앞이나 학교 운동장에 나가 놀기도 했는데, 그건 민희 언니가 지원이의 친언니이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언니를 따라다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지원이는 공부도 곧잘 했고, 사회와 실과는 나보다 더 점수가 높았다. 체육과 미술 수행평가는 언제나 우리 반에서 1등이었다.
“나는 나중에 디자이너가 될 거다. 헤어 디자이너 말고 패션 디자이너.”
학교 운동장의 스탠드에 앉아 지원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도 미용사고, 우리 언니도 미용고라서 나는 그거는 안 하고 싶다.”
지원이가 그 얘기를 할 때, 나는 학교 매점에서 사 온 오징어 숏다리 봉지를 뜯고 있었다. 오징어 숏다리는 이름과는 다르게 롱다리였는데 나는 다리 하나를 뜯어 들고는 지원이에게 말했다.
“야, 이거 니 다리 같다.”
지원이는 내 등을 때리며 웃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키는 달랐지만, 우리는 비슷한 게 더 많았다. 학교 앞 분식집의 순대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 다른 애들은 단연코 떡볶이나 김밥말이 튀김을 좋아했다-, 순대에서는 허파를 가장 좋아했다는 것- 허파의 쫄깃함과 고소함을 모르는 다른 애들은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주공아파트 2단지 앞 놀이터라는 것- 하지만 최근에는 야구장 앞에 큰 맥도날드가 생겨서 그곳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일 싫어하는 선생님은 보건 선생님이라는 것- 보건 선생님은 항상 너무 짜증이 많았고, 펄이 들어간 보라색 아이섀도를 너무 진하게 발랐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하늘색이라는 것까지.
하늘색은 가수 지오디의 팬 컬러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오디의 팬이었다. 나는 손호영을, 지원이는 윤계상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취향의 차이는 있었지만, 덕질을 할 때에는 오히려 그게 장점이 되었다. 나에게 윤계상 엽서는 별 필요가 없었고 그러면 그건 지원이에게 주면 되었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학교 점심시간에는 방송부에서 학생들이 신청한 노래를 틀어주었는데, 우리는 지오디 오빠들의 생일이면 놓치지 않고 지오디 노래를 신청했다. 3월엔 호영 오빠의 생일, 5월엔 태우 오빠의 생일에 맞추는 식이었다. 여중이었던 우리 학교에는 지오디 팬들이 많기도 했지만, 특히 그때는 지오디의 ‘거짓말’이 대히트를 치던 때라 학교 방송으로 그 노래가 나올 때면 우리는 응원법에 맞추어 ‘지오디 짱’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오빠들의 데뷔 천일 기념일에는 하늘색 에이포 용지로 자보를 만들어 동네 곳곳의 전봇대에 붙였고, 직접 만든 하늘색 종이 껍질로 껌을 싸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까지 했다.
파란 하늘, 하늘색 풍선은 우리 맘속에 영원할 거야. 너희들의 그 예쁜 마음을 우리가 항상 지켜줄 거야.
지원이와 나는 그날 밤, 전봇대에 붙였던 하늘색 자보를 손수 떼어내며 오빠들의 ‘하늘색 풍선’ 노래를 불렀다. 손가락 끝마디가 파랗게 물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2학년이 되었다.
“오늘 우리 동네 박 터지겠네.”
엄마는 아침상을 차리며 들뜬 얼굴로 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첫 본선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경기가 열리는 곳은 학교 바로 앞 서주 밀레니얼 주 경기장이었다. 아시안게임과 월드컵을 위해 새로 지은 경기장이었다. 오래된 야구장만 하나 있던 동네에 농구장, 수영장, 트랙이 있는 보조경기장 같은 체육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오늘 이기면 서주시장 호프집에서 맥주를 공짜로 준단다.”
아빠가 말했다.
“어느 호프집인데?”
엄마가 물었다.
“서주시장에 있는 호프집 전부 다.”
“한 군데가 아니고?”
“그렇다니까. 아무 호프집이나 들어가면 다 준단다.”
아빠가 의기양양해져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리는 월드컵에다 첫 본선 경기가 서주동에 새로 지어진 경기장에서 열리게 되었으니 동네 전체가 축제 분위기인 건 당연했다. 그날은 학교도, 학원도 일찍 마쳤다. 축구에 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동네마다 붙여진 우승 기원 현수막을 보고 있으면 없던 관심도 절로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 어디서 응원할 건데.”
지원이가 물었다.
“집에서 보지. 니는?”
“내 너거 집 가서 응원 같이해도 되나?”
지원이가 그 말을 한 건 의외였다. 6학년 이후로 지원이는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없었다. 물론 지원이 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집에서 노는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고, 학교를 마치고 나면 나는 학원에 가느라 바쁘기도 했다.
“우리 집은 텔레비전이 너무 작다이가.”
나는 얼마 전 새로 산 평면 LCD 텔레비전을 지원이에게 자랑했던 게 괜히 조금 미안해졌다.
“그리고 너거 집에는 고등학생 언니도 없고, 맨날 싸우는 엄마, 아빠도 없다이가.”
지원이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한동안 지원이를 볼 때마다 그 말을 떠올렸는데,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쨌든 그날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첫승을 거둔 그날 밤, 서주동의 골목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악마들로 붉은 물결을 이루었다. 지원이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오 필승 코리아’ 노래를 불러댔다. 저쪽에서 ‘대한민국’이라고 누군가가 외치면 이쪽에서 박자에 맞추어 짝짝짝짝짝, 손뼉을 쳤다. 지원이와 나는 빨간 뿔이 달린 머리띠를 끼고 처음 보는 동네 아줌마, 할아버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또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펄쩍펄쩍 거리를 뛰어다녔다. 그런 건 처음이었다. 아빠의 말대로 시장의 호프집은 공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붐볐고, 서주동 거리는 밤이 늦도록 시끄러웠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학생이었던 우리는 다음날 약속이나 한 듯 교복 대신 ‘Be the Reds’가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 역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지원이에 대한 소문이 잠잠해진 건 아니었다. 다만 당시 진짜 우리 학년의 일진은 서은빈이라는 아이였기 때문에 지원이에 대한 관심이 조금 사그라들었을 뿐이었다. 서은빈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항상 자기 반에 애들을 불러 모아 놓고 남자 이야기를 자랑처럼 떠벌리는 애였다. 인근의 남고에 남자 친구가 있다느니, 놀이터에서 밤늦게 오빠들과 술 마시는 걸 누군가가 보았다느니, 1학년 중에 제일 예쁜 애를 양동생으로 두고 그 애 집에서 돈을 훔쳤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카더라 통신으로만 확인된 거였는데, 확실한 건 그날, 그 사건이었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바로 그 일.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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