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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노들 Jan 28. 2018

모든 게 다 별일이라서

글을 쓰며 견뎌야 할 날들

어릴 때부터 뭐든지 혼자 했다. 괜한 오기나 책임감이었던 것 같다. 힘들어도 내색을 잘 안 했고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래 봐야 결국 내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런 날들이 쌓여서 10대에도, 20대에도, 그리고 30대로 접어든 지금에도 뭔가 내 얘기를 하는 게 어색하고 어렵다. 그럴 때마다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을 때 나는 나한테 글을 썼다. 내 자신에게 보내는 구호 메시지 같은 거, 였다.


이 방법으로 지금까지 꽤 괜찮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은 정말 감기처럼 불현듯 찾아왔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뭐든 기억하기가 어렵다. 어떤 날은 잠을 거의 못 잤다가 또 어떤 날은 걸으면서도 자고 있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다. 갑자기 멍해져서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로 한참 멀어져 가는 시간을 응시하거나,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어 괜히 마음만 조급해지는 날이 반복된다.


감기는 한 번 걸려도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그래서 그런 건 줄로 생각하고 내버려두었는데 이게 독감이었던 모양이다. 그 사이 우울은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파고들어 나를 괴롭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울면서 걸었다. 추운 날에 밖에서 울면 눈물이 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걱정시키는 게 싫어 또 혼자 견디려다 결국엔 모두를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게 만들었다.


끊어지는 마음을 붙들고 겨우겨우 도움을 받을 용기를 냈다. 전문가를 만났고 친구들과 가족에게도 조금씩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반나절에 한 번씩 응원과 힘을 받고 있는데 그게 너무 고마우면서 또 생각처럼 힘을 잘 낼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 "누구한테나 다 겨울은 오는데, 그냥 올 겨울이 너한텐 유난히 추운 거라고 생각하자. 그만큼 더 따뜻한 봄이 올 거야."라고 위로해준 친구의 말에 하루씩 버틸 힘을 얻는다.


언제쯤 괜찮아진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우울한 날이 계속되는 동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동안 몇 명의 사람들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대로 살아야지. '이해해줘'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기적이고 그걸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지금은 나만 생각해도 매일이 어렵다.


어떤 날은 즐겁고 또 며칠은 아니겠지. 당분간은 그럴 때마다 글을 쓰려고 한다. 이 기록이 추운 겨울을 견디는 사람들 곁에 닿으면 좋겠다. 꽉 안아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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