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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노들 Dec 30. 2018

나의 사랑하는 국수야, 잘가

국수야, 우리가 만나기전에 너는 ‘플리즈’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지. 플리즈가 뭐야. 국수는 완전 국수인데. 누들 동생이니까 국수라고 내가 막 그랬을때 가족들이 다 반대했는데, 내가 끝까지 우겨서 그 이름을 쟁취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만한 이름이 없는데 그치?

낯선 곳에 와서 잠도 잘 못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너를 안심시키느라 나도 거실바닥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그랬는데. 그때 이후로 너는 늘 내 책상밑이나 침대 옆에 벌러덩 드러누워 잠을 잤지. 코는 어찌나 심하게 고는지. 근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까 자장가 같더라. 오히려 니가 코를 안 골면 너무 이상한거야. 얘가 어디 아픈가 막 그러면서.

너는 레게머리처럼 까맣고 잔뜩 꼬여있는 털이 덥수룩하게 있어서, 날이 엄청 추운날엔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너 털 밑에 발을 집어넣고 따뜻해지길 기다리곤 했는데. 또 너는 겨울을 좋아하니까, 한파인지도 모르고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나만 심한 감기에 걸려서 일주일이나 고생하고 그랬었는데.

우리 처음 바다에 갔을 때도 기억나? 덩치는 큰게 물을 무서워해서 내가 한참 놀렸지. 그때 인근에 묵었던 펜션에서 비빔국수&검은콩국수 사진도 찍고말야. 내가 그때 빨간머리를 했었잖아. 친구들이 우리를 그렇게 불러주더라구. 너무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어!

국수는 방송에도 두번이나 나갔었는데. 아빠가 우리집에서 방송 나가본 사람 있냐며, 국수 니가 최고라고 그랬었어. 근데 너 그때 막 사납게 굴어서 PD님 바지 찢어먹고 그랬잖아. 그건 좀 반성할 필요가 있어. 그때 갔던 애견카페에서 겁을 잔뜩 먹고는 자꾸 펄쩍 내 무릎위로 뛰어 오르고 그랬지. 나는 니가 겁이 그렇게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지뭐야. 사회성이 제로야 제로. 너보다 훨씬 작은 강아지들인데도 잔뜩 얼어가지구. 하여튼 바보같고 귀여웠어.

생각해보니까 추억이 참 많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니까 가방 쌀 때마다 캐리어에 들어오던거, 알람보다 먼저 날 깨워주던거. 산책 가자고 하면 좋아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또 목욕시킬땐 온가족이 털을 말리느라 니 옆에만 붙어있기도 했고. 그리고나면 나는 기진맥진해서 자고, 너도 내 옆에 꼭 붙어 같이 잤는데. 그래서 내 옷이랑 이불이 다 젖었는데도 하나도 안 싫었어. 국수 꼬랑내를 내가 너무 좋아해서.

너는 진짜 말괄량이어서 막 8차선 도로를 가로 지르질 않나, 작동중인 선풍기 줄을 끊다가 감전이 되질 않나. 쓰레기통 뒤져 돼지갈비뼈를 12개나 먹고도 천연덕스럽게 빨간 혀를 내밀고 헥헥댔지. 그때 내가 가슴을 몇번이나 쓸어내렸는지 너는 모를거야. 이유도 없이 갑자기 컥컥대다 몸이 축 늘어지던 날, 니가 그렇게 무거운지도 모르고 너를 번쩍 안고 냅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한 적도 있었지. 병원에 가니깐 멀쩡해져서는 나를 머쓱하게 하고. 다음날 팔 아파 죽는줄 알았다니깐.

그렇게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겨서 우리는 니가 진짜 천년만년 살줄 알았어. 얘는 진짜 오래 살거야, 맞아맞아, 우리 가족 다 그랬으니까. 그래서 니가 많이 아프단 얘기를 들었을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상태가 너무 안 좋았는데도 그동안 이만큼 견뎌준 게 너무 대견하기도 했고. 근데 바보야, 아프면 아프다고 좀 하지. 아파도 낑낑대는 법이 없고 맨날 참고 눈치만 보고. 그래서 나는 하나도 몰랐잖아. 미리 알았으면 훨씬 더 좋았을걸. 내가 걱정할까봐 티도 안내고 혼자 그렇게 다 견디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봄이 오면 벚꽃 보고, 여름엔 더우니까 집에서 에어컨 틀고 늘어져 있다가 가을이 되면 또 단풍보고 그랬다, 우리. 길거리에서 누가 우리 국수 못생겼다고 뭐라고하면 내가 막 뒷담화도 까고 그랬지. 벤치에 앉아서 구운 계란을 하나 까놓고는 우리 둘이 사이좋게 나눠먹으면서. 자기가 더 못생기고선 우리 국수한테 뭐라고 한다고. 내 눈엔 아무리봐도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그럼 우리 국수가 막 좋아해줬잖아. 겨울엔 니가 좋아하는 눈을 더 자주, 많이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예쁘게 눈이 쌓이질 않아서 눈밭엔 많이 못데려간 것 같아. 그게 너무 미안해.

국수야. 나는 너랑 함께한 5년 동안 진짜진짜 행복했어. 사실 우리 국수가 사고도 많이 치고 그래서 힘든 적도 있었는데 그런건 하나도 생각이 안나. 너랑 즐거웠던 일, 더 잘해줘야 했는데 못해준 것만 자꾸 생각이 나. 너도 우리집에서 행복했을까? 다른 사람이랑 있었으면 더 오래 살수도 있었을까? 자꾸자꾸만 미안해. 아파서 기운도 없으면서 내가 우니까 고개 들고 얼굴 핥아주던게 너무 고마웠어. 나는 그때 너무 위로를 받았는데, 니가 나한테 준 사랑에 비하면 나는 한참 부족하지 않았나싶어. 내가 너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조건없이 사랑해줘서 고마워.

사랑하는 국수야. 우리 국수 겁이 많아서 먼길 혼자 보내기 싫었는데 그렇게 됐어. 그래도 내가 꼭 안고 따뜻하게 보내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전달됐을까? 무지개다리는 색도 예쁘고 하늘도 보고 그럴 수 있으니까 덜 무서워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폴짝폴짝 지나다보면 친구들이 많이 있을거야. 누들 동생이니까 국수도 거기서 친구들 잘 사귈 수 있지? 씩씩하게 재밌게 지내고 있어! 그리고 나중에 언니도 국수한테 가게 되면 꼭 마중나와줘. 우리 예쁜 들판에 누워서 못다한 인사도 하고 매일매일 산책다니자.

눈이 올때, 비가 올때, 따뜻한 햇살이 내 방에 들때, 바람 불고 새가 지저귀고 새싹이 트고 꽃이 만발하고 낙엽이 떨어지고 파도가 밀려올때, 하늘에 달과 별이 뜨고 무지개가 지나갈 때,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국수가 언니 옆에 있다고 믿을게. 그래도 언니 꿈에는 자주 놀러와줘. 사랑해 국수야. 사랑한다는 말은 몇번을 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평생 안 잊을게. 우리 또 만나자.




제 동생 국수가 오늘 오후 무지개다리 건너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조용히 장례를 치렀어요. 병중에 위로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리고, 국수가 아픔없는 곳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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