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쁜 이름이에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 일 년이 거의 다 되어간다. 그래도 여행은 쉬지 않고 다녔고 사진도 꽤 많이 찍어 두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지난해 참 바쁘게 살았다. 아직도 내 방엔 국수가 찢어놓은 너덜너덜한 벽지가 붙어있고 집안 곳곳 사고 쳐 둔 곳도 그대로다. 아빠의 테이블엔 국수와 보냈던 시간을 고스란히 모아둔 앨범이 좀처럼 책장으로 들어갈 줄을 모른 채 늘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일상. 하루가 지나고 틀림없이 내일이 오는 날들이 우리 가족 앞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 했던 그런 일상. 그 안에서 바쁘게 일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을 벌이고 요가를 하고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도 조금씩 가라앉을 무렵, 노들서가와 브런치가 함께 일상작가를 모집한다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노들서가에 작가들을 위한 집필실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3개월 간 글을 쓸 수 있는 혜택. 거기에 예쁜 공간에서 시민들을 위한 글쓰기 모임 등을 기획하고 실행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열심히 신청서를 쓰고 운 좋게 좋은 기회를 얻었다.
닉네임을 '누들'로 쓰고 있지만, 내 진짜 이름은 성노들이다. 영등포구 도림동의 작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성(成)씨 성을 가진 까만 여자아이는, 당시 한글 이름 짓기 붐이 불었던 사회적 배경과 교통의 요지였던 노들나루에서 무언가를 이루라(成)는 큰 뜻을 합쳐 '성노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마음의 고향이자 진짜 고향인 노들, 그러니까 영등포 일대에 가면 마음이 일렁였다. 노들길을 보며 "아빠 왜 내 이름으로 된 길이 있어?" 하며 묻던 순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거기 있다.
사실 어릴 때 나는 내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한글 이름이 꽤 많은 시절이긴 했지만, 샛별, 보람, 다슬, 빛나 처럼 뜻을 유추할 수 있는 이름이 많았고 내 이름과 똑같은 이름은 서른 해가 넘게 살면서 아직도 들어보질 못했다. 그만큼 특이해서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꼭 이름을 불려 발표에 나가기도 했고, 내 이름을 못 알아듣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내 이름을 말했더니, 친구 엄마가 폭소를 터트린 일도 있었다.
내 이름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노들'이라는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찾아보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노들에는 여러 유래가 있는데, 한강을 지나는 백로가 다니는 노둣돌(징검다리)을 노돌이라고 줄여 부르다 노들이 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일제는 대한제국 시절 한강의 노들나루를 노량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한글을 버린 일제식 이름이다. 한강대교를 만들면서 생긴 중지도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일제식 지명 변경 사업을 통해 '노들섬'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어쨌든 100년 전의 사람들은 노들이라는 이름을 퍽 그리워했을 것이고, 거기에는 민족의 슬픔과 애환 그리고 자긍심과 사랑 같은 온갖 감정이 뒤엉켜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렸다. 1930년 대 만들어진 신민요 '노들강변' 역시 식민시대 아픔을 노래해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허투루 쓰일 이름은 아닌 셈이다.
노들서가는 이 예쁜 이름에 어울리는 공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서가 곳곳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가득하다. 어떤 마음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문장을 만들고 책을 골랐을까.
노들서가의 모습을 조금 담아왔다.
노들서가는 작가들에게 월세 대신 글세를 받는다. 자리를 쓰는 이용료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 한 달에 한 번, 공간의 힘을 빌려 쓴 글을 부지런히 내야 한다. 작가들의 글세는 이렇게 한쪽 책장에 줄 지어 전시해둔다.
작가의 책상엔 무려 명패가 올려진다. 노들서가의 노들작가여서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
일상작가들은 나눠보고 싶은 책 다섯 권을 가져와 이렇게 진열한다. 어떤 책을 나눠볼까 한참 고민하다 겨우 골라두었다. 책 안에는 간단한 감상과 책 속 한 문장을 함께 적어놓은 쪽지가 숨어있다.
편히 앉아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곳이 고맙기만 하다.
통유리창으로 채광이 좋은 이곳은 1층에 마련된 라운지. 때때로 강연이나 모임이 열리기도 하고, 시민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이 날은 학생들이 모여있었는데 숙제를 하는지, 작당을 하는지, 내내 심각하고 또 재밌는 얼굴을 하고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참 책 진열을 잘해두었다. 넓은 공간에 여러 구획을 만들고, 각 구획마다 테마를 정해 이것저것 꾸며두었는데 좋은 문장을 많이 배치해 책을 사고 싶은 욕망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노들섬 잔디밭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그 옛날에는 한강물이 얼어붙어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다던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졌으니 이렇게라도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한강의 스케이트를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향수가 서려있는 곳이겠건만, 새로운 젊음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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