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때서요?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아빠만 졸졸 따라다니는 딸이었다고 한다. 아빠가 하는 건 뭐든지 따라 하고 싶었고 아빠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겐 좋은 아빠일지는 몰라도—크고 나선 이마저 아니지만—엄마에겐 좋은 남편이 아니라는 건 머리가 자라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고 그저 무관심과 무서움의 대상으로만 남았다. 나와 엄마를 통제하고 항상 집에 가둬 놓는 그의 가스 라이팅이 끔찍했던 난 사춘기가 되고부터 집을 외면하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녔다. 그 무렵 남자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고 내가 항상 원했고 필요했던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찾고자 하던 것은 대부분 찾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사랑에 빠진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닌 “사랑을 하는 나”에 도취되어 그걸 사랑인 줄 착각한 것일 뿐이었다.
정말 많이도 만났다. 내게 도움이 된 사람은 맹세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에/사랑에 눈이 먼 나는 그 한 명 한 명에 매번 깊이도 빠졌다. 그래도 도움이 아주 안 된 건 아닌 게 지금의—결혼과 사랑 심지어 연애에도 회의감을 느끼는—내가 있도록 만들어준 장본인들이 아닌가. (따로 그 모두에게 일일이 감사의 편지라도 써야겠다.) 지금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습고 별 감흥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아니 단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사랑이 마치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고로 신성한 감정이라도 되는 양 숭배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환상도 그 누구보다 컸다. 고등학생 땐 스무 살만 되면 바로 결혼할 거라고 노래를 불렀고 사귀는 남자 친구마다 그와의 결혼을 생각했다. (이젠 끔찍하고 소름이 돋지만) 행복한 신혼생활을 상상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기를 낳게 되면 지어줄 이름까지 고민하곤 했었다. 난 그만큼 관심과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된 가정'을 고대했다.
그리고 바로 몇 주 전 난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 내게 진짜 필요한 건 ‘남자’도 ‘결혼’도 아닌 마음이 잘 맞는 친구 혹은 소울 메이트라는 걸. 단지 살을 부대끼고 체온을 나눌 사람이 아닌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게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둘 다에게 끌림으로, 우정이라는 선만 잘 긋는다면 플라토닉 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유지한 관계가 꽤 있기도 하고. 이는 친한 친구와 자주 만나 대화하며 깨달은 것인데, 난 이 사실을 깨달은 날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푹 젖었다. 비유하자면 드디어 내 정신과 육체를 좀먹던 애정결핍이라는 쇠사슬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 정말 그 누구도 날 행복하게 할 수 없고 다만 오직 나 자신만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뻔한 얘기가 마음 깊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난 사람들에게 많이 의존하고 정을 깊게 붙이곤 한다. 이 성격은 아마 바꾸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하지만 분명 나는 전보다 더 행복하다. 내 친구들과 나는 연인 간의 사랑으로 묶인 관계가 아닌 상대를 한 인격체로써 존중하고 사랑하는 평등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 말을 깊이 들어주며 진심으로 공감해주고—내게 가장 중요한 부분—나에게 잘 보이려 애쓰거나 구속하지 않는다. 날 가스 라이팅 하지도, 소리를 지르며 날 위협하거나 날 장식품쯤으로 여겨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자랑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밤이면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 따로 아침밥을 먹고 퇴근한 뒤 오후에 모여 서로의 하루에 대해 시시콜콜 털어놓는다. 서로에게 무언갈 빚질 일도,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생활에 무척 만족한다. 내가 지금 한국에 돌아가기가 겁나는 가장 큰 이유다. 내가 혼자 산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거나 내 인생이 끝장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매우 잘 알지만, 보수적인 부모님을 설득하는 건 다른 일이니까. 언젠가 한번 부모님께 비혼을 다짐한 지인의 얘기를 해주며 요새는 비혼족이 비일비재하며 나 또한 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말한 적이 있다. 엄마는 여자로서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듯했지만 아빠는 달랐다. 그는 ‘인류의 존속’과 ‘종족 번식’을 운운하며 본인의 유전자를 대대손손 나눠주고 싶은 마음을 내게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는 나는 “어차피 유전자는 모계의 미토콘드리아만 추적 가능하다던데..”나 ”한국에서 결혼해서 산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라는 말들을 목구멍 깊이 삼켜야만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Hulu의 <The Handmaid's Tale>이 떠오르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자궁”으로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틀린 말은 아닌 게 만 스물세 살이 되면서 주변에 결혼을 해서 아기까지 낳은 친구들도 꽤 생겼고, 내가 언제, 누구와 결혼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아기를 “낳아서 키우고” 싶은 것은 아주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나는 조금 놀랐다.
집이란 내게 통제와 억압이었고 때문에 나는 부모님이 마치 형벌처럼 날 미국으로 보냈을 때도 그리 슬프지 않았다. 친구들과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를 떠나는 건 조금 슬펐지만 ‘집’을 떠나 자유가 된다는 게 무척 기뻤으므로. 자취를 하고부터는 혼자 산다는 것에 자신감도 생겼고 나름 익숙해져서 부모님 슬하에 있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아빠의 구속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하우스 메이트를 원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정신적, 육체적으로 또 법적으로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홀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정말 나를 지켜줄 수 있는지, 남자/남편/남자 친구/파트너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그리고 지킨다면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는지. 나는 울타리 안에 갇혀 살았기 때문에 그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나만의 울타리를 꾸며 살 생각만 했지, 울타리 자체가 없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선택—새로운 울타리를 만드는 것—을 한 사람들을 나는 여럿 알고 있다. 가족으로 얻은 트라우마와 상처를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잊고 치유한다는 말은 이제 내겐 똥차 가고 벤츠 온다 류의 말로밖엔 들리지 않는다. 그냥 아무 차도 안 타면 된다. 가족이 문제면 그 가족을 벗어나 다른 가족을 만들지 않고 혼자 살면 된다.
물론 이게 모든 상처의 치유법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다만 우리 사회가 이런 답안지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데에 분노한다. 마치 ‘혼자’라는 단어에 대한 포비아라도 있는 듯 그들을 경멸하고 무시하고 배척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어디서 많이 본 서사 같지 않은가? 인종 차별, 호모포비아, 성차별, 아동 혐오, 여성 혐오 등 이 사회의 무수한 차별과 혐오가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비롯된다.
우리는 ‘혼자 혐오’—더 나은 단어를 찾는 중—를 하고 있다. 나는 내성적이기 때문에 혼밥을 좋아하며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난 후엔 집에서 혼자 재충전을 꼭 해야 한다. 만약 당신도 나와 비슷하거나 같다면 사회가/당신의 부모가/친구가/교과서가/미디어가 정해준 선택지가 아닌 ‘울타리’ 밖으로 나가길 조심스레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