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미대를 졸업한 후 웹디자이너로 취직한 에이전시에서의 3년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였다. 반복적이지만 안정감을 주는 업무, 가족처럼 끈끈하고 정 많은 코워커들, 매번 연봉의 앞자리를 바꿔주던 대표, 실무 경험 0이었던 나에게 몇억짜리 프로젝트를 떡하니 맡겨주고 이끌어준 사수까지..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간간히 있던 클라이언트와의 마찰마저 활력소로 느껴졌다. 사실 세금을 다 떼고 나면 많은 연봉은 아니었지만, 집도 방 하나 짜리 월세고 차도 할부였음에도 행복했던 건 불화 없는 코워커들간의 관계와 워라밸 덕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 회사의 복지를 말해보자면 (엄청나진 않지만)
• 무제한 PTO (유급 휴가)
• 자율 재택
• 자율 출퇴근 (실제로 새벽 4시에 출근해 정오에 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일하다 요가하러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음)
• 워라밸이 칼 같음 (업무량 자체가 한국과 비교 불가)
• 높은 연봉
사실 프로세스에도 문제가 없진 않았고 다니면서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항상 회사를 가는 게 기대되고 휴가가 끝나면 사무실로 빨리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업무량이 적은 건 아니었지만 마감 기한이 촉박하지 않아서 꼼꼼히 업무를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사무실에 있는 것 자체가 평온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 혼자 일주일 내내 9ft나 되는 트리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낑낑대며 꾸몄고, 파티 준비며, 영상, 사진도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나서서 도맡아 했다. 원래도 그런 걸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워낙 회사 자체에 애정이 많아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마냥 즐거웠다.
비자 연장을 하며 실수로 인해 안타깝게 그만두고 귀국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엔 고향 같은 곳이다. 회사생활은 원래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줄만 알았던 나는 한국에 온 지 5개월 만에 두 개의 회사를 거쳐, “회사가 놀이터야?” “회사에 돈 벌러 오지 친구 만들러 오나” “한밑천 벌어서 이 바닥 뜬다”를 입에 달고 사는 K-직장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과연 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