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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un 15. 2022

03. 흑화의 시작

한창 미국에서 커리어의 성장세를 맛보고 있던 나에게, 한국에 가서 공백기를 가지고 쉰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거기에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나의 금의환향에 한껏 기대로 부풀어 있었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으므로 퇴사 날짜를 정함과 동시에 한국에 있는 회사들에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이 엄청난 스펙일 거라는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고, 나는 이력서를 거의 북한 삐라 뿌리듯 보내다 지쳐 의욕을 잃기 시작했다. 딱 그 무렵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제의 이메일. 지금 보니 꼴에 disclaimer까지 적어둔게 같잖다.


자신을 Jason이자 회사 대표라고 소개한 이 사람은 내게 화상면접을 보고 싶다고 했다. 줌 미팅을 하며 그는 내게 높은 연봉과 함께 500%의 ps를 제시하며 자신들이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이고 카이스트에 서버 관련해서 도움을 주고 있고 스타벅스 코리아와도 협업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열심히 입을 털었다. 첫인상은 그냥 돈 많은 유학생 느낌이었는데 말은 정말 실무자처럼 해서 그래도 사업이나 이쪽 일을 많이 해봤구나라고 느꼈다. 난 한국에서 일을 한 경력이 그때까지 없었기 때문에 실무 용어나 프로세스가 좀 낯설었고 그래서 더 잘 낚인(?)것 같기도 하다.


오퍼를 받고 난 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한 달여간 재택근무를 했고 그 짧은 기간 동안 A앱을 기획, 디자인하고 B앱의 로고를 만들었다. 경쟁사 조사도 엄청 철저히 시켜서 PPT로 만들어 갔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딴 건 왜 시켰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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