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을 만드는 프렌치 스타트업의 비밀
프랑스가 현재 경쟁력 있게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게트? 빵 만드는 일이 참 고된 일이기에 요즘 프랑스 청년들은 빵 만드는 일을 기피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소리가 들리는 판이다. 패스.
그럼 프랑스 요리? 우리는 프랑스 요리하면 매우 고오오급 요리를 떠올리지만 사실 트렌드에서 보자면 프랑스 요리는 한때는 날렸으나 지금은 뒤로 밀린 영감님 느낌이다. 그 빈자리를 스페인이나 페루 같은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한식 등이 채우고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것 또한 패스.
농업? 하긴 프랑스하면 원래 유럽의 농업 강국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현재는 독일에 밀리고 있어서 프랑스 농민들이 정부에 항의 중이다. 대놓고 자랑하기 힘든 분야긴 하지만 절도도 과거엔 무척 잘했다. 그 훌륭한 결과물과 절도 컬렉션이 루브르에 전시가 잘 되어 있... 읍읍...
아 물론 축구는 현재도 잘한다. 이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 그치만 프랑스가 현재 정말로 두각을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스타트업이다. 오늘 이야기할 책 [유니콘을 만드는 프렌치 스타트업의 비밀]은 현재 프랑스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스타트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느냐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스타트업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이견이 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사업화하는 기업이라 생각한다. 컨설팅 기업들이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의뢰한 기업들에 제안하는 쪽이라면 스타트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기업을 차리고 운영한다는 차이점이 있겠다. 그래서 2010년대 들어서 컨설팅 기업 출신들이 스타트업 창업가로 나서는 경우가 많은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유니콘을 만드는 프렌치 스타트업의 비밀]은 모빌리티, 에너지,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고 그것을 사업화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던 부분은 역시 모빌리티 분야인데 이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택시사업자와의 갈등으로 인해 문제가 되는 분야가 바로 모빌리티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초반에서부터 내 눈길을 잡아끈 문구가 바로 이것이었다.
"일반화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요약하자면, 유럽의 모빌리티는 길 위를 달리는 차량의 대수를 줄임으로써 대기 오염과 교통 체증을 완화해 도시 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데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어느 정도 일반화를 하긴 했으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모빌리티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자리나 소득이 중심이 아니라 환경의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아하...
이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모빌리티 분야가 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모빌리티 분야는 크게 보면 국가가 면허제를 통해 확정한 유상운송체제인 택시와 면허 구매를 통해 택시와의 공존을 추구하는 카카오택시, 그리고 면허제를 우회하려는 타다의 3파전 체제다.
카카오택시나 타다나 기존의 택시 산업이 가지고 있는 불편을 해결하고자 하기 위해 등장한 서비스지만 카카오택시는 면허를 매입하여 국가의 면허제를 통한 유상운송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해결하고자 하는 한편, 타다는 사실상 렌트카를 운행하는 방식으로 우회하여 이 유상운송체제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즉, 같은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상이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이 부분에서 매우 큰 곤란을 겪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가가 허가한 면허제 시스템을 국가가 전면 폐지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이건 일단 택시업계와 택시 기사들의 일자리와 기반을 송두리째 뽑는 행위이며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25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더군다나 택시 면허제의 폐지는 적어도 제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접근한 카카오택시 같은 업체들을 호구로 만드는 행위다. 타다가 강력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음에도 그것을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방향성만 보자면 25만대가 넘는 택시를 감차하면서 모빌리티 사업의 기회는 열어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감차 보상금을 택시 기사들에게 쥐어주기엔 이 비용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반대로 택시 기사의 정년제를 도입하고 양수도를 제한할 경우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는 택시기사들의 특성 때문에 감차라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가 허가한 면허 거래를 믿고 몇천만원에서 억이 넘는 돈을 들여 면허를 산 현재의 택시기사들은 노년기에 더욱 소중한 거금을 날리는 셈이 된다.
또한 초고령 기사들의 택시 면허를 그냥 회수할 경우 이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자 생존 기반 자체를 국가가 몰수하는 상황이 된다. 유럽이야 사회복지제도가 발달하여 이런 노령인구가 일을 그만두게 해도 사회적으로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하고 연금도 부족하여 노인 일자리 자체가 노인에 대한 사회복지가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해외 국가들과는 상황이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즉, 우리나라가 처한 현재의 특성 때문에 모빌리티는 도로에서 차를 줄이고 환경을 개선하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일자리와 산업의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모빌리티의 혁신(물론 나는 타다가 혁신이라 보는 쪽은 아니다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유니콘을 만드는 프렌치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모빌리티 외에도 다양한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프랑스 스타트업 기업들을 쭈욱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책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들을 보면 확실히 유럽에선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가 확실히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 환경과 사회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또 관심있게 본 파트는 마지막 파트로 프랑스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과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다룬 내용이다. 그 중에서 프랑스 정부에서 하는 '라 프렌치 테크'가 나온다. 근데 이게 뭐 대단한 지원이 아니라 프랑스 스타트업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브랜딩이다. 브랜딩이 뭐가 중요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스타트업은 결국 투자를 받아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는 마당에 브랜딩과 홍보는 투자 유치와 인수합병 유치에도 매우 긍정적이다. 그 점에서 브랜딩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해외, 그것도 유럽의 스타트업을 이해하고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어렵지 않고 케이스 위주로 진행되기에 읽기도 편하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스타트업도 스타트업이지만 책에선 따로 깊게 언급하지 않은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읽혀서 씁쓸한 맛이 들기도 한 책이었다.
혁신이 일으키는 충격으로 구 산업이 붕괴할때 그 구산업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할만한 제도가 우리에겐 없다. 1000년에 가까운 연금제도와 금융의 역사가 있는 유럽과는 애초에 비교할 수도 없고 그보다 사회보장제도가 많이 취약하다고 하는 미국과 비교해도 우리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왜 혁신을 권장하긴 커녕 혁신의 발목을 잡냐?'라는 질문에 나는 제도적 여건이 그쪽과 우리가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생계와 생존의 기반을 빼앗길 상황에서는 혁신에 관대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혁신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우리의 생계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제도적 기반을 가진 프랑스와 유럽국가들에 대한 부러움이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지지 못한 토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