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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Jan 11. 2020

나는 살 수 없는 인생의 이야기

이렇게 살아도 돼, 박철현 지음


에세이를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2년 전 즈음부터 남들이 에세이를 왜 읽는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이 에세이에 녹아 있으니까.


나는 영업 일이란 것을 해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술집 영업(속칭 삐끼)을 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내가 도박에 빠져서 거기서 가산을 탕진하는 일 또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심지어는 자영업과 소비에 관한 책을 썼음에도 나는 자영업, 그것도 술집을 한다는 생각조차 해본적 없다. 이 모든게 나한텐 그냥 상상 밖의 영역이다. 나는 살아갈 수 없는 삶의 영역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의 영역을 에세이로 엿볼수 있다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내가 언급한 저 내가 살아갈 수 없는 삶의 영역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이렇게 살아도 돼]의 저자 박철현님의 이야기다. 페친이기도 하고 종종 교류하는 분이기도 해서 무얼 하시는 분이신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삶을 살아오신 분인 줄은 몰랐지.


밝고 발랄한 표지와 다르게 사실 내용은 어두운 부분이 많다. 경마에 빠져서 사채까지 끌어다 쓴 이야기나, 그래서 사채업자한테 매일마다 추심당한 이야기나, 도박빚 갚으려고 무작정 일본으로 떠난 이야기, 가부키쵸 술집 삐끼로 영업 뛰던 이야기, 기자로 활약한 이야기... 어휴... 지금은 작가이자 인테리어 업자로 살고 계시니 그야말로 삶의 역정이 어마어마하다. 이런 어두운 내용으로 가득하면서 표지는 이렇게 밝고 산뜻하다니.


하지만 그렇기에 재미있게 읽혔던 책이기도 했다. 나도 도박을 종종 하는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의 영역이기에 없는 돈 빚을 내서까지 도박을 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애초에 저자처럼 도박빚에 고통 받아서 일본으로 넘어갈 일도 없다. 하지만 저자가 경험하고 본 것이 무엇인지는 이해가 되었다. 도박이 주는 자극과 넘치는 욕망에 통제력을 상실해버린 사람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으니까. 나도 영업을 잠깐 해보았지만 저자가 경험했던 그런 영업을 하진 않았다. 아마 그럴 일은 앞으로 없을 것 같고. 그 점에서 [이렇게 살아도 돼]는 그 언저리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나는 절대 택하지 않을, 나는 살 수 없는 인생의 이야기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책 제목이 [이렇게 살아도 돼]지만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책 초반부에 나오는 사채용어 '센이치'처럼 천분의 일이다. 도박빚으로 사채를 쓰는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이후 기회를 얻었던 것은 사채업자나 저자나 서로 천분의 일인 매우 드문 관계였기 때문이고 가부키쵸에서 삐끼를 하다가 지금의 배우자 분에게 걸려서 삐끼를 청산했기에 일본에 쫒겨나지 않았는데 이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인복이라고 해야겠다.


또한 저자는 가진 재능 자체가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한번은 내가 꿈을 꿨는데 저자인 박철현님이 나온 적이 있었다. 꿈의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꿈 속에서 무언가를 추진해서 성공 시키는 것을 보고 꿈 속에서 '이 분은 뭐 이리 가진 재주가 다양하시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 있다. 본 거라곤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모습이 전부였지만 그 와중에도 저자가 가진 다재다능함에 감탄해서 꽤 인상깊게 박혔던 모양이다. 그 정도다.


그러니까 저자는 '이렇게 살아도 돼'라고 이야기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처럼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저자처럼 인복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면 안된다.


하지만 저자가 일을 대하는 태도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왜 그런 인복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오고 선택을 내려왔기에 형성된 태도일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일이다. 책에서는 다 지난 일이니 덤덤하게 써내려 가고 있지만 그 순간엔 보통 일들이 아녔겠지. 그걸 견디고 넘겨 가면서 지금의 박철현이란 사람을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내가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느낀다. 그런 선택을 내리는 것이 그리고 그 순간을 견뎌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한다. 자녀 4명을 키운다는게 보통 일이 아님에도 자녀들이 참 멋지게 성장하고 있다.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누군가는 이런 삶을 살아간다. 내가 살 수 없는 인생의 이야기를 써내려 나가고 있다. 이게 모두에게 적용되지도 않을거고 나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멋지잖아?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나가고 있다는 거.


저자는 마지막에 누군가 이 책을 보고 나도 내 삶의 이야기를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써두었다. 성공하신거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도 내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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