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 경제를 망가뜨리는 자
과거부터 미국의 금융업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하는 책은 많았다. 특히나 이러한 내용의 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의 비판은 받아들일 부분 또한 많다. 금융위기는 실제의 리스크가 아닌 수학적 모델의 안정성을 과신했기에 벌어졌던 일이고 이 과정에서 모든 경제 주체의 탐욕 또한 큰 몫을 했다.
또한 투자 서적에서도 곧잘 나오는 주주자본주의의 폐해 또한 새겨 들을만 하다. 과도한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으로 하여금 단기 이익에 지나칠 정도로 골몰하게 되므로 장기 성장성을 해친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아 물론, 한국은 거기서 예외다. 한국은 주주를 너무 개차반으로 아는데서 발생하는 문제가 더 크니 말이다.
오늘 이야기할 라나 포루하의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는 바로 이런 금융위기 이후 금융업을 비판하는 책들의 연장선에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FT)의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 컬럼니스트이자 CNN의 애널리스트인 저자가 쓴 금융 산업에 대한 비판이라니, 게다가 블룸버그 선정 '올해의 책'에 FT선정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라니. 읽기 전부터도 기대가 많이 되지 않는가?
금융위기 이후 금융 산업에 대한 비판은 많으나 라나 포루하의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는 이보다 좀 더 자극적인 논지로 한발짝 더 나아간다. '금융 산업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라는게 바로 그 핵심 주장이다.
서론을 살펴보면 왜 애플의 혁신이 멈추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사후 CEO가 된 팀 쿡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감행했다. 당시 애플에 누적된 현금은 1450억 달러를 웃도는데 170억달러를 차입하여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실시한 것이다. 라나 포루하는 바로 이런 부분을 지적한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더 좋은 상품을 개발하고 혁신을 지속하는 일에 매달려 왔는데 팀 쿡은 혁신은 도외시하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금융 자본의 이해관계에만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 사후 현재 애플에 혁신이 멈추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이 논의를 더 확장해서 4장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금융 자본의 비위를 맞추는 팀 쿡과 혁신이 사라진 애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것이 애플에서 혁신이 사라지고 금융이 산업을 망치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더 많은 개발과 투자 대신 주주 행동주의 펀드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 부양에 힘썼고 이로 인해 미국 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나 포루하는 금융업을 '테이커스'라고 부른 것이다.
꽤 그럴싸 해보이는 주장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우리는 '그래, 잡스 이후 혁신이 사라진게 다 팀 쿡이 이런 식으로 혁신에 소흘하고 금융 자본에만 관심을 가져서 그런거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단 애플에 혁신이 없단 소리가 이미 스티브 잡스 생전에서부터 나오던 소리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이폰 4도 혁신이 없다 그랬고 5도 그랬고 6도 그랬다. 아이패드가 나올때도 혁신이라곤 없다고 우린 그랬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잡스 때는 혁신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혁신이 없다고 하고 있으니 이게 설득력이 있는 주장인가 과연?
더 나아가서 잡스는 열심히 상품을 개발하고 혁신하는데 관심을 기울였지만 팀 쿡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실제와 다르다. 수익에서 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잡스의 재임 당시는 계속 하락세였다. 반면 팀 쿡의 재임기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R&D 비중을 높이고 있다.심지어 작년인 2019년은 이 비중이 6.2%까지 상승하여 04년 이후 가장 높은 R&D 투자 비중을 기록 중이다. 투자 금액으로 따지면 매년 역대 최고치를 매년 갱신하고 있다.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의 저자인 라나 포루하는 책에서 팀 쿡을 비난하면서 금융 자본의 비위를 맞추느라 투자와 혁신에 소흘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혁신이란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매우 주관적이어서 잡스 때도 더 이상 혁신이 없단 소리가 나오던 때였단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R&D 투자 관련 지표를 보면 오히려 팀 쿡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새로운 기술과 혁신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이 팀 쿡에 대해 가하는 비판은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근거 없는 비난에 가깝다.
이 책의 핵심 논지 중 하나가 '금융산업의 발달과 주주 행동주의의 부상으로 인해 각 기업들이 신제품 개발에 소흘해져서 제조업의 경쟁력이 뒤쳐지고 있다'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시작부터 틀린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라나 포루하는 3장의 시작에서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인 앤드류 로의 얘기를 끌어온다.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약물에 대한 초기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과 2008-2013년 동안 제약업계에서 사라진 일자리의 상당수가 연구 개발직이란 얘기를 들며 금융(테이커스)으로 인해 제조(메이커스)가 밀려나고 있단 논지를 펼친다. 하지만 현실을 알면 이에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제약 투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새로운 신약 개발의 각 단계마다 2-4년 정도 걸리며 출시까지 총 기간은 10-15년 정도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은 5% 미만이다. 게다가 신약의 개발 난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더 높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즉, 비용은 더 높아지고 성공률은 더 하락하고 있는 와중인 것이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앤드류 로 교수가 관심을 두고 연구한 ) 암 치료 약물에 관해서라면 새로운 단독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2800여종의 약물을 조합하는 것이 시간도 적게 걸리고 약효도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를 주로 택하고 있다. 즉, 신약 개발과 관련된 초기 투자금이 줄어드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초기 투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국 정부의 의약분야에 대한 기초 투자금은 2004년 이후로 계속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책은 이 사실을 빼놓고 있다. 더 결정적인 부분은 앤드류 로 교수는 이런 제약 분야에서 금융이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오히려 앤드류 로는 MBS(2008년 금융위기 발생에 영향을 준 그 파생상품 맞다)의 방식을 활용하여 이런 기초투자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책이 비난하는 금융으로 문제가 해결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에 대한 내용은 빼버리고 마치 앤드류 로 같은 저명한 금융공학 교수도 금융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써두고 있다. 이는 문제가 많다.
이 책은 미국의 1950-1960년대를 금융보다는 제조업에서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이상하게도 포드의 사례를 다루는 파트에선 베이비붐 세대로 인해 마치 기업들이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냥 막 성장하는 시대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또한 2차 대전 이후라는 자신감과 베이비붐세대의 증가라는 인구적 조건이 맞아 떨어진 시기와 베트남전 이후의 염세주의와 더불어 경쟁자가 많이 늘어난 80년대 이후의 시기적 차이를 단순히 금융업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무리수에 가까운 이야기다.
또한 이 책에선 아주 살짝만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이지만 이 책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미국 기업들의 금융화는 노동자들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미국은 오래전부터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해왔고 기업에서 일하면 노동자의 은퇴 이후를 위해 퇴직연금을 적립한다. 따라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을 수록, 기업이 그만큼 많은 노동자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수록 기업들은 퇴직연금의 운용에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기관 투자가로 연금기관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미국 자동차 빅3의 몰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성기때 노조들은 더 높은 퇴직연금 적립을 요구해왔는데 이 정도의 수익을 맞추려면 그만큼 회사가 금융기업처럼 움직여야 한다. 실제로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삐걱거리던 시절은 이들 기업은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건강보험회사와 연금회사처럼 굴러갔다.
더군다나 이 책은 금융업이 마치 탐욕 때문에 그 좋기만 한 확정급여형(DB) 연금을 없애고 401k를 내놓게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확정급여형 연금은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미리 정해두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자동차 빅3가 금융회사가 되어버리고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로 지적받고 있음을 안다면 기가 차지 않을수가 없다. 미국인들은 과거에 비해 갈수록 평균 수명이 더 늘어났는데 이 상황에서 확정급여를 지급하려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또한 인덱스 펀드에 비해 수익률이 낫다는 증거도 부족한 액티브 펀드에 연금기관들로 하여금 돈을 투자하게 한 것이 금융업의 탐욕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 또한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70년대에 미국 노동자들이 요구하던 높은 확정 급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당대 연금기관들이 인덱스 펀드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수익률을 낸다고 주장하는 액티브 펀드를 탐색하던 이유기도 했다.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로는 도저히 확정 급여를 만들기 위한 수익률을 내기가 어려웠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가진 이력 때문에 책 내용에 대해 꽤 많은 기대를 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실망의 연속인 책이다. 분명 금융산업은 과오가 있었고 실수도 있었고 문제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곳이라고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은 기존에 있었던 금융산업의 비판을 훨씬 더 자극적으로 펼쳐놓고 있지만 주요 근거를 따져보면 허점이 너무 많고 틀린 내용 또한 너무 많다. 이 정도면 저자의 글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문제가 되는 정도다.
FT의 컬럼니스트라는 저자의 글에 대해 불신이 들 정도로 구멍이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블룸버그와 FT가 이 책을 올해의 도서로 올렸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다. FT와 블룸버그는 금융위기 이전에 금융업과 가장 밀착해 있던 매체들 아녔는가? 이런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면 면죄부라도 받는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이 책은 금융업이 제조업을 밀어내고 망가뜨린다는 매우 자극적인 주장을 마치 내부자의 폭로처럼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그 근거에서 틀린 부분들이 너무 많이 보이고 때로는 저자의 편견에서 비롯된 부분들도 많이 보인다. 이 정도면 음모론에 가깝다. 권위있는 매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말한다 해서 음모론이 음모론이 아닌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