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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Jan 07. 2020

너무 비싼 한국 식품 가격이 만든 낮은 식량안보

EIU의 식량안보순위 29위에 관하여

예전부터 농업에 관련된 글도 종종 쓰곤 했는데 그건 내가 농업을 잘 알아서라기 보다는 나 또한 도시 근로자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의 형편없이 높은 식료품 가격에 대한 불만이 기반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체감 물가가 높은 이유 중에서도 핵심이 바로 식료품의 고가격이다.


대체로 우리나라는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 중에서 식료품을 가장 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하고 산다. 식료품은 우리의 삶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가장 구매 빈도가 잦다보니 그 체감 정도가 다른 물품들보다 높은 편. 특히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해외에서 유학하고 체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체감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듯 하다.

그런데 내 책과 과거에 쓴 글에도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이것을 유통업자가 다 해쳐먹어서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찾아보면 그러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유통업자 또한 빠듯하며 유통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소비자가에서 선진국보다 낮다. 핵심은 우리나라의 낮은 농업 경쟁력과 생산성에 있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와중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276497?fbclid=IwAR3DPXBMP2ca7ISHuTj2uQe26NwWr73gJPaXhyDiTcHJkdNSC4KkkH7sVXM


한국의 식량 안보가 세계 29위라는 기사. 내가 농업 얘기를 쓰고 결론을 농업 개혁과 개방을 이야기 할때마다 내 글의 댓글에는 '식량안보', '식량주권'을 외치는 분들이 넘쳐났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쌀에 편중된 우리나라 농업에 변화가 필요하다를 이야기해도 식량안보만 되뇌이는 분들이 많았기에 답답했던 주제다.

기사 제목만 보면 한국의 식량 안보는 좋다고 하기 어려우니 역시 식량 안보를 위해서 역시나 수입 농산물을 다 틀어막고 우리 농업을 보호해야 할거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식량안보란 넓은 뜻으로는 자국민에게 충분한 양과 양질의 식량을 필요한 시기와 장소에 공급할 수 있는 상태를, 좁은 뜻으로는 비상시 필요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태세를 뜻한다. EIU가 산출하는 이 지수는 식량 구매능력, 국가 식량 공급능력, 식품 안전성 및 질 등 3개 부문을 평가해 매년 순위와 점수로 발표된다.

부문별로 보면 한국은 식량 공급능력 부문에서 20위였고 식품 안전성 및 질에서는 32위, 식량 구매능력은 45위를 각각 기록했다."


우리가 머리 속으로 개념화한 식량안보의 범위를 넘어 비상시의 필요식량 확보 능력 뿐만 아니라 양질의 식량을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포괄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를 살펴보면 식량 공급능력은 그리 부족한 편이 아닌데 식량 구매능력이 매우 뒤쳐지는 걸로 나온다.

사실 이건 다 체감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식료품 가격이 비싼게(물가 상승률이 아니다)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인가? 그래서 급격한 소득의 인상에 대한 요구가 나왔던 것이다. 임금을 높이면 그만큼 생활 물가가 낮아진다고 생각하니까.

말 나온김에 EIU의 GFSI를 한번 직접 살펴보자.


GFSI가 평가하는 한국 식량 안보의 취약점은 농산물 수입관세와 농업 R&D에 대한 공공투자다. 소득이나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관세로 인해 소비자에게 식량을 저렴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와 농업에 대한 투자 부진으로 개선이 느린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농산물 수입관세 부분이 깎아먹는 점수가 매우 크다. 바로 이게 우리의 통념과는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높은 관세를 통해 농업을 보호하는 것이 식량안보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은 그런 보호로 형성된 식량 가격이 높아서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식량안보가 허술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EIU의 GFSI 10위권 국가들의 목록이다. 1위로 오른 국가가 재밌게도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거의 대부분의 식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1위에 오른 것이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식량안보의 개념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싱가포르 뿐만 아니다. 4위에 오른 스위스나 공동 5위 핀란드와 노르웨이, 그리고 7위 스웨덴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농업 강국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국가들은 척박한 농업 환경으로 인해 그만큼 원활한 식품 교역에 주력한 나라들이다. 이 10위 리스트에서 농업 강국이라 부를만한 나라는 아일랜드, 미국, 네덜란드 정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질 좋은 식품을 저렴하게 국내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식량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물론 1위 싱가포르와 3위 미국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아주 심각하게 볼 것은 없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질 좋고 저렴하게 식품을 공급하는 것도 중요한 식량안보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경제 규모와 소득 수준에 비해 이게 매우 처참한 수준이란 얘기다.

이런 얘기하면 옆나라인 일본과의 비교가 나오는데 일본과 직접적인 비교가 참 어려운게 일본은 1970-80년대부터 해외 농업기지 개발에 나섰던 나라다. 그 대표적인 과실 중의 하나가 전세계 대두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브라질 세하두 농장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해외 농업기지 개발에 나섰으나 개발의 규모도 발전도 많이 미흡하다.

농업에서 계시면서 글을 쓰시는 분들 중에 '도시는 농촌에 큰 빚을 지고 있다'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나는 거기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도시의 발전에 있어 농업의 희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우리의 경제발전의 역사에서도 벌어지긴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높게 형성된 식품 가격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도시 거주자들에게 상당한 부담과 압력으로 다가오고 있는 와중이다. 이게 한 두해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나는 채무의식이 없는 쪽이다. 이렇게 해서 한쪽이라도 행복하면 될텐데 양쪽 다 불행하단게 지금의 가장 큰 문제다.

이제는 농업과 식량에 대한 다른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EIU의 GFSI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보시면 된다.

https://foodsecurityindex.eiu.com/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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