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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Mar 02. 2021

노동소득과 불로소득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노동은 제한적이기에 둘 다 필요하다

불로소득.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노동으로 번 소득만이 진정한 소득이며 노동 없이 번 소득은 더럽고 부정한 소득이란 인식이 강하다. 당장 뉴스 댓글만 가도 그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댓글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노동으로 제대로 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간은 제한적이다. 대략 20대 후반에서 50대 초중반까지가 그 기간이다. 그런데 기대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1981년 대비 현재의 기대수명은 17년이나 증가했는데 노동으로 유의미한 소득을 벌 수 있는 기간엔 큰 변화가 없다. 과거엔 첫 직장을 잡는 시기가 20대 초중반이었지만 지금은 고학력과 취업난으로 20대 후반으로 늦춰진데다 정년이 연장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축복받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정년을 늘리고 기업이 무조건 고용을 보장하라고 외치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생산성의 절정을 지나고 하락세인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보장해야 하는데 이러면 생산성이 상승세인 젊은 노동자의 희생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모델은 기업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하고 전보다 더 많은 젊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피라미드형 구조에서나 가능하다. 젊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노동을 하고 임금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가면서 나이 든 노동자의 임금과 생산성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이 청년 고용을 팍팍 하는 시기도 아니고 고성장 시기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노동자들의 불만은 높은 상황이고. 가능하지가 않다.

요즘엔 다 70대까지 일하지 않냐고? 그 60-70대들이 일하는 일자리의 평균적인 상태를 알면 글쎄다. 당장 정부가 만드는 노인 일자리조차 노인에 대한 소득보전과 복지 차원의 일자리이지 않은가?

또한 노동소득도 세부적으로 따지고 쪼개어 보면 대체 '노동'이 무엇이냐를 되물어보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특히나 현재는 육체를 쓰는 블루칼라 노동직 만큼이나 화이트칼라가 늘어난 상황에서 노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특히나 관리직으로 올라갈수록 전통적인 노동의 의미로는 노동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자면 노동 소득은 너무나 한계가 명확한 소득이다. 변화한 환경과 늘어난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마냥 신성한 노동만 외치는 것도 무리다. 물론 노동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곤 부족하단 얘기다. 노동으로 채울 수 없는 인생의 나머지 부분은 결국 노동이 아닌 소득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니까 불로소득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단 이야기다. 더군다나 여기서 유의미한 세수가 창출되기도 한단걸 생각하면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유독 불로소득을 죄악으로 보는 분들이 정치권에 많다. 그 분들이야 60-70대에도 정치인 생활하고 있으니 별로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운과는 거리가 멀다.

불로소득을 보는 시선을 다르게 가져야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219029017&cp=seoul&section=010000000&wlog_tag1=&fbclid=IwAR0ze_d47vcPXA-IOhwIWfo9aIcLb86msjtvtPz4rEZKiRcmwYOVOMOEs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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