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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Mar 11. 2021

좋은 기업가는 왜 소시오패스들이 많은가?

기업가의 덕목과 시민의 덕목은 다르다

작년에 멀티팩터로 강연을 나갔다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성공을 추구하기 위해선 무자비함이 필요한 때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도 용납된단 말씀이신가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도덕관념을 따르는 우리의 뇌는 반사적으로 '아니오'라는 답을 하게 요구하지만 이게 실상은 좀 애매해서다.

우리가 받는 교육은 올바른 시민이자 좋은 사회구성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런 내용을 가르친다. 그런데 좋은 시민이 되는 것과 좋은 기업가가 되는 건 좀 카테고리가 다르다.

기업가들 중에 소시오패스가 많다는 기사와 발표를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장 실리콘벨리의 유명 기업인들만 보더라도 인성적 결함들이 넘쳐난다. 스티브 잡스는 워낙 유명하니 패스하더라도 일론 머스크 같은 경우에도 저 인간이 제 정신인가 싶을 때가 많다. 그리고 페북의 주사장도 윙클보스 형제의 통수를 친 일화가 너무나도 유명하다 못해 꼽자면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임원급 또한 이 정도의 사람들이 차고 넘치고. 이걸 곱씹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알고 보면 다 한 인성 하는 분들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기업들이 정말 도덕적으로 옳은 일만 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그 기업의 행적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경쟁자를 배제하려 하거나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꼼수와 수작을 많이 부린다. 언론플레이 또한 이러한 수작의 일환이기도 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시민에겐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지만 기업가에겐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선 좋은 시민의 덕목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축구에 비유를 해보자. 친구들끼리 동네에서 재미로 축구를 하는 경우라면 굳이 파울을 하거나 거칠게 몸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 같이 축구를 하는데 의의가 있는거지 서로 감정 상하게 할 이유가 없는거다.

하지만 프로 레벨에서 승리가 중요한 상황이라면? 상대방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거칠게 몰아붙여 플레이를 제대로 못하게 찍어누르는 것도 손으로 붙잡고 때리면서 상대의 자유로운 플레이를 제약하는 파울도 해야하며 카드를 받을 정도로 거친 파울을 하기도 하면서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 또한 상대방의 그런 것을 이겨낼 줄 알아야 하고 말이다.

기업이 처하는 경쟁의 환경은 프로 축구 그 이상으로 강도가 높다. 때문에 올바른 시민의 덕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요구되고 이를 잘 하는 기업가의 기업가로서의 정체성은 올바른 시민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경쟁과 거리가 멀 것 같은 기질에서 또한 괴리는 발생한다. 예를 들어 기업가에게 중요한 것이 일상에서 사업적 기회를 발견해낼 수 있는 창의성인데 댄 애리얼리에 따르면 창의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는 부정행위에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서로 다른 것을 엮어 다른 발상을 하는 창의성의 속성이 어떠한 정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해석하고 구성하여 기존의 원칙과 규칙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시민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원칙과 규칙을 지키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서로 배치되는 덕목인 셈이다.

치열한 경쟁의 레벨에서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은 '유약하다'라고 평가받는다. 경쟁에서 요구되는 덕목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송양지인의 고사 속 이야기처럼 타인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은 군자가 해선 안될 행동이긴 하지만 전쟁 상황에선 군자가 되어선 안되는 법이다.

현재의 빌 게이츠는 MS CEO시절의 빌 게이츠와 사실상 다른 사람이라 봐도 무방하다


빌 게이츠가 현재 다양한 시민 활동으로 존경 받는 위치에 올라 있는 것은 그가 더 이상 기업가가 아니며 경쟁을 해야할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기업가일 당시엔 그도 여느 기업가 못지 않게 파울을 많이 했고 논란 또한 많은 인물이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그렇다면 기업가는 나쁜 사람들인가? 그렇진 않다. 기업가에게도 기업가로서의 자신과 개인으로서의 자신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둘을 완벽하게 분리해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이중인격이라도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좋은 기업가는 좋은 시민이 되기란 어렵다. 서로 요구되는 덕목이 상이한데 어쩌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현직 기업가이면서 훌륭한 시민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들이 좋은 시민이기보단 매우 노회한 사람들이라 본다. 물론 이 또한 좋은 기업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긴 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계속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괴리를 숨기긴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회사생활이 힘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좋은 시민으로서의 나'와 '경쟁에서의 나'가 서로 충돌하는 현장이니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저 질문에 한 답을 쓰면서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물론 시간이 꽤 지난 만큼 세부적인 문장이 완벽하게 동일하진 않다.

"때로는 그런 걸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성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성자가 되겠다는 것과 다른거예요. 부도덕한 일이라도 필요하면 해야하는거죠. 다만 그에 따른 결과도 감수해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도덕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선을 넘으면 그게 어떻게든 문제가 되어 돌아옵니다. 임계점 같은 거죠. 따라서 때론 무자비하고 부도덕한 일을 하더라도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하는게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도덕한 일에는 비판이 따르죠. 그럼 그 비판을 감수하면 되는겁니다. 대부분은 부도덕한 일을 하면서도 비판을 회피하려 드니까 탈이 나는거거든요. 결과를 누리고 싶으면 행동에 책임을 지면 됩니다.

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인 건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성공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성자가 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아니니까요."


+내가 기업가의 경영철학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 기업가에 대한 평가는 그가 이룬 업적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과가 만들어낸 멋들어진 철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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