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막걸리를 '흔드는가'

발효학자, 농부, 역사학자, 그리고 무용가의 눈으로 해독한, 섞임의 미학

by BREWOLOGY


[서곡(Overture): 가장 역동적인 의식]


우리는 와인과 위스키는 우아하게 따르고, 맥주는 거품을 살려 조심스럽게 따릅니다. 하지만 유독 막걸리만큼은, 마시기 전에 병을 거꾸로 뒤집어 힘차게 흔드는 우리만의 독특한 '의식'을 거치죠.

왜일까요? 너무나 당연해서, 한 번도 질문해 본 적 없는 이 손짓. 어쩌면 우리는, 그저 섞기 위해 병을 흔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맑은 윗부분과 탁한 아랫부분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그 뿌연 혼돈 속에서, 분리되었던 것들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순간의 희열을 갈망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 당연했던 손짓에 담긴, 아주 사소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할지도 모를 이유들을, 각 분야의 재미있는 친구 네 명을 초대해 함께 찾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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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발효학자 친구의 경고 - "그거, 버리는 거 아니에요!"]


"혹시 막걸리 윗부분의 맑은술만 따라 마시는 분 있나요?" 발효학자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습니다. "그 하얀 침전물, 그거 절대 '찌꺼기'가 아니에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가끔은 맑은술만 마시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라앉은 하얀 층 속에, 수십억 마리의 살아있는 효모와 유산균, 그리고 쌀의 모든 영양이 잠들어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흔든다'는 것은, 이 잠자는 군대를 깨워 막걸리의 맛과 향, 그리고 생명력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명령과도 같은 거였습니다. 글쎄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병 안에서 벌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장 위대한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의 작은 발견

가장 중요한 것들은, 종종 눈에 보이지 않고, 가장 아래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그것을 깨우는 것은, 우리의 작은 관심과 손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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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농부 친구의 굵은 손마디 - "결국, 우린 흙을 마시는 거지"]


"막걸리는 땅에서 온 술이지." 농부 친구가 굵은 손마디로 잔을 잡으며 말합니다.
봄의 볍씨 한 톨이, 여름의 땡볕과 농부의 땀을 먹고 자라, 가을의 황금빛 쌀이 되고, 마침내 한 사발의 뿌연 액체가 됩니다. 그러니 막걸리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취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것은 이 땅의 사계절과, 한 농부의 일 년을 통째로 들이켜는 행위와도 같겠죠.

그 묵직하고 구수한 맛의 끝에서, 흙냄새가 느껴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잠시나마 우리가 왔던 그곳, 흙의 기억을 맛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작은 발견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것은, 농부의 한 해와 이 땅의 사계절을 통째로 들이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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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역사학자 친구의 씁쓸한 미소 - "가장 아름다운 저항"]


"원래, 맑은술과 탁한 술은 사는 세상이 달랐어요." 역사학자 친구가 씁쓸하게 웃습니다.
맑게 걸러낸 '청주'는 양반의 술이었고, 거르고 남은 '탁주'는 백성의 술이었습니다. 분리된 술잔은,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었죠. 생각해 보면 참 서글픈 일입니다.

어쩌면 막걸리를 '흔들어' 청탁(淸濁)을 섞어 마시는 우리의 이 무의식적인 행위는, 그 서러웠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하나 되길 갈망했던, 우리 조상들의 가장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저항이 아니었을까요?
주막에 모여 앉아 세상을 논하던 그들의 술잔에 담긴,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 이건 그냥 술이 아닙니다. 이건,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작은 발견

가장 위대한 혁명은, 종종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분리된 것들을 섞으려는 아주 작은 몸짓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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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이야기: 무용가 친구의 감탄 - "그건, 당신만의 춤사위예요"]


"막걸리 흔드는 모습,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무용가 친구가 제 손짓을 보며 말합니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병을 거꾸로 뒤집고, 침전물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다시 부드럽게 흔들어 섞는 그 일련의 동작. 이것은 노동이 아니라, 하나의 '율동'이라는 겁니다.

맛을 내기 위한 가장 실용적인 행위가, 가장 아름다운 '의식무(儀式舞)'가 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매번 막걸리를 마시기 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장 한국적인 춤사위를 추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목적이 있는 몸짓은, 그 자체로 힘과 아름다움을 갖게 되는 법이니까요.


우리의 작은 발견

가장 아름다운 춤은, 무대 위가 아니라, 당신의 삶 속, 의미를 가진 모든 손짓과 몸짓에 담겨있다.


[피날레(Finale): 당신의 잔에 담긴 하나의 세계]


이제, 당신 앞의 막걸리 잔을 다시 보십시오.

그 뿌연 층 속에는, 잠들었던 생명이 깨어나고, 이 땅의 사계절이 녹아 있으며,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침내 아름다운 춤사위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막걸리 병을 흔드는 그 짧은 순간은,
단순히 분리된 것을 섞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존중하고,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가장 완벽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우리 모두의 가장 오래된 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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