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적인 존재'라는 말

무엇이 그들을 암처럼 만드는가

by Hyun

"XX의 암적인 존재"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흔히 집단 내에서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왜 하필 암이지? 감기 같은 존재,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는 말도 있을 텐데.


물론 암이나 감기 모두 우리 몸에 악영향을 미치는 질병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이 지니는 다양한 속성들은 알고 나면,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이 단순히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들의 특징, 정체성까지 담고 있는 표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암은 한 때 우리 자신이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만 해도 우리 몸의 세포는 계속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유년기의 작았던 몸을 성인의 몸까지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필요한 경우에만 분열 스위치를 ON으로 바꾸도록 프로그래밍된다. 예를 들어,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아무런 조치 없이도 상처가 아무는 것은 그 부분에서만 세포들이 다시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모든 세포들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세포 분열 스위치를 ON/OFF 하는 한 큰 문제없이 잘 작동한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집단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규칙을 깨는 이들이 하나씩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도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암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암세포도 한 때는 정상세포였다. 규칙을 깨고 주위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암적인 존재들도 한 때 우리와 똑같은 사회 구성원이었다는 것이다.


암은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다


세포들은 각자의 고유한 영역이 있다. 분열을 거듭하다가도 이웃한 세포와 맞닿게 되면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분열 스위치를 OFF로 바꾼다. 이렇게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암세포는 다르다. 자신에게 할당된 영역을 넘어 주위 세포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정상세포들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암세포에 의해 짓눌린 세포들은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죽게 되며, 이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면 장기 전체가 망가지게 된다. 우리가 속해있는 집단 내에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에게 악영향을 미치며, 극단적으로는 집단 전체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이들을 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암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우리의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약 천만분의 1~일억 분의 1 확률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이는 필요한 경우에만 분열하는 정상세포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숫자다. 하지만 계속해서 복제를 거듭하는 암세포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0번 분열하는 정상세포에서는 약 100만 분의 1번의 돌연변이가 발생하지만, 1000번, 10000번 분열하는 암세포에서는 10000분의 1, 1000분의 1 번의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폭 증가한 돌연변이 확률로 인해 암세포는 다수의 돌연변이를 축적한다. 돌연변이를 획득한 암세포는 이전과는 '조금씩 다른' 특성을 획득한다. 하나의 암 조직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돌연변이를 획득한 암세포들이 가득하다. 마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처럼, 이들은 비슷하면서도 개성이 넘친다.


암세포를 치료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암제를 적용하더라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항암제가 잘 듣는 암세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암세포도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암을 완벽하게 제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도려낸다고 해도, 조금의 암세포라도 남아있다면 이들은 다시 분열을 거쳐 원래의 크기를 회복할 것이다. 이렇듯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는 이들을 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암은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다


처음에는 기원한 장소에서만 세력을 키워나가던 암세포는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 새로운 전략을 채택한다. 다른 곳에도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기로 한 것이다. 돌연변이를 통해 조금씩 진화해 나가던 암세포는 혈관, 림프관을 통해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모든 기관에서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모두 다르고, 따라서 암세포와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혈관을 통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던 암세포는 자신과 마음이 맞는 장기의 세포들을 만날 때만 그곳에 정착한다. 그리고 새로운 암 조직을 형성하게 된다.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은 자신들과 생각이 맞는 이들을 모아 세력을 확장하는 특성 또한 내포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물론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위에서 다룬 암의 특성을 모두 반영하여 사용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앞으로 암적인 존재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암이 인간 사회를 많이 닮아있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세포들의 작은 사회라니.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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